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의료계 단체들의 탈퇴로 출범 20일 만에 와해된 여·야·의·정 협의체(이하 협의체)가 중단을 알렸다. 이에 정부는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다며 ‘휴식기’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그나마 유의미했던 ‘대화의 문’마저 닫히면서 의정갈등이 해를 넘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지난 1일 오후 진행된 여야의정 협의체 4차 회의에서 정부·여당·의료계 참여자들은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핵심 안건인 ‘2025년도 정원 조정’을 두고 의정 간의 갈등이 이어지면서 정부의 태도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한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협의체 탈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의료계가 2025년도 의대 정원 변경을 지속해 요청했지만 입시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였다”며 “상황을 감안해 당분간 공식적 회의를 중단하고 휴지기를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합의된 회의 재개 날짜는 없다”며 “휴지기 동안 정부와 여당은 의료계와 대화를 지속해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료계 대표로 참여한 대한의학회 이진우 회장은 더 이상의 협의가 의미 없고 정부와 여당이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고 봤다. 다만 정부·여당이 의대 증원에 대해 확실한 태도 변화나 정책 변화를 보여준다면 참여 여부를 다시 결정하겠다는 설명이다.
협의체는 지난달 10일 출범했다. 이후 4차례 전체회의를 진행해 의정갈등의 해법을 모색했으나 의료계가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증원 규모를 줄일 것을 요청하면서 줄곧 평행선을 달렸다. 여기에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8일 의료계 단체의 협의체 탈퇴를 요구하는 등 와해 시도도 일어난 바 있다.
대통령실은 협의체 중단 상황에 대해 ‘쿨링타임(냉각기)’을 겪고 있는 것이라며 언제든지 다시 재개할 수 있다고 일축했다.
대통령실 장상윤 사회수석은 이날 KBS 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해 “의료계 내에 합리적 의견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다”며 “강성 주장에만 매몰되지 말고 의견을 모으는 거버넌스를 좀 변화를 해서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출범 20일 만에 협의체가 와해되자 환자단체는 “절망의 늪에 빠져들었다”며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한국루게릭연맹회·한국폐암환우회 등이 소속된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3일 성명을 내고 “환자들과 국민은 지난 10개월 동안 의료계, 정치권, 정부기관의 3무(무책임·무능력·무대책) 행태와 이번 여의정 협의체 파탄을 보면서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었다”며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협의체마저 의사단체들이 걷어차 버렸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애초 추진하려 했던 의료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바란다”며 “그 과정에서 의료공급자인 의사들보다 수요자인 국민과 환자들 목소리를 더 많이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와 환자단체로 구성된 새로운 논의기구를 구성해 함께 의료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증질환연합회 김성주 대표는 “많은 국민들은 의사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공공· 필수·지역 영역은 고사 직전이다. 의사들은 대화현장에 나와 이 부분을 환자들과 함께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처럼 의료계와 정부, 국회가 의정갈등 해소할 소통 창구가 중단된 상황에서 의료계는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전공의와 의대생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보다 강경하게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의정갈등의 핵심으로 꼽히는 전공의와 의대생을 아우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협 임현택 전 회장이 탄핵된 뒤 조직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공의와 의대생의 지지를 받아 탄생됐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박형욱 위원장 체제의 비대위는 15명 중 6명이 전공의와 의대생으로 구성돼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남은경 사회정책팀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의정갈등 해소를 원했지만 사실 협의체 시작부터 이 같은 상황이 우려됐었다”며 “이제는 ‘의사 달래기’ 목적의 협의체가 아닌 의료계, 시민사회, 환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포함된 논의기구를 통해 지속가능한 의료정책과 체계를 위해 발맞춰 나아가야 할 시기”라고 진단했다.
이어 “여·야, 국회가 의료개혁을 위해 더욱 머리를 맞대야 한다”며 “과거 비정상적이었던 의료 구조의 전환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더하고 다음 단계를 향해 달려 나갈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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