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대가 국회에 난입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영화 ‘서울의 봄’이 다시 소환되고 예정됐던 인터뷰 일정이 연기되는 등 문화·체육계에도 후폭풍이 일고 있다.
4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서울의 봄’과 현실 상황을 비교하며 영화 재개봉을 요구하거나 패러디 포스터를 올리는 등의 게시물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개봉해 1300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은 전두환(극중 이름 전두광)이 1979년 12월12일 군사반란을 밀어붙이는 7시간의 기록을 긴박하게 그려낸 영화다.
이 영화가 소환된 건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뒤 국회에 헬기가 착륙하고 중무장한 군인들이 국회 문을 부수고 난입하는 등 2024년의 현실이라고 믿기 힘든 풍경이 영화 장면들과 겹쳐 보인 탓이다. 각종 패러디도 쏟아지고 있다. ‘서울의 봄’ 포스터 속 전두광을 윤 대통령 얼굴로 바꾼 패러디 포스터, 배우 정우성이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참석해 친자 관련 발언을 한 것을 보고 ‘서울의 봄’을 알게 된 윤 대통령이 영화를 보고 계엄을 ‘질렀다’는 조롱 어린 해설 등이 화제를 낳고 있다.
영화에서 전두환과 쿠데타를 모의한 사조직 하나회를 두고는 3일 밤 계엄 선포를 물밑 조정한 세력으로 지목받는 ‘충암파’와 비교하기도 한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인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계엄을 건의한 것으로 확인됐고, 충암고 후배인 이상민 행전안전부 장관이 함께 논의했을 것이라는 추측 기사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로 예정된 인터뷰 일정이 취소되는 일도 벌어졌다. 배우 서현진은 넷플릭스 시리즈 ‘트렁크’ 홍보를 위해 4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총 다섯번의 인터뷰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일괄 취소했다. 이후 오는 6일로 인터뷰 일정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가수 이승환은 4~5일 예정된 콘서트 일정을 취소한다고 공지했다가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자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승환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계엄이 해제됨에 따라 ‘흑백영화처럼’은 예정대로 진행토록 하겠다”며 “할 말 많은 오늘 더 깊고 짙은 사연과 노래로 만나 뵙겠다”고 전했다.
4일 저녁 예정됐던 팝스타 두아 리파의 내한공연을 두고도 문의가 빗발쳤다. 공연기획사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에스엔에스에는 “내한 콘서트 공연 하나요?” “비상계엄령 선포랑 상관 없죠? 어떻게 돼요?” “지방에서 출발합니다. 콘서트 진행 여부를 최대한 빨리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같은 댓글이 달리는 등 문의가 이어졌다. 주최 쪽은 이날 오전부터 논의를 진행한 결과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이날 오후 밝혔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주최, 기아 타이거즈 후원으로 이날 경기도 포천 몽베르컨트리클럽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41회 야구인골프대회는 전격 취소됐다.
애먼 문화유산 쪽에도 불똥이 튀었다. 국가유산청이 수년간 공들여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목록 등재를 추진해온 ‘한국의 장 담그기’는 4일 새벽(한국시각)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등재가 확정되는 경사를 맞았으나, 계엄령 사태로 묻히는 처지가 됐다. 보통 한국이 신청한 유산이 유네스코 공식유산으로 등재가 확정될 경우 국가유산청과 문화재계 대표단은 환호하는 반응을 보이곤 했지만, 최응천 청장 등 현장에 파견된 국가유산청 대표단은 무거운 표정으로 간단하게 박수만 치고 별다른 언급도 하지 않았다.
국가유산청이 오는 1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스튜디오159에서 열기로 했던 ‘국가유산청이 새로 쓰는 신라사’ 성과 공개회도 취소됐다. 국가유산청은 애초 경주 월성과 월지 및 동궁, 쪽샘 고분 같은 신라왕경유적 발굴 연구사업 10주년의 성과를 알리고, 최근 월지 인근 발굴 성과를 공표하는 행사를 계획한 바 있다. 국가유산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엄중한 시국상황에서 자축하는 성격의 행사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행사를 전면 취소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한겨레/김은형 선임기자, 김민제 기자, 노형석 기자 / webmaster@huffingto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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