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강천석 조선일보 고문은 “국가 지도자로서 윤석열 대통령은 끝났다”며 “헌정 파괴를 시도한 대통령을 낳은 국민의힘은 우선 모든 기득권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국민의힘에게 ‘윤석열의 끝’이 ‘이재명의 시작’이 되는 사태를 막을 힘이 남아 있을까”라고 주장했다.
비상계엄 이후 국민의힘은 줄곧 의원총회를 열고 있는데, 야당이 발의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에는 반대한다는 당론을 고수하고 있다. 해당 칼럼은 여당의 ‘출구’로 ‘질서 있는 퇴진’을 제시하는 모습이다.
강천석 조선일보 고문은 「‘윤석열의 끝’이 ‘이재명의 시작’은 아니다」 칼럼에서 “국가 지도자로서 윤석열 대통령은 끝났다. 대통령이란 직명(職名)이 얼마나 더 오래 붙어 있을지 모르지만 국가 지도자 자격은 잃었다. 국민 마음에서 지워졌다.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라는 희비극(喜悲劇) 이전의 국가 지도자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 헛발질로 ‘윤석열 리스크’가 현실이 되면서 ‘이재명 리스크’가 발등의 불로 다가왔다. 이 대표는 ‘윤석열 탄핵’을 선창(先唱)하며 ‘다음 대통령은 내 차례’라는 듯이 의기양양하다”며 “이 대표는 15개 혐의로 4개 재판을 받고 있고 2개 혐의에 대해 1심 판결은 ‘유죄’와 ‘무죄’로 갈렸다. 하나라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대선에 나올 수 없다. 민주당은 지난 6월 22대 국회 출범 이후 윤 대통령 남은 임기 ‘3년은 너무 길다’면서 무더기로 탄핵결의안을 강행 처리해 정부를 마비시켰다. 시간에 쫓기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의 끝’이 ‘이재명의 시작’이 되는 걸 국민의힘이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강천석 고문은 “건너서는 안 될 강을 건너버린 대통령 앞에서 여당의 선택폭(幅)은 좁고 전망은 어둡다”며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
먼저 “하나는 탄핵에 동조하는 것이다. 지금 국민은 그쪽이다. 부분적으로 동조하면 당은 분열되고 전당(全黨) 일체로 동조하면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 국민의힘은 풀포기도 자라지 못하는 불모지(不毛地)로 변한다”고 했다. 두번째로 “탄핵에 반대하면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으로 남아 내란(內亂) 혐의 수사에 끌려다니고 여당은 헌정(憲政) 파괴 동조 세력으로 몰려 ‘지역 정당’으로 목숨만 이어간다”고 전망했다.
세 번째는 임기 단축 개헌이라고 했다. 그는 “세 번째가 탄핵에는 반대하더라도 대통령 임기를 단축해 2선으로 후퇴시키면서 개헌과 함께 ‘질서 있는 퇴장’을 준비하는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87년 대통령 중심제 헌법’의 종말이기도 하다. 지금 대통령은 인사(人事)에선 제왕(帝王)처럼 행세한다. 그러나 국회에서 다수당 자리를 잃으면 국가 생존 과제 해결에 무능(無能)한 존재가 돼버린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겨레 권혁철 기자는 7일 자 특별판 「기자들에 ‘테이저건’ 위협…포고령의 ‘처단’이 이런 것인가」 기사에서 지난 비상계엄 사태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권 기자는 “나는 지난 3일 저녁 국방부가 있는 서울 용산 삼각지에서 국방부 사람들과 저녁을 먹었다. 2시간가량 이어진 저녁 자리는 밤 9시쯤 끝났다. 2차 술자리가 이어졌는데 밤 10시가 가까워지자 술자리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 국방부 사람들이 전화 통화를 하러 나가더니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며 “밤 10시30분쯤 뉴스 속보가 떴다.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였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밤 10시40분쯤 국방부 청사 1층에 있는 기자실에 도착해 불을 켜고 자리에 앉으니 타사 기자들이 하나둘 기자실에 모였다고 했다. 이날 밤 11시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1호가 발표됐는데,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내용과 함께 이를 어길 시 처단한다는 표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권혁철 기자는 “밤 11시20분께 전투복 차림의 군사경찰(옛 헌병)이 갑자기 기자실에 들어와 ‘국방부 청사 내부에 있는 민간인들은 모두 나가야 하니 기자들도 나가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퇴거 명령의 근거가 뭐냐. 책임 있는 당국자가 와서 설명하라’고 맞섰다”고 했다.
이어 “5분가량 뒤 군사경찰이 다시 기자실에 들어왔다. ‘안 나가면 테이저건(전기 충격용 권총)을 쏠 수도 있다. 특임대가 투입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퇴거 요구에 따르지 않자 군사경찰은 ‘강제력을 행사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최후통첩을 남기고 돌아갔다. 멀리 있던 포고령의 ‘처단’이 테이저건으로 쑥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다 테이저건에 맞거나 포승줄에 묶여 끌려나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들었다”며 “30년간 기자 생활하며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1996년 강릉무장공비침투 때는 강원도에서 보름간 취재를 했고, 내무반 총기 난사, 서해교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전 등을 취재했다. 어지간한 일은 놀라지 않는데, 이번 일은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기자실에서 나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