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5년이 지난 오늘, 전쟁의 기억과 후기억, 인류가 직면한 동시대적 현실이 뒤얽힌 현재의 시간성을 탐구하는 전시 ‘우발적 미래의 시원’가 부천아트벙커B39에서 개최된다.
전시 제목 ‘우발적 미래’는 한국전쟁의 예기치 않은 유산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지정학적, 사회적, 개인적 상황을 의미한다. 동시에, 전시 자체가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미래의 출발점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1950년대 한국 사진을 대표하는 작고 사진가 한영수를 비롯해 30~40대 젊은 작가들까지 모두 14명의 다매체 작가가 참여해, 폐기물 소각장에서 예술공간으로 변모한 부천아트벙커B39를 재해석한다.
폐기물 소각장에서 예술 공간으로 변모한 전시장은 과거의 흔적을 재맥락화하는 서사의 장이자, 파괴와 창조가 공존하며 새로운 서사가 태동하는 복합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전시의 구성과 맥락은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의 ‘비-연대기적 시간’ 개념에 기반한다. 과거의 잔재와 미래의 잠재가 내재적 차원에서 한국전쟁에 연루된 현재의 시간(기억)을 성찰하도록 설계됐다.
이에 따라 전시는 5개의 섹션과 1개의 퍼포먼스 섹션으로 구성된다. 먼저, 에어갤러리와 에어갤러리 발코니에 마련된 ‘기억의 환승’은 한국전쟁의 역사적 상흔이 사회적 구조와 개인적 경험 속에서 어떻게 상징화되고 재매개 되는지를 다매체 설치 작업으로 탐구한다.
안성석 작가의 작업은 거창추모공원의 기울어진 위령비를 현대적 시각 언어로 재해석하며, 관객 참여를 통해 역사적 기억이 감각적 경험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발코니에 전시된 임노아, 조은재, 김의로 작가의 작업은 한국전쟁의 기억이 트라우마의 풍경, 사회적 단절, 신체의 서사를 통해 복합적인 문화적 층위를 형성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중앙제어실의 ‘우발적 미래’는 전후 일상 공간에 스며든 전쟁 후기억의 문제를 탐구한다. 한영수 작가의 사진 작업은 전후 서울의 삶에 남아 있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시각적으로 환기하며, 안성석의 영상 작업은 영화 ‘오발탄’을 재매개해 1950년대에 잠재된 트라우마의 단층을 오늘의 시각으로 새롭게 드러낸다.
크레인조종실과 유인송풍실에 마련된 ‘에레혼’과 ‘주체성의 영역’은 DMZ와 제주 4.3이라는 상징적 장소를 중심으로, 분단과 전쟁의 흔적이 주체성과 기억의 층위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탐구한다. 이 두 섹션은 관객을 역사의 관찰자가 아닌 기억의 주체로 끌어들여, 개인적 경험과 역사적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할 수 있는 장을 제시한다.
마지막 섹션 ‘시간의 결정체’는 한국전쟁의 기억이 어떻게 다층적으로 연결되고 재구성되는지를 탐구한다. 또 지난 7일 응축수탱크영역에서 진행된 퍼포먼스 ‘후회 없는 제스처’와 연결돼 음향과 몸짓을 통해 시간과 기억을 확장했다.
전시의 구성은 관객에게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거나 현재를 반추하는 것을 넘어,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만들어낸 시간의 간극 속에서 새로운 연결과 해석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한다.
정훈 총괄기획자이자 계명대학교 사진미디어과 교수는 “’우발적 미래의 시원’을 통해 관객이 복합적인 기억의 층위를 경험하며, 새로운 서사의 출발점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22일까지 부천아트벙커B39에서 열린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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