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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낭만 ‘눈’, 기후변화에 ‘공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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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년만의 이례적인 11월 폭설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설이 우연이 아닌, 가속화된 ‘기후위기’의 시작이라고 경고한다./ 사진=박설민 기자, 편집=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117년만의 이례적인 11월 폭설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설이 우연이 아닌, 가속화된 ‘기후위기’의 시작이라고 경고한다./ 사진=박설민 기자, 편집=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117년만의 이례적인 11월 폭설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지난달 27일부터 28일 내린 눈에 건물 지붕이 무너지고 나무가 쓰러졌다. 이로 인해 5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 피해도 속출했다. 40cm 높이까지 쌓인 눈에 전국 도로는 마비 상태가 됐다. 하늘길도 막혔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28일 기준 142편의 항공편이 결항·지연됐다.

사정이 이쯤되면서 정부의 미흡한 제설작업능력에 대한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피해를 키운 가장 큰 원인은 ‘왜 11월에 역대 최대 규모의 폭설’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설이 우연이 아닌, 가속화된 ‘기후위기’의 시작이라고 경고한다.

◇ 묵직하고 축축한 ‘습설’, 건물부터 전선까지 막대한 피해 유발

이번 폭설이 막대한 피해를 입힌 결정적 요인은 눈의 성질이다. 이번에 내린 폭설은 ‘습설(濕雪, Wet snow)’이 주를 이뤘다. 습설은 말 그대로 물기를 가득 머금은 눈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27일 내린 눈의 수상당량비는 ‘10’ 수준이었다. 수상당량비란 강수량 대비 적설량이다. 이 비율이 낮을수록 물기가 적은 눈이다.

습설이 무서운 이유는 ‘무게’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내리는 가벼운 얼음 입자 형태의 ‘건설(乾雪, Dry snow)’보다 3배 이상 무겁다. 가로·세로 길이가 1m의 습설 덩어리는 무게가 150kg에 달한다. 만약 20m 길이의 지붕에 10cm의 습설이 쌓이면 그 무게는 3,000kg, 즉, 3톤에 육박한다.

지난달 27일부터 28일 내린 폭설 현장. (위쪽) 도로 위에 쌓인 눈으로 차가 멈춰버리고 (아래) 길의 나무들이 눈 무게를 버티지 못해 쓰러지거나 휘어버렸다./ 박설민 기자
지난달 27일부터 28일 내린 폭설 현장. (위쪽) 도로 위에 쌓인 눈으로 차가 멈춰버리고 (아래) 길의 나무들이 눈 무게를 버티지 못해 쓰러지거나 휘어버렸다./ 박설민 기자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습설은 겨울철 심각한 재난으로 자리 잡았다. 가장 대표적 사례는 지난 2010년 스페인에서 발생한 폭설 사태였다. 2010년 3월 8일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 해안에서는 60cm가 넘는 높이의 폭설이 내렸다. 뇌우, 강풍을 동반하면서 눈은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습기를 머금었다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었다. 이 폭설로 카탈루냐 지역에선 2명이 사망하고 9,280만유로(약 1,368억7,350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습설은 도로 교통마비, 건물 붕괴뿐만 아니라 전력 공급에도 치명적이다.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한 전봇대, 송전탑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11월 24일부터 11월 27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북서부 지역에 습설을 동반한 폭설이 내렸다. 이로 인해 80개 이상의 송전탑이 손상됐고 4일 동안 25만 가구에 전기 공급이 끊겼다.

이는 습설이 전선에 달라붙는 특성 때문이다. 노르웨이 기상연구소는 “습설은 전력선, 케이블, 기둥 및 통신 타워와 같은 구조물에 눈이 쌓이면 시스템에 외부 기계적 부하가 발생한다”며 “이는 눈이 도체에 강한 접착력을 가진 조밀한 원통형 ‘얼음갑옷’을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눈이 많이 내리는 북유럽 지역에선 이와 관련된 연구가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은 핀란드 기술연구센터(VTT)의 연구다. VTT 연구진은 2005년 독일 폭설 사태 당시 발생한 피해를 조사했다. 그 결과, 송전탑 케이블에는 직경 12~18cm의 ‘얼음껍데기’가 생겼음을 확인했다. 습설이 전선에 달라붙은 뒤 얼어버린 것이다.

이때 전선에 눈이 가하는 하중은 1m당 30~70N. 이를 무게로 환산하면 3.06~7.14kg의 눈덩어리가 전선 1m마다 매달려 있는 것이다. 보통 송전선의 길이는 수백m 이상이다. 따라서 전선은 수백kg의 하중을 버텨야 하는 셈이다. 또한 강풍이 겹치면 전선이 끊어질 확률은 더욱 커진다.

VTT 연구진은 “지난 2005년 독일에 발생한 강풍과 폭설은 엄청난 양의 습설을 발생시켰고 이로 인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 전역에 전력 손실이 발생했다”며 “이러한 피해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영향을 예측하기 위해선 유사한 기후 조건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습설은 전선에 매우 치명적이다. 전선에 달라붙는 특성으로 도체에 강한 접착력을 가진 조밀한 원통형 ‘얼음갑옷’을 형성하기 떄문이다. 사진은 2000년 3월 아이슬란드 남동부에서 발생한 습설이 전선에 달라붙은 모습. 전선에는 직경 9cm에 달하는 얼음층이 생겼다./ Journal of Applied Meteorology and Climatology
물기를 잔뜩 머금은 습설은 전선에 매우 치명적이다. 전선에 달라붙는 특성으로 도체에 강한 접착력을 가진 조밀한 원통형 ‘얼음갑옷’을 형성하기 떄문이다. 사진은 2000년 3월 아이슬란드 남동부에서 발생한 습설이 전선에 달라붙은 모습. 전선에는 직경 9cm에 달하는 얼음층이 생겼다./ Journal of Applied Meteorology and Climatology

◇ 기후변화에 습설 증가… 눈사태엔 더욱 치명적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재난의 원인이 ‘기후변화’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달 28일 기상청 정례 예보 브리핑에 따르면 이번 폭설은 북서쪽에서 생긴 눈구름이 수도권으로 유입되면서 발생한 것이다. 이는 ‘절리저기압(切離低氣壓, Cut off low)’과 ‘해수온 상승’ 영향 때문이었다.

절리저기압이란 상층에서 빠르게 부는 ‘제트기류’가 구불구불하게 잘려나가 생기는 한랭한 저기압이다. 북극의 찬 공기를 머금은 채 한반도 상공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 이때 현재 해수면 온도는 12~15℃로 따뜻한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차가운 절리저기압 바람이 서해바다를 지나가자 ‘해기차’(대기와 바닷물 간 온도차)에 의해 눈구름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공상민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한반도 북부의 절리저기압과 중국 내륙 쪽 고압부 사이에 발생한 강한 바람이 북극 지역의 찬 공기를 끌어내렸다”며 이번 습설 동반 폭설 사태의 원인을 설명했다.

바다가 뜨거워지면서 폭설이 증가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아시아 지역 전체가 심각한 영향권에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2019년 일본 미에대학교 생물자원학부 연구진은 이미 중위도의 따뜻한 해수 온도(SST) 이상 현상이 기후적으로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지역에서도 강설 현상을 활성화함을 밝혀낸 바 있다.

미에대 연구진은 “일본 열도 내 눈이 잘 내리지 않는 지역의 폭설에 대한 데이터 분석 결과, 북서쪽의 강한 바람과 낮은 기온이 폭설의 주 원인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여기에 동해 지역의 비정상적인 해수온 상승은 다량의 수증기를 제공, 엄청난 강설을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습설 증가는 눈사태 피해를 더욱 악화시킨다. 사진은 알프스 지역에 발생한 눈사태의 모습. 왼쪽 사진의 눈사태는 건설로 인한 것으로 비교적 피해가 적다. 반면 오른쪽 사진의 눈사태는 습설 눈사태로 송전탑을 무너뜨릴만큼 위력이 상당하다./ Nature
기후변화로 인한 습설 증가는 눈사태 피해를 더욱 악화시킨다. 사진은 알프스 지역에 발생한 눈사태의 모습. 왼쪽 사진의 눈사태는 건설로 인한 것으로 비교적 피해가 적다. 반면 오른쪽 사진의 눈사태는 습설 눈사태로 송전탑을 무너뜨릴만큼 위력이 상당하다./ Nature

아울러 기후변화로 인한 습설 증가는 눈사태 피해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프랑스 그르노블알프스대·클레르몽오베르뉴대 연구팀은 지난 5월 프랑스부터 스위스에 이르는 알프스 산맥의 데이터를 분석, 눈사태 위험에 대한 기후변화의 영향을 정량화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 기후변화가 가속되면서 저지대에서 눈사태 발생 숫자, 규모, 계절성, 활성 경로 등이 전반적으로 감소했다. 따뜻한 날씨에 눈이 녹아버리면서다. 하지만 고지대의 경우 오히려 습식 눈사태 비율이 증가했다. 고지대 강설량은 증가하면서다. 여기에 기온 자체는 높아 눈이 쉽게 녹으면서 끈적한 형태의 눈사태가 늘었다.

연구진은 “높은 고도에서 강설량이 증가하면 눈사태 활동이 최고조에 달하고 물이 많고 진창과 같은 눈사태의 수가 증가할 수 있다”며 “이 같은 눈사태 활동 패턴은 지속적인 온난화에 따라 낮은 고도에서 높은 고도까지 바뀌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눈사태 위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시사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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