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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미달러화 강세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원화도 예외 없이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환율이 1400원을 넘나들고 있다. 외환당국이 환율 안정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시장 참가자들은 대내외 여건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환율이 어떤 심리적 임계 수준을 넘어서면 어느덧 일반 대중들에게는 우리 외환당국이 결코 손 놓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돼 왔다. 세계 9위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의 존재감이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는 결과다. 그렇다고 외환보유액을 전적으로 믿는 것은 또 아니다. 일각에서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아무튼 ‘최후의 보루’로써 외환보유액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
지난 10월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156억 달러로 2018년 중반 처음 4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물론 숫자상 변화는 크지 않다. 다만 몇 년 사이 외환보유액을 둘러싸고 있는 제반 여건에 있어서 두 가지 관점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민간 부문의 포지션 변화이다. 오랫동안 민간의 대외투자포지션은 부채 초과 상태였다. 그 중 외환보유액은 대외자산의 주축으로서 우리 경제의 대외 복원력(resilency)을 지지하는 큰 버팀목일 수 밖에 없었다. 이후 민간의 대외투자가 급증한 결과 이제는 민간도 외환보유액만큼 자산초과상태에 이르게 됐다. 더이상 우리나라 대외부문의 안정성을 외환보유액에 국한시켜 평가해서는 안될 정도로 말이다.
한편 또 하나의 눈에 띄는 변화는 외환시장 구조의 선진화다. 얼마 전 우리나라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결정됐다. 이는 우리나라 외환시장에 대한 비거주자들의 접근성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를 세계가 인정해 준 결과물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원화의 국제화에 성큼 더 다가설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이 외환보유액 수준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게 없지만 주변 여건은 놀라울 정도로 개선됐다. 덕분에 이제는 외환보유액의 크기나 변동폭에 대한 관심을 넘어 국제금융시장을 배경으로 보다 큰 렌즈로 외환보유액을 포함한 외화자산 전반을 보면서 큰 그림을 그려볼 때다.
먼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선진국 통화처럼 원화도 환율을 제대로 시장에 한번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변동성 완화 차원에서 정당화돼온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조차 최대한 인내하면서 시장을 지켜볼 수 없을까. 당장은 발칙한 상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금융 및 자본시장을 선진국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첫걸음으로서 그리고 더 나아가 원화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통화로 발돋음시키기 위해서는 안 가본 길을 가보는 것이다. 그동안 당연시했던 인식을 새롭게 전환해 보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외환보유액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미래 세대를 위한 외화자산 운용으로 시야를 확대시켜 보자. 이미 정부는 보유외화자산을 외환보유액과 비(非) 외환보유액으로 구분하여 운용해 왔다. 외화자산의 일부를 한국투자공사를 통해 대체자산으로 운용하면서 장기 수익성을 제고하고 있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이다. 이제는 자산의 대부분을 외환보유액의 테두리에서 운용하고 있는 한국은행이 과감히 외화자산 운용의 변화를 꾀할 차례다. 서두를 필요 없이 일단은 보유자산의 운용성과 중 일부를 외환보유액에 편입하지 않고 장기적 수익을 도모할 수 있는 대체자산에 투자함으로써 서서히 비(非) 외환보유액을 늘려나가면 된다. 그 결과 마침내 외환보유액 운용이라는 오랜 틀에서 보다 자유로워지고 국가적으로는 외환보유액을 포함한 중층적 외화자산 구조를 구축함으로써 미래세대를 위한 자산운용체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는 과거처럼 외환보유액에 의존해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신흥국 경제가 아님을 인식하고 더 이상 외환보유액의 빈번한 사용과 그로 인한 무책임한 소진을 감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위기대응수단으로서의 외환보유액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미래세대를 위해 장기수익을 도모할 수 있는 국부적 관점의 중층화된 외화자산체계를 확립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은행은 외화자산을 일부 대체자산으로 다변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지나고 보면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일들이 많다. 더 이상 과거의 관점에 얽매이지 말고 이제는 미래를 그려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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