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해 본다. 사랑하는 딸이 10대만 되어도 걸을 수 없다면 어떨까. 20대부터는 숨을 호흡기에 의지하다 30대에 숨진다면. 곁을 떠나 영영 볼 수 없게 된다면.
이를 늦춰줄 유일한 치료제 가격이 무려 46억 원에 달한다면. 어떡해야 할까. 평생 안 쓰고 모아도 결국 치료해줄 수 없단 게 얼마나 원망스럽고 애달플까.
희소병인 ‘듀센근이영양증(DMD)’. 세 살 전사랑 양이 앓는 이 병은, 신생아 때부터 근육이 점차 파괴된다고 했다. 다행히 미국에서 ‘엘레비디스’란 유전자 치료제가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 비로소 치료받을 수 있게 됐다.
사랑 양 같은 근육병을 가진 해외 환아들이 계단을 뛰고, 자전거를 타는 기적 같은 모습이 전해졌다. 치료받을 희망이 처음 보이기 시작했다. 치료제가 비싼 게 압도적인 문제였다. 사랑 양 아빠인 전요셉 씨(33)는 고심했다. 작은 시골 교회 목사인 그가 46억 원을 어떻게 벌 수 있을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겼을 거였다.
아빠가 선택한 방법은 걷는 거였다. 칠레 중부에 사는 근육병 환아 토마스의 엄마가 몸과 마음을 다해 낸 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토마스의 엄마 카밀라는 산티아고까지 1000km 넘게 걸으며, 50억 원이 넘는 치료비를 모았다.
11월5일에 부산에서 출발했다. 요셉 씨는 서울 광화문까지 가는 여정을 목표로 걷고 또 걸었다. 힘들단 말도 안 했다. 그가 SNS에 사랑 양을 향해 남긴 문장들을 봤다.
‘사랑아, 어떤 오르막도 우리는 오를 수 있단다.’
‘사랑아, 오늘은 하늘이 참 맑고 푸르단다.’
‘사랑아, 길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벌써 해가 져 어두울 때도 있단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말렴. 아빠가 너와 함께 걸어갈 거란다.’
컴컴한 밤에도 쉼 없이 걸으며 이런 글을 남겼다.
‘사랑아, 어둠이 깊은 밤이었는데도 아빠는 두렵지 않았단다. 네가 전화로 들려준 목소리가 어두운 길을 환히 밝혀주었거든. 너는 아빠의 빛이란다.’
그리하여 11월29일, 서울 광화문에 그가 도착했을 때. 740km를 완주해 슈퍼맨이라고, 기적이라고, 따뜻하다고 기사가 쏟아졌을 때. 마음 어딘가가 울컥, 속상하고 슬프단 생각을 했다. 13억 원이 넘는 모금에 성공했단 걸 보면서도 계속 아프고 저리기만 했다. 속내를 들여다봤다.
가뜩이나 버거운 생(生)의 여정을, 아픈 아이와 함께 이미 먹먹하게 걷고 있는 아빠인데. 그가 왜 470km씩 또 걸으며 치료제 비용을 이리 힘겹게 벌어야 하나 싶어서.
모두가 요셉 씨처럼 힘을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닐텐데, 이 정도 애를 써야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게 과연 맞는 건가 싶어 생각을 떨치기 힘든 거였고.
이리 화제가 될 만큼 걷지 않아도 충분한 치료제가 도입 돼야 한다고. 그래서 아픈 아이들이 더 많이, 저렴하게 치료받아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건강보험 적용이 두루 돼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였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건 섬세한 제도다. 희소병인 척수성근위축증(SMA)를 앓는 13살 서연이는 건강보험에 탈락해, 치료제 주사를 1억 원을 내고 맞았다. 같은 주사를 일본에 사는 유다 유이 씨는 단돈 10만 원에 맞았다. 고소득자도 연 30만 원을 넘게 부담하지 않도록 하는, 일본의 보험 제도 덕분이었다.
선진국은 가능한데 우린 안 되는 이유가 뭔가. 희소병일지라도,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그만큼 가치를 존중하는 것.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결국 ‘관심’이라고 했다.
남보다 좁고 힘든 길을 자처해 가는, 이영목 강남세브란스 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희소병 확률이 10만분의 1이면, 한 명 걸리고 9만9999명은 안 걸리는 거잖아요. ‘내가 아니고 쟤가 걸려서 다행이다’ 이게 아니라, 최소한 10만분의 1만큼은 관심과 책임을 가져야지, 그런 생각이 있어야 해요. 함께하면 끝까지 함께할 수 있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관심입니다.”
요셉 씨가 했던 말을 끝으로 남긴다. 이 글의 마침표가 흘러가도 묵직하게 오래 남길 바라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걷고 뛰고 호흡할 수 있게 해주세요. 우리 아이들은 오늘이 가장 근력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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