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전국을 뒤흔들었던 전남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재심이 시작됐다. 피고인쪽과 검찰은 당시 강압 수사 의혹을 받는 강아무개 전 검사 등을 증인으로 불러 사실 여부를 다툴 예정이다.
광주고법 제2형사부(재판장 이의영)는 3일 광주고법 201호 법정에서 백아무개(74)씨와 백씨 딸(40)의 재심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들은 2009년 7월6일 오전 순천시 자택에서 청산가리를 넣은 막걸리를 건네 백씨의 부인 ㄱ(당시 59살)씨와 주민 등 2명을 숨지게 하고 2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백씨 부인은 집에 있던 독극물 막걸리를 일하는 장소로 가져가 동료들과 나눠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2월 1심을 맡았던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홍준호)는 둘 다 무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을 맡은 광주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이창한)는 백씨에게 무기징역, 딸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오던 백씨 부녀가 ㄱ씨에게 이 사실을 들키자 살인을 공모했다고 판단했다. 2012년 3월 대법원 제1부(재판장 이인복)는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2022년 1월 백씨 부녀와 가족들은 유력한 증거였던 자백이 검찰의 강압수사에 의한 것이고 무죄를 밝혀줄 폐회로(CC)텔레비전 영상을 추가 발견했다며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날 재심 첫 공판에서 피고인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범행 동기부터 유죄 증거, 피고인들의 진술까지 검찰에 의해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문맹이고 경계성 지능장애가 있는 백씨 부녀의 상황을 검사가 실적을 쌓기 위해 악용했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백씨는 마당에 놓여 있던 막걸리를 집 안으로 가져다 놓은 죄책감이 있을 뿐 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거나 부인을 살해하려 한 사실이 없다”며 “당시 수사 검사는 포승줄과 수갑을 채운 채 백씨 부녀에게 장시간 강압, 회유, 기만 조사를 벌여 원하는 진술을 이끌었고 ‘자발적·적극적 진술’이라고 조서에 기재했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또 범행에 사용한 막걸리를 백씨가 사건 발생 4일 전 순천 아랫장의 한 식당에서 구입했고 백씨가 오이 농사 해충 제거를 위해 범행 17년 전부터 청산가리를 보관하고 있었다는 검찰 조사 결과에 대해서 “수사 초기 경찰이 확보한 도로 시시티브이 영상에는 백씨 차량의 이동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검찰은 법원에 영상을 제출하지 않았다”며 “검찰은 오이 농사를 짓는 농부 50여명을 상대로 농사에 청산가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진술을 확보해놓고도 이를 숨겼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또 “막걸리에서 나온 청산가리 양은 29.63g으로, 플라스틱 숟가락 기준 8숟가락 분량”이라며 “백씨 부녀는 두 숟가락을 막걸리에 넣었다고 진술했는데 이는 수사 초기 청산가리 양을 잘못 측정한 검찰이 허위 자백을 유도한 사실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당시 집안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숟가락에서는 청산가리가 검출되지 않았다.
검찰은 백씨 부녀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무죄로 판단했던 1심 판결에 대해 사실 오인, 법리 오인이 있다는 항소 이유를 유지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수사 검사였던 강씨와 검찰수사관 정아무개씨, 담당 경찰, 식당 주인, 오이농사 농부 등을 증인 신청했고 검찰도 강씨와 검찰 수사관 등을 증인으로 부를 예정이다.
다음 재판은 2월11일 같은 법정에서 오후 4시10분 열리며 백씨 부녀의 수사 당시 행동을 분석한 심리학과 교수, 청산가리 상태를 설명할 화학전공 교수를 증인으로 불러 신문할 예정이다.
한겨레 김용희 기자 /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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