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 발표되는 국가승인통계인 ‘가계금융복지조사’가 공표되기 직전 돌연 발표 일정이 지연되는 해프닝이 5일 벌어졌다. 공표 직전인 이날 오전 오류를 발견해 이를 정정해서 다시 발표하겠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통계 산식을 ‘코딩’하는 과정에서 담당 주무관 1명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오류를 뒤늦게 발견해 바로잡은 것도 해당 담당자였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통계청 내부 검증 시스템의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통계청은 이날 오후 12시를 기점으로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한 보도자료가 오전 8시 30분 일찍이 배포됐지만, 45분 뒤인 오전 9시 15분 돌연 ‘수치 오류로 인해 기 배포된 보도자료는 사용하지 말아 주시고, 폐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공지가 안내됐다.
가계금융복지조사는 매년 12월 초 발표되는 국가승인통계 중 ‘지정통계’다. 지정통계는 정부의 각종 정책의 수립·평가 또는 다른 통계의 작성 등에 널리 활용되는 것으로, 중요도가 높은 통계라고 할 수 있다. 표본인 약 2만가구별 자산·부채·가구구성을 조사하고, 이들의 소득·지출·원리금상환액 등을 연계한다. 이를 통해 가구별 재무 건전성과 한 사회의 소득 분배 상황을 파악해 볼 수 있다.
통계청은 통계 산식을 입력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가계금융복지 조사는 가명 처리된 각 가구원들을 30여종의 행정자료(국세청·보건복지부·한국신용정보원 등 13개 기관) 정보와 연계하는 작업을 통해 작성된다. 그런데 이번 조사 대상이었던 약 4만1000가구원 중 1%가량인 551가구원이 기술적인 문제로 행정 정보와 연계가 되지 않았다. 이들 가구의 경우, 별도 산식을 통해 값을 추정하는 작업이 별도로 필요하다.
문제는 그 추정 과정 중 ‘장기요양보험료’를 산정하는 단계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장기요양보험료는 지난해 바뀐 제도에 따라, ‘건강보험료×장기요양보험료율(0.9082%)÷건강보험료율(7.09%)’로 산출돼야 했다. 그런데 이 바뀐 산식을 코딩하는 과정에서 담당자가 장기요양보험료율 ‘0.9082%’가 아닌 ‘0.9082′를 집어넣은 것이다. 값이 100배 왜곡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해당 산식에 따라 잘못 산출된 장기요양보험료 값은 ‘건강보험료’, ‘공적연금’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또 나아가 ‘비소비지출’, ‘처분가능소득’, ‘소득분배지표’ 항목으로도 이어진다. 만약 원래대로 올바르게 ‘%’를 적용했더라면, 기존 잘못된 통계치보다 비소비지출은 줄고 처분가능소득은 올라가게 된다. 어쩌면 가계 형편이 현실보다 나은 것으로 왜곡된 통곗값이 제공될 수도 있었던 셈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장기요양보험료가 (1%가량 가구원에만 적용되는 계산식인 만큼) 큰 값은 아니기에 드라마틱하게 전체 지표에 큰 변동을 일으키진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간단하게 몇 개 수치를 수정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어서 좀 더 정확하게 재산출해서 다시 공표하자고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가계금융복지조사 공표 일정이 오류 발견으로 인해 지연된 일은 2012년 집계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이런 소동의 원인을 제공한 것도, 이런 문제를 발견해 뒤늦게 바로잡은 것도 단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담당하는 통계청 복지통계과 내에는 과장을 포함해 총 12명의 직원이 있다. 이 중 가계금융복지조사 산식을 통계 분석 시스템(Sas)에 집어넣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주무관 1명이다.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내검’(데이터의 오류를 탐색·처리하는 검수 과정)하는 기간은 5~10월로, 5개월에 달했다고 한다. 이 긴 기간 동안 통계사무관·과장·국장뿐 아니라, 해당 통계 조사를 공동으로 실시한 한국은행·금융감독원까지 함께 검수를 거친다. 하지만 이런 검수를 통해 살펴본 것은 산식에 따라 산출된 통곗값이 추세적으로 봤을 때 오류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여부였지, 산식 자체에 오류가 있었는지가 아니었다. 코딩 내용에 대해 ‘크로스체크’할 별도 인원은 없었던 것이다.
이 문제는 가계금융복지조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 과에서 담당하는 주요 통계로 사교육비 조사가 있는데, 이 산식을 담당하는 사람도 다른 주무관 1명이다. 통계청 각 과에서 생성해 내는 통계의 수만큼 코딩의 입력부터 검수까지를 전담하는 주무관들이 있는 셈이다. 한 관계자는 “통계사무관(주무관보다 선임) 이상은 결괏값에 대해 보고서를 쓰는 위치이니, (코딩에 관한) 역할은 주무관들이 하는 것”이라며 “사무관들이 주무관들이 하는 코딩까지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산식에 대해 검수할 인력이 없었던 시스템상 ‘허점’에 대해 통계청은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통계청은 “통계청이 작성하는 모든 통계를 대상으로 프로그램 코딩 등 세부 작성 과정에 대해 상호 점검 체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공지했다. 이번 일로 인해 담당자 처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통계법에 규정한 벌칙 조항에 따르면, ‘조사 오류 또는 입력 오류 등을 수정 또는 변경한 자’는 벌칙(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서 제외한다고 명시돼 있다. 담당 과장은 “착오된 부분은 죄송스럽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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