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국정 새판짜기에 돌입했다. 대통령실은 탄핵 부결로 발등의 불은 껐지만, 내치는 물론이고 외치까지 당정이 맡겠다고 나서면서 사실상 식물상태로 전락했다.
한 대표는 8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국정 전반을 운영할 수 없다고 강조한 셈이다. 한 총리도 이어진 대국민 담화에서 “한미, 한미일, 그리고 우리의 우방과의 신뢰를 유지하는데 외교부 장관을 중심으로 전 내각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 총리를 중심으로 한 내각이 내치를 맡고, 윤 대통령은 외치에만 집중하는 ‘책임총리제’를 넘어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요 우방국 우려가 크고, 현 상태에서 윤 대통령에게 외교를 포함한 모든 국정 동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대표와 한 총리의 이같은 국정 수습 방향이 실제 이뤄진다면, 윤 대통령을 비롯한 대통령실은 모든 활동에서 손발이 묶이게 된다. 인사권도 사실상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개각은 정부셧다운 위기 때문에 이뤄질 수도 없고, 부처 산하 공공기관장 인사 또한 당정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당내에서 윤 대통령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도 전날 탄핵 부결 뒤 사퇴했다. 윤 대통령은 퇴임 전까지 대통령 예우만 받을 뿐 정치적으로는 사망 선고를 받는 셈이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한 대표와 한 총리의 이같은 담화문에 별도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전날 국회의 탄핵 표결을 앞두고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자신의 임기를 포함해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 임기는 총 5년으로, 이제 약 2년5개월 가령 남은 상태다.
대통령실도 당정이 주도 아래 그간 국정운영에 대한 지원이나 인계 역할에만 그칠 것으로 관측된다. 오히려 검찰과 경찰 등이 민주당 고발에 따라 내란죄로 수사를 시작한 만큼 정상적인 업무도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피한 채 당정의 국정 수습 방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국정 수습을 위한 방안에 고심 중이다. 한 대표가 “국무총리, 당과 협의해 국정 운영을 차질 없이 챙길 것이다. 야당과도 충실히 의견을 나누겠다”고 밝힌 만큼, 당이 주도해 내각과 대통령실을 지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갈등으로 중단됐던 고위 당정대가 국정 컨트롤타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같은 당정 내 조직도 출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당내 친윤계와 친한계 갈등, 더불어민주당의 계속되는 탄핵 시도 예고에 따른 이탈표 관리 등은 당정의 이같은 국정 수습에 최대 리스크로 꼽힌다. 당장 친윤계와 친한계는 추 원내대표의 사퇴 이후 원내지도부 재신임 투표를 두고 충돌했다. 친윤계가 추 원내대표 재신임을 추진하자, 친한계에선 ”새로운 원내지도부로 가야 한다”며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 표결을 앞두고 잠시 봉합됐던 친윤계와 친한계 갈등이 새 원내지도부 선출을 앞두고 폭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민주당이 예고한 추가 탄핵 표결에서 이탈표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국민의힘에서 8명만 이탈하면 윤 대통령은 탄핵을 당하고 헌법재판소로 공이 넘어간다. 당정이 가장 우려하는 그림이다. 전날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 재표결에선 6명이, 윤 대통령 탄핵 표결에선 2명이 이탈한 바 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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