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다음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킨 제주 4·3 사건을 둘러싼 허위·왜곡정보가 온라인상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 중심에는 정치시사 유튜브와 댓글이 있다. 특히 4·3 사건과 관련된 정치인 막말을 제목에 사용한 보도에 악성댓글이 다수 게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안을 양비론적으로 접근하면서 ‘공산 폭동’ 등 부적절한단어를 사용한 언론사 유튜브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김수정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이용성 정책자문위원장, 유승현 정책위원은 지난달 29일 제주도에서 열린 「4·3 역사 왜곡 미디어 모니터링 결과보고회」에서 4·3 사건과 관련된 온라인상 허위정보를 분석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온라인상 4·3 사건 관련 허위정보 확산 수준이 심각한 수준이며, 그 중심에는 정치시사 유튜브와 악성댓글이 있다는 것이 보고서 결론이다. 관련 논란을 양비론으로 다루거나, 정치인의 문제적 발언을 그대로 사용하는 언론사에도 주의가 당부됐다.
보고서는 4·3 사건 관련 망언에 대해 양비론으로 접근한 언론사 유튜브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공산 폭동 등 4·3 사건과 관련된 부적절한 단어가 영상에 담겼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뉴스 채널의 영상이 제주 4·3 사건의 역사 왜곡, 허위정보, 혐오 표현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으며 중립적 보도 태도를 보이고 있더라고 자극적이고 선정적 용어나 프레임별 부적절 단어의 무분별한 사용은 왜곡된 사실을 확산시키는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치인의 문제적 발언을 기사 제목에 사용했을 때 댓글이 많이 달렸다. 보고서는 “기사 제목에 이재명, 김문수, 한동훈과 같은 정치인의 이름을 거론되면서, 이념적‧정치적 자극적 발언 자체를 제목에 인용한 보도”라며 “정치인의 문제적 발언을 기사 제목에 직접 인용해 기사를 작성하는 보도 관행이 댓글을 작성하도록 부추기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시사 유튜브는 4·3 사건 허위정보 유포의 중심에 있었다. 2020년 1월1일부터 2024년 10월31일까지 유튜브에 올라온 4·3 사건 관련 영상 381개 중 허위정보를 전하는 정치시사 유튜브 영상은 36개에 달했다. 보고서는 “정치시사 채널은 유튜브에서 제주 4·3 사건과 관련된 역사 왜곡과 허위정보를 확산시키고 혐오 차별을 조장하는 중심지”라고 지적하며 “대부분 영상이 제주 4·3 사건을 왜곡하거나 거짓 정보를 전달하고 있었고, 뉴라이트 계열이나 보수성향 그리고 기독교 극우 성향 채널들까지 역사 왜곡과 허위정보를 전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댓글을 통한 허위정보 확산과 역사 왜곡도 심각한 수준이다. 보고서는 2022년 1월1일부터 올해 10월31일까지 일간지·경제신문·방송사·통신사·제주지역언론의 4·3 사건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6917건을 분석한 결과 4·3 사건이 공산당 폭동이라는 내용의 댓글이 전체의 54.2%를 차지했으며 북한 등 공산당의 지시로 4·3 사건이 벌어졌다는 내용의 댓글은 22.2%에 달했다.
일부의 사실만 강조해 4·3 사건의 역사를 왜곡하는 댓글도 확산되고 있다. 남로당이 1948년 5월10일 총선거를 반대하기 위해 4·3 사건을 일으켰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CNN 인터뷰에서 4·3 사건을 공산당 폭동으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11월 CNN 인터뷰에서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4·3 사건이 시작됐다고 했지만 뒤이어 무고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다고 지적했다. 진상조사보고서 역시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총선거를 반대하기 위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고 했으나, 일제강점기 경찰 재등용·식량난·경찰 발포사건 등이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유튜브와 댓글을 통해 확산되는 허위정보는 △남로당 중앙 지시 △공산 폭동 △진상규명·보상 △반공주의 △지역주의 등 성격을 가지고 있다. 4·3 사건은 남로당 제주도당이 김일성과 소련 등 외부의 지시를 받아 일으킨 공산 폭동이라는 주장으로, 사건이 가진 복합적인 배경은 고려하지 않고 색깔론적 공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언론 기사와 유튜브, 댓글 분석을 중심으로 4·3 사건 역사 왜곡, 허위정보·혐오표현 유형을 체계화하고 이에 대한 대응 논리와 홍보를 강화해야 할 시점”이라며 “체계화된 모니터링 시스템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역사 왜곡과 허위정보를 감시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시민감시와 협력 체계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4·3 사건은 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까지 제주도에서 주민 수만 명이 사망한 사건을 말한다. 1947년 3월1일 3·1절 기념대회에서 기마경찰이 어린아이를 치고도 조치 없이 달아나자 시민들이 경찰서에 몰려갔고, 발포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민·관 합동 총파업이 시작됐으며, 이듬해 4월3일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발생해 1954년 9월21일까지 무력충돌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민 1만4822명(공식 집계)이 사망했다. 2003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제주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가 작성한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남로당 중앙당이나 김일성·소련 등 외부 세력의 개입은 확인된 바 없으며 군경토벌대에 의해 사망한 주민이 78.1%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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