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1987년 민주화 이후 첫 비상계엄 선포·해제 사태로 인해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이 회복 불능 상태에 빠졌다. 야당은 물론 여당조차 공감하지 못한 ‘명분 없는 계엄’이었던 데다, 그간 ‘계엄은 없다’고 공언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정면으로 부인한 꼴이 되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를 기대할 수도 없게 됐다.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돌발’ 비상계엄 선포는 비밀스럽고 독단적으로 진행됐다. 윤 대통령이 전날 대국민 담화에 나서기 전까지도 대통령실 참모진과 여당에서도 이를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계엄선포를 앞두고 소집한 국무회의에서는 다수의 국무위원이 이를 반대했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대통령실 참모진과 국무위원은 계엄이 해제된 4일 오전 일괄 사의를 표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3일) 오후 10시 25분경 긴급 대국민 특별담화를 갖고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기자단에게도 공지되지 않은 담화는 방송을 통해서만 생중계됐다.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며 ‘종북 반국가 세력 척결’을 계엄 명분으로 내세웠다. 사실상 막강한 의회 권력을 쥐고 있는 민주당에 대한 ‘불만’을 계엄을 통해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윤 대통령의 ‘명분’은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조차 공감을 받지 못했다.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입장문을 내고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헌법가치를 훼손하는 명분 없는 정치적 자살 행위에는 절대로 동조할 수 없음을 밝힌다”고 했다.
◇ 명분 없는 계엄에 리더십 회복 불능
윤 대통령의 이번 비상계엄 선포가 그간 대통령실과 정부의 입장을 부정했다는 점도 문제다. 앞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 준비’ 주장이 나왔을 당시 대통령실은 “민주당 의원들의 머릿속에는 계엄이 있을지 몰라도 저희 머릿속에는 없다”고 일축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도 지난 9월 국회 국방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용납하겠나”라고 했다. 하지만 김 장관은 이번 계엄 사태를 주도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이번 계엄 사태는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대내외적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외신들은 일제히 이번 비상계엄 선포·해제 사태가 윤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을 위협할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외교전문매체인 ‘포린폴리시’는 3일(현지시각) “셀프 쿠데타는 굴욕적인 실패로 끝났다”고 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자신의 몰락을 거의 확실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낙연 전 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에 “기괴한 비상계엄 사태로 그는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국내외적 신뢰를 회복 불능 상태로 잃어버렸다”고 했다.
야당은 빠르게 윤 대통령의 탄핵 절차를 추진 중이다. 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개혁신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은 이날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공동 발의하고 오는 5일 새벽 국회 본회의를 열고 이를 보고하기로 했다. 이들은 탄핵소추안에 “44년 헌정사의 후퇴와 동족상잔의 끔찍한 비극적 기억을 소환한 국민 배신행위”라며 “대통령을 믿고 국정을 맡긴 주권자들에게 ‘돌이키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가져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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