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호텔롯데가 자산 유동화에 시동을 걸었다. 호텔 매각과 함께 호텔롯데가 최대주주로 있는 롯데렌탈의 지분 매각에도 나선다. 이를 위해 호텔롯데는 지난달 말 정기 임원 인사에서 호텔·면세·월드 등 3개 사업부 경영진 모두를 교체하는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숙원인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도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됐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지난달 28일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호텔롯데의 유동성 우려 해소를 위해 L7과 롯데시티호텔 2~3곳의 매각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매각 규모는 6000억원 수준이다. 또 해외에서 운영하는 부실 면세점을 철수하고, 잠실 롯데월드타워 내 면세점 영업 면적을 축소해 고정비를 절감할 계획도 밝혔다. 올해 2분기 기준 호텔롯데의 보유 부동산 공시지가가 6조7360억원에 달하는 만큼, 일부를 처분해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게 롯데 측의 구상이다.
◇호텔롯데에 무슨 일이?
올해 3분기 기준 호텔롯데가 1년 내 상환해야 할 단기차입금은 2조3061억원, 총차입금 규모는 8조7616억원 수준이다. 반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7108억원에 불과하다. 연결 기준 차입금 의존도는 49.5%로, 신용등급 하향 검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28일 기업설명회에서 롯데그룹은 11월 기준 호텔롯데의 현금성 자산은 1조1000억원대라고 밝혔다.
호텔롯데의 사업은 호텔(호텔·리조트·골프장), 면세점, 월드(롯데월드 어드벤처·롯데워터파크 김해·롯데월드 아쿠아리움) 3개 부분으로 나뉜다. 2019년만 해도 매출 7조3965억원, 영업이익 3183억원이었지만, 이듬해 발생한 코로나19로 실적이 반토막 났다.
지난해 매출은 4조7540억원으로 2020년에 비해 24%가량 증가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적자(-4976억원)에서 흑자(1326억원)로 전환했다. 그러나 매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면세 사업의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올 3분기 호텔롯데의 누적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마이너스(–) 285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계속된 투자와 계열사 지원도 호텔롯데의 재무 건전성 악화 요인으로 지목된다. 호텔롯데는 롯데렌탈 TRS 정산에 따른 추가 지분 인수로 2600억원을 썼고, 시카고 킴튼호텔 인수, 창이공항 면세점 관련 투자 등 굵직한 투자를 진행했다.
지난해에는 롯데건설 유동화 SPC에 대한 후순위대출(1500억원)과 선순위대출(9000억원)의 이자에 대한 자금 보충 등의 지원에 나서며 재무 부담이 가중됐다. 롯데건설 지분 43.3%를 보유한 호텔롯데는 롯데케미칼(44.02%)에 이은 2대 주주로, 그간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 등으로 롯데건설에 자금을 조달해 왔다.
◇번번이 미뤄진 IPO… 내년에도 먹구름
롯데그룹 내에서 호텔롯데가 가지는 존재감은 크다. 1970년대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는 관광 불모지인 대한민국에 호텔을 세워 관광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관광보국(觀光報國)의 일념으로 서울 서공동 반도호텔을 인수, 롯데호텔 서울로 재단장해 개장했다. 1980년에는 국내 최초의 종합 면세점인 롯데면세점을 세웠고, 2018년 세계 2위 면세 사업자로 올라섰다.
신동빈 회장도 이 사업에 애착을 가졌다. 2017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신 회장은 롯데면세점에 대해 “내후년 1위까지도 오를 수 있는 회사”라며 “서비스업의 삼성전자와 같은 회사”라고 했다. 2019년 도쿄 긴자에 시내 면세점을 열었을 땐 신 회장을 비롯해 모친 시게미쓰 하쓰코, 부인 마나미 여사, 장남 유열 씨(현 롯데지주 부사장) 부부, 누나 신영자 롯데 복지재단 의장과 그의 딸 장선윤 호텔롯데 전무 등이 총출동해 화제를 모았다.
롯데그룹은 광윤사→롯데홀딩스→호텔롯데→롯데지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또 롯데지주는 롯데케미칼, 롯데쇼핑, 롯데웰푸드, 롯데칠성음료 등을 계열사로 둔다.
하지만 일본 롯데 지주사인 롯데홀딩스가 지배하는 호텔롯데가 각 계열사에 영향을 미치는 불안정한 구조는 ‘롯데=일본기업’이란 꼬리표가 붙게 했다. 이에 롯데그룹은 호텔롯데의 상장을 통해 일본 즉 지분율을 희석시켜 한일로 이원화된 지배구조를 롯데지주로 일원화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호텔롯데 상장은 올해 부사장으로 승진한 신유열 부사장의 승계 재원 부담을 줄여줄 방안으로도 거론된다. 지난 3월말 기준 호텔롯데 지분은 최대 주주인 일본 롯데홀딩스(19.07%)를 제외하고 일본 L투자회사 7곳이 46.13%를 보유하고 있다. L투자회사의 지분 100%는 신 전무가 대표로 있는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LSI)가 갖고 있다. 재계에선 롯데 주요 회사의 지분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신 부사장이 호텔롯데가 상장하면 차익과 함께 그룹 내 지배력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2015년부터 시작된 호텔롯데 상장은 경영 비리와 관련한 검찰 수사와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사건 연루,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번번이 미뤄져 왔다. 10년째가 되는 내년에도 추진이 요원하다. 처음 상장을 추진할 당시 15조원까지 평가됐던 호텔롯데의 기업가치는 지난해 3조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달 28일 기업설명회에서 롯데 측은 “(호텔롯데의) IPO는 현재 검토 중이지 않으며 실적 개선이 우선 목표”라고 밝혔다.
IPO 성공을 위해서 호텔롯데는 재무 건전성 및 실적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려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이를 위해 내세운 것이 호텔 매각과 면세점 점포 철수, 호텔롯데가 최대주주로 있는 롯데렌탈 지분 매각 등을 통한 자산유동화다. 키(key)는 지난 1일 취임한 정호석 신임 호텔롯데 대표이사가 잡았다. 정 대표는 취임 후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사내 게시물에서 “모든 업무를 수치화해 효율성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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