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내년도 예산안 핵심인 사회 보장 재정 법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예산안을 하원의 표결을 거치지 않고 통과시켰다. 이에 야당이 2일(현지 시각) 정부 불신임안을 발의했다. 정부를 붕괴시켜 내년도 예산안을 부결시키겠다는 전략으로 미국 정부의 셧다운 상황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프랑스 정부가 붕괴 직전에 몰리자, 투자자들이 프랑스 주식과 채권을 매각하면서 프랑스의 차입 비용이 급등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가디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바르니에 총리가 이날 내년도 예산안 중 일부를 처리하기 위해 헌법 제49조 3항을 발동, 하원 표결 없이 예산안을 처리했다. 문제가 된 사회 보장 재정법은 내년도 예산안 중 일부로 건강보험, 국민연금, 가족 지원 등 각종 사회 보장 시스템의 재정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는 예산안이다. 야당인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과 극우 국민연합(RN)은 사회 복지 축소, 구매력 감소를 우려하며 사회 보장 재정법에 반대해 왔다. 야당이 반대할 것이 분명하자, 바르니에 총리가 의회 패싱 루트를 선택한 것이다.
헌법 제49조 3항을 적용하면 법안은 하원의 표결 없이 통과될 수 있다. 하지만 야당도 이에 대응할 권리를 갖는다. 프랑스 헌법에 따르면 야당은 헌법 제49조 3항이 발동될 경우, 24시간 안에 불신임 동의안을 제출할 수 있다. 불신임 동의안은 하원의원 중 최소 10분의 1이 동의하면 본회의에 상정된다.
야당인 신민중전선(NFP)과 국민연합(RN)은 즉각 정부 불신임안을 발의했다. RN의 마린 르펜 하원 원내대표는 “바르니에 총리는 1100만 유권자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프랑스 헌법상 불신임안은 하원 재적 의원에 과반수 찬성이 있으면 가결된다. 전체 의원 577명 가운데 현재 2석이 공석이라 가결 정족수는 288명이다. 불신임안이 통과되면 정부(총리와 내각)는 즉각 총사퇴해야 한다. 반대로 불신임안이 부결되면 법안과 정부는 유지된다. NYT에 따르면 1958년 이래 헌법 제49조 3항은 100회 이상 사용됐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에는 당시 총리였던 미셸 로카르가 28번에 걸쳐 헌법 제49조 3항을 발동했다. 그러나 불신임안이 통과된 경우는 드물고, 마지막으로 통과된 것은 1962년이다.
◇ 프랑스 정부 붕괴 우려에 유로화 하락
문제는 프랑스 정부가 붕괴할 수 있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정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크다는 점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의원을 뽑는 선거를 실시할 권한이 있다. 의원들을 견제하고 의원들이 연이어 정부를 전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재 마크롱 대통령은 해당 권한을 사용할 수 없다. 프랑스는 지난 7월 조기 총선을 실시했고, 헌법에 따라 총선이 치러진 다음 해에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 즉 새로운 총선은 2025년 7월에야 실시할 수 있다.
이에 여당이 다수당이 아닌 상황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되고, 프랑스가 올해 안에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 시장을 흔들리고 있다. 프랑스 시각으로 이날 오후 4시 10분 기준, 파리 외환시장에서 유로화 환율은 1유로당 1.0470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1.01% 급락했다. 프랑스 국채에 대한 투자 심리도 위축돼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2.7bp(1bp=0.01%포인트) 상승한 2.923%까지 올랐다. 채권 금리 상승은 가격 하락을 뜻한다.
이미 프랑스는 정부 부채와 적자로 유럽에서 재정적으로 가장 어려운 나라 중 하나다. 이에 바르니예 총리는 2025년 600억 유로를 절감하려는 목표 아래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키려고 했다. 프랑스 부채는 3조2000억 유로 이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12%를 넘는다.
정부가 붕괴하면 1월 1일부터 세금을 인상할 권한이 없어 정부 운영을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된다. 내년도 예산이 없으면 프랑스 기업들은 2025년에 대한 명확성이 부족해져 투자와 고용을 미룰 수 있다. NYT는 “프랑스인들은 현재 7.4%인 실업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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