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법정 심사 기한을 넘긴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의 본회의 자동 부의를 막는 국회법 개정안이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정부 예산안 원안과 세입 부수법안의 법정 기한인 11월 30일까지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더라도 다음 날 본회의에 자동으로 부의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72명 중 찬성 171표, 반대 101표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은 조세법률주의 원칙 위배 등을 이유로 반대했지만, 과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이 법안 처리를 주도했다.
‘정부안 프리패스’ 폐지 주장한 민주당
민주당은 현행 국회법이 국회의 예산 및 세법 심사 권한을 약화시킨다며 개정을 추진해왔다.
현행 자동부의 제도는 2014년 개정된 국회선진화법에 포함된 내용이다. 이전에는 예산안 처리가 해를 넘기는 사례가 빈번했으나, 법 개정을 통해 법정 기한을 넘길 경우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도록 했다. 민주당은 이 제도가 정부가 예산 심의 과정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를 폐지해 국회의 심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산안 자동부의 폐지법을 대표발의한 민주당 임광현 의원은 이날 본회의장에서 “조세법률주의는 반드시 국회에서 제정하는 법률에 의해야 하는데 세법을 사실상 정부가 다 만든다”라며 “이런 현상은 정부 예산과 세법 프리패스 제도인 현행 국회법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임 의원은 “국회 선진화법은 국회의 물리적 충돌을 개선했지만 예산안과 부수법안 심사에 대한 약화를 초래했다”며 “자동부의제를 염두에 둔 정부여당은 방어적·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신속 절차로 인해 정부 의도대로 심사가 이뤄지는 경향이 심화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 조세입법권이 무력화되는 결과가 초래됐다”며 법안 개정을 촉구했다.
여당, ‘예산안 처리 마비’ 우려 표명
국민의힘은 개정안 통과에 강력히 반대하며 여당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는 반대토론에서 “민생을 인질로 잡는 법”이라고 맹비난 했다.
배 수석부대표는 “예산자동부의제 도입 이후 윤석열 정부 출범 전까지 예산안은 매년 12월 10일을 넘기지 않았다”라며 “자동 부의 제도를 통해 예산안이 정치 인질이 되는 것을 막고 예산을 적기에 통과시켜 국민의 신뢰를 되찾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자동부의 제도 폐지는 10년 전 깜깜이 속으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이라며 “과박 의석을 무기로 민생을 볼모로 민주당의 이득을 취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앞서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지난 10월 31일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을 만나 ‘야당이 예산안 자동부의제 폐지 법안을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하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것인지’라는 취지의 질문에 대해 “당연히 행사돼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한 바 있다.
국회의장 역할 확대…여야 갈등 지속될 듯
개정안에 따르면 자동부의가 폐지된 대신, 국회의장이 여야 교섭단체와 협의해 본회의 부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여야 간 추가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당은 개정안 통과가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지연시키고 특정 예산을 관철하려는 야당의 의도가 포함된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자동부의가 사라져도 국회 심사를 통해 충분히 예산안 처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번 개정안이 향후 여야 대립의 또 다른 불씨로 작용할 전망이다.
민주당 주도 ‘농업4법’ 국회 통과
한편 이날 민주당 등 야당이 추진해온 ‘농업4법’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쳐 재석 254명 중 찬성 173명, 반대 80명, 기권 1명으로 가결했다.
쌀 가격 급락 또는 초과 생산 시 정부가 의무적으로 초과 물량을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농업4법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농안법 개정안 △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 △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쌀 과잉생산이 정부 재정에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법안을 무산시킨 바 있다.
또한 이날 본회의에서는 딥페이크 등 허위영상물로 얻은 범죄 수익 몰수 및 삭제 권한을 강화한 성폭력 처벌법 개정안이 재석 의원 전원 찬성(재석 268명 중 찬성 268명)으로 통과됐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불법 영상물 삭제 요청을 거부할 경우, 수사기관이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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