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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을 잡아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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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20 정상회담이 열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건물 벽에 “인류와 지구를 위해 초부유층에서 세금을 부과하라”라고 쓰인 문구가 투사됐다. 사진=이송희일 제공
▲ G20 정상회담이 열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건물 벽에 “인류와 지구를 위해 초부유층에서 세금을 부과하라”라고 쓰인 문구가 투사됐다. 사진=이송희일 제공

며칠 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렸다. 바로 그 시각 거대한 슬라이드가 건물 벽에 투사됐다. “인류와 지구를 위해 초부유층에서 세금을 부과하라”, 기후운동가들이 쏘아올린 문구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G20 회담에 쏠린 초미의 관심 중 하나가 ‘글로벌 부유세’다. 25년 G20 역사상 최초의 의제로서, 의장국인 브라질의 룰라 정부가 전세계 억만장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해 불평등 완화와 기후 재원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글로벌 부유세는 프랑스 경제학자 가브리엘 주크만이 고안했다. 그가 보기에, 이 지구 행성은 세계 상위 0.0001%, 다시 말해 상위 52명의 억만장자들이 세계 GDP의 13% 이상의 부를 독점하는 불평등의 심연에 잠식돼 있다. 지난 수십년간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불평등이 심화됐고 급기야 가장 부유한 1%가 하위 95%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억만장자 3000명의 실효세율은 0.3%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억만장자 3000명에게 2%의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연간 2500억 달러(한화 340조 원)를 걷자는 것이 글로벌 부유세의 기본 골자다. 이 돈으로 보건, 교육 등 공공서비스를 강화함으로써 불평등을 완화하고, 기후 대응 기금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이다.

누가 봐도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지난 6월 입소스 여론조사도 이 제안의 대중적 지지를 입증한다. G20에 속한 17개국의 시민의 약 68%가 부유세를 지지한 반면, 반대 입장은 11%에 불과했다. 글로벌 부유세는 공공성의 기반을 허물어 부유층의 호주머니만 채우는 부자감세에 대한 응당의 반발인 셈이다. 오죽하면 마크 러팔로를 비롯한 대서양 양안의 백만장자들 200여명이 부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라고 목청을 높였겠는가. 디즈니 상속녀 애비게일 디즈니의 일침은 사태의 본질을 적시한다.

“극단적인 부의 편중은 우리 세계를 산 채로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기후를 파괴하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G20 정상회담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스페인, 프랑스, 남아공, 중국 등 대부분의 나라가 글로벌 부유세 찬성했다. 그러나 미국과 독일이 반대했다. 또 한국의 기획재정부 역시, 지난 7월 재무장관 G20 회담에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수치스러운 일이다. 부자감세에 혈안이 된 나라답다.

▲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G20 각국 정상, 국제기구 수장들이 11월19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19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G20 홈페이지
▲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G20 각국 정상, 국제기구 수장들이 11월19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19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G20 홈페이지

심지어 지난 11월 27일 유엔총회에서 열린 ‘유엔 국제조세협력기본협약’ 결의안 투표에서 한국은 또 반대표를 던졌다. 125개국이 압도적으로 찬성하는데 한국와 미국을 비롯한 부유한 나라 단 9개국만 반대표를 행사해 국제적 비난을 자초했다. 부유층에게 사회적 부의 젖꼭지를 물려 배를 불리우느라, 초부유층과 다국적 기업들의 탈세와 자본 도피를 막고 조세정의를 설계하자는 국제적인 열망을 외면했던 것이다.

물론 이번G20 정상회담 선언문에는 부유세에 대한 초국적 협력만 명시돼 있고 구체적 조항이 누락된 상태다. 그렇다 해도 이번 공동성명은 공정하고 진보적인 과세 규범을 형성하려는 세계사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임에 분명하다. 유엔 국제조세협력기본협약 역시, 불평등을 구조화한 OECD 기반의 낡은 조세 규칙을 개혁하는 새로운 기준틀이 될 가능성이 높다.

G20의 글로벌 부유세, 유엔 글로벌 조세 결의안 등 앞으로 조세 개혁 요구는 시대사적 흐름이 될 것이다. 당연하게도 지금의 극단적인 부의 기울기를 조정하지 않고서는 우리 삶의 재생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기 때문이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는 게 근본적인 대응이지만, 그에 앞서 부유세는 인류와 지구를 산 채로 먹어치우는 슈퍼 부자들의 무정부적인 탐욕을 제지하는 최소한의 도덕적 재갈로 기능할 수 있다.

부자들에게 증세하라(Tax the rich)는 구호와 짝은 이루는 것이 바로 ‘부자들을 잡아먹어라(Eat the rich)’다.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을 때, 민중은 부자를 잡아먹을 것이다”라는 표현에서 연원한 것으로, 월스트리트 점령, 코로나 시국, 또는 칠레 봉기 등 불평등 이슈가 전면에 등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출현한다. 정말로 식인을 하자는 게 아니라 사회와 삶을 지속하기 위해 부를 재분배하라는 이야기다.

아마도 현재 이 구호가 가장 어울리는 나라가 한국일 것이다. 상속-증여세를 낮추는 것은 물론 가상자산과세 유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부자들의 목구멍에 사회적 부를 쏟아붓는 윤석열 정부. 하긴 민주당이라고 더 나을까. 종부세며, 금투세며 나란히 부자감세를 추진하며 우경화되고 있지 않은가. 다시 반복하지만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을 때, 끝내 민중은 부자들을 잡아먹을 것이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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