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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이젠 봉사의 ‘대상’ 아닌 ‘주체’…거주하는 동네서 땀 흘려야 오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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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마을 시니어 봉사단이 10월 10일 봉사 시작 전 회의에 참석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고려대학교]
한솔마을 시니어 봉사단이 10월 10일 봉사 시작 전 회의에 참석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고려대학교]

[강언우,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80대 노인은 봉사 받는 사람인가, 봉사하는 사람인가? 봉사하는 사람이라고 답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노인하면 ‘빈곤’, ‘고독’, ‘소외’ 같은 단어가 쉽게 붙는 우리 사회는 노인을 봉사할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간주해왔다. 노인 자신도 그렇게 여기는 듯했다.

우리나라 60세 이상 인구의 자원봉사참여율은 집계가 시작된 1999년부터 최근 2023년까지 항상 전체 평균보다 낮았다.

이런 고정 관념을 직접 깨는 노인들이 있다. 동네 주변을 청소하는 ‘한솔마을 시니어 봉사단’, 독거노인에게 꽃과 편지를 선물하는 ‘행복한 꽃 나눔 봉사단’, 노인이 노인을 상담하는 ‘성북 은빛 마음 나눔 클럽’이 그들이다.

경로당 기반의 이들 봉사단 외에도 전국 1,800여 개 노인자원봉사단이 보건복지부와 대한노인회의 지원 아래 활약 중이다. 그중에는 백발에 보청기를 끼고 지팡이를 짚은 80대 노인도 봉사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 한솔마을 경로당에는 두 개의 봉사단이 있다.

그 중 하나인 ‘한솔마을 시니어 봉사단’이 10월 10일 봉사를 위해 경로당에 모였다. 노인들은 활기 넘쳤다. 최고령 봉사자는 이 봉사단의 단장인 조명규 씨(88세)다. 봉사에 앞서 회의를 이끄는 조 씨의 자세는 흐트러짐 없이 꼿꼿했고, 뒤로 넘긴 검은 머리카락은 윤이 났다. ‘한솔마을 시니어 봉사단’은 본인과 가족, 이웃이 매일 거니는 아파트 단지에서 2021년부터 봉사해왔다.  

20명의 봉사단원은 이번 달에도 각자 집게와 비닐봉지를 들고 담당 구역으로 흩어져 쓰레기를 주웠다. 단장 조 씨는 깨끗해 보이는 거리에서도 바스러진 담배꽁초, 작은 과자 포장지를 찾아냈고, 수풀 속 축축하게 젖은 수학 연습장도 빠짐없이 건져냈다.

손에 든 큰 비닐봉지는 한 시간 만에 가득 찼다. 경로당 회장 신동철 씨는 4년에 걸친 이들의 봉사에 대해 “봉사라고 하면 어디 딴 데로 가서 봉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런 봉사는 자기 삶과 유리된다”며 “노인 봉사는 내가 사는 동네와 밀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노인회 강남구지회는 ‘한솔마을 시니어 봉사단’의 꾸준한 활동을 보고 한솔마을 경로당에 봉사단 추가 개설을 권했다. 그렇게 10명으로 새로 구성된 봉사단이 ‘행복한 꽃 나눔 봉사단’이다.

10월 8일 한솔마을 행복한 꽃 나눔 봉사단이 경로당 옆 텃밭을 가꾸고 있다. [사진=고려대학교]
10월 8일 한솔마을 행복한 꽃 나눔 봉사단이 경로당 옆 텃밭을 가꾸고 있다. [사진=고려대학교]

 10월 8일 만난 ‘행복한 꽃 나눔 봉사단’은 전원 여성이었다. 함께 봉숭아 물들였다며 손을 내보이는 그들의 표정은 싱그러웠다. 이들은 봉사단 이름대로 이웃 독거노인에게 꽃을 나누고, 한솔마을 거리에 꽃을 심어왔다.

경로당 옆 텃밭에 채소를 길러 노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독거노인에게 선물할 꽃도 직접 길렀지만, 개화 기간이 짧아 필요한 때 공급이 어려워서 이제는 화초를 사고, 직접 카드를 써서 함께 전달한다.

8일에도 봉사단원들은 거리의 꽃 상태를 확인하고, 텃밭 작물에 능숙히 물을 뿌렸다. ‘행복한 꽃 나눔 봉사단’의 단장 오광자 씨(80세)는 “식물을 키우고, 꽃을 피우는 일이 오랜 도시 생활을 한 노인들에게 처음에는 낯설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꽃처럼 예쁜 자식들이 떠나고, 혼자 남은 노인의 집에 꽃을 선물하자는 목표 아래 함께 성장해왔다. 그 덕분에 이웃 노인의 방은 꽃으로 환해졌고, 가을 한솔마을 거리는 분홍 분꽃이 만개했다. 경로당 옆 텃밭에도 쪽파, 대파, 상추가 싱싱하게 자랐다.

10월 7일 성북 은빛 마음 나눔 봉사단 단장 김준영 씨가 대한노인회 서울연합회의 표창장을 받던 당시의 사진을 뿌듯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진=고려대학교]
10월 7일 성북 은빛 마음 나눔 봉사단 단장 김준영 씨가 대한노인회 서울연합회의 표창장을 받던 당시의 사진을 뿌듯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진=고려대학교]

“내가 오늘 보청기를 빼고 와서 큰 목소리로 말해줘요.”

10월 7일, 서울 성북구 석관동 중앙하이츠아파트 경로당에서 만난 경로당 회장 김준영 씨(80세)는 대화를 시작하며 이처럼 말했다.

김 씨는 작은 소리를 듣기 위해 보청기가 필요할 정도로 난청인데도, 이웃 노인들의 이야기를 소상히 듣는 상담 봉사를 이끌고 있다. 10명으로 구성된 ‘은빛 마음 나눔 클럽’은 수시로 경로당과 그 주변에서 이웃 노인들을 상담한다. 이 상담은 전문가들이 하는 상담과 다소 달랐다.

봉사단원 중 상담 교육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며, 그 흔한 검사지도 사용하지 않았다. 단지 이들은 말할 곳 없는 이웃 노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조심스레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노인만이 노인에게 줄 수 있는 위로가 있다. 은퇴 이후 무기력함, 중년 자녀와 소통의 어려움, 배우자나 친구를 잃은 상실감과 같이 노인에게도 처음 겪는 감정이 있다.

김준영 회장은 “내가 조리 있게 말은 못하지만, 노인이 노인을 상담하면 심적인 소통이 더 잘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은빛 마음 나눔 클럽’은 대한노인회로부터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는다. 원래 봉사단원 20명을 기준으로 월 30만 원을 지원하지만 ‘은빛 마음 나눔 클럽’은 20명이 못 되어 활동비를 그보다 적게 받는다.

이들은 상담 후에 그 활동비로 상담에 참여한 노인들과 밥 한 끼를 함께 먹는다.

김 씨는 “우리 부모들은 자기가 못 먹어도 자식 공부는 시키려고 고생 많이 했잖아요. 앞으로도 나는 그런 어르신들을 잘 섬기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대한노인회는 2011년부터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노인자원봉사 활성화 사업을 운영해왔다. 만 60세 이상의 노인 약 20명이 모임을 만들면 다른 조건 없이 신청할 수 있고, 봉사 형태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해당 사업은 매년 확대되어 2023년에는 1,879개 봉사단, 38,337명이 봉사 활동을 했다. 노인대학 모임, 공무원 퇴직자 모임, 일반 계 모임 등 다양한 단체가 상담, 공연, 치료, 교육 등 특색 있는 봉사를 하고 있다.

자원봉사는 가족이 해체되고, 복지 수요가 다양화될수록 더 중요해진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자원봉사참여율은 2023년 기준 10.6%로 영국(54%), 호주(32%), 미국(25%) 등 타 선진국보다 상당히 저조하다. 그마저도 청소년 단체와 종교 단체 위주라서 이대로라면 시간이 갈수록 자원봉사 규모는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자원봉사 활성화 사업은 노인이 봉사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노인 스스로 증명하도록 했기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특히 동네 기반의 소규모 봉사단이라는 점이 봉사의 문턱을 낮추는 데 톡톡히 기여했다.

‘행복한 꽃 나눔 봉사단’의 김은옥 씨는 “노인이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혼자 하기는 어려워서 작은 마음들을 모아주는 무엇인가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활동비 지원도 중요했다.

적은 금액이지만, 봉사하고자 하는 노인에게 좋은 명분이자 마중물이 됐다. ‘은빛 마음 나눔 클럽’의 김준영 씨는 “활동비가 봉사단을 꾸리자고 설득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어떻게 늙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심지어 이 질문의 답안지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이에 당황하지 않고, 오늘도 자기 동네에서 모범 답안을 써내려간다.

노인자원봉사단은 매년 1~2월 각 지역 대한노인회 노인자원봉사지원센터를 통해 지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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