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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저항보고서㉟] 엄마 잃은 원숭이는 어깨뼈가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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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멸종위기종은 생태계 안정성, 생물 다양성 유지를 위해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그 희귀성은 금전적 값어치로 연결돼 불법거래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멸종위기종은 생태계 안정성, 생물 다양성 유지를 위해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그 희귀성은 금전적 값어치로 연결돼 불법거래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서늘한 사육시설 안, 커다란 유리벽 뒤로 원숭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기자와 눈이 마주친 원숭이는 불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이내 안정된 모습으로 나무와 밧줄을 타며 놀기 시작했다. 이따금 기자를 보며 신기한 ‘동물’을 본 듯 웃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때 원숭이의 움직임이 어딘가 어색했다. 보통의 원숭이들과 달리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팔을 벌린 채 나무와 밧줄에 매달려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고릴라처럼 어깨가 위로 튀어나온 모습이었다. 원숭이의 어깨뼈가 휘어버렸기 때문이다.

◇ 새끼 때 납치된 긴팔원숭이… 부모 잃고 어깨뼈 장애 생겨

지난달 방문한 이 사육시설의 이름은 충남 서천에 위치한 ‘국립생태원 에코케어센터’. 주요 전염성 질병으로부터 멸종위기동물을 보호하는 동물 질병예방격리동이다. 멸종위기동물 보호 및 국가 재난형 질병 예방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교육할 수 있는 전시·교육을 목적으로 국립생태원에서 운영 중이다.

센터에서 기자를 반갑게 맞이한 원숭이들은 ‘노랑뺨볏긴팔원숭이’와 ‘흰팔긴원숭이’다. 국제적으로 개체수가 부족해 보호받고 있는 종들이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종 보전상태목록 ‘IUCN 적색 목록’에 따르면 두 종 모두 ‘위기(Endangered, EN)’ 등급에 해당한다. 이는 야생에서 절멸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대표적 멸종취약종인 ‘자이언트판다’의 등급인 ‘취약(VU, Vulnerable)’보다도 한 등급 위다.

‘국립생태원 에코케어센터’에서 보호 중인  ‘노랑뺨볏긴팔원숭이’와 ‘흰팔긴원숭이’. 국내 아파트서 불법적으로 길러졌다.  2016년 구조돼 국립생태원으로 와 근육은 회복했지만 한번 변형된 어깨뼈는 돌아오지 않아 영원히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됐다./ 박설민 기자
‘국립생태원 에코케어센터’에서 보호 중인  ‘노랑뺨볏긴팔원숭이’와 ‘흰팔긴원숭이’. 국내 아파트서 불법적으로 길러졌다.  2016년 구조돼 국립생태원으로 와 근육은 회복했지만 한번 변형된 어깨뼈는 돌아오지 않아 영원히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됐다./ 박설민 기자

극진한 보호받아야 할 두 원숭이들은 모두 어깨뼈가 휘어져 위로 툭 튀어나온 상태였다. 아파트에서 불법적으로 길러진 것이 원인이었다. 이로 인해 원숭이들의 팔 근육과 어깨뼈는 퇴화됐다. 2016년 구조돼 국립생태원으로 와 근육은 회복했지만 한번 변형된 어깨뼈는 돌아오지 않아 영원히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됐다.

원래 노랑뺨볏긴팔원숭이와 흰팔긴원숭이들은 베트남, 캄보디아로 추정되는 동남아시아 열대우림에서 살았다. 하지만 밀수꾼에 의해 새끼 때 납치된 후 국내로 밀반입돼 아파트에서 불법 사육됐다. 이때 원숭이의 가족들은 모두 몰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부성애와 가족 간 유대가 강한 긴팔원숭이들은 새끼 보호에 온 가족이 힘쓰기 때문이다.

김율 국립생태원 대외협력부 과장은 “긴팔원숭이들은 가족 간 유대감, 특히 모성애가 매우 강한 동물이라 새끼가 위협을 받으면 모두 지키려고 달려든다”며 “밀수꾼들이 새끼를 온전히 데려왔다는 것은 그들의 어미, 가족들 모두 죽였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긴팔원숭이들을 보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이지만 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잘못된 욕망은 원숭이 가족들의 삶은 완전히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비싼 값에 원숭이들이 불법으로 거래되다보니 여전히 동남아시아 지역에선 밀수가 팽배한 실정”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국립생태원 ‘CITES동물 보호시설’에는  약 270마리가 시설에서 보호받고 있다. 이 중 90%는 악어, 뱀, 거북, 도마뱀 등 파충류다. / 박설민 기자
국립생태원 ‘CITES동물 보호시설’에는  약 270마리가 시설에서 보호받고 있다. 이 중 90%는 악어, 뱀, 거북, 도마뱀 등 파충류다. / 박설민 기자

◇ 뱀, 악어 등 파충류 밀수 ‘多’… 게임기·물병에 담아 밀반입

국립생태원에서는 긴팔원숭이뿐만 아니라 여러 밀반입 동물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 역할을 맡는 시설은 ‘CITES동물 보호시설’. 밀수·밀거래되는 국제적 멸종위기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2021년 8월 문을 열었다. 최대 총 140여종 580여마리의 동물 수용이 가능하다. 지난해 기준 53종 441마리가 시설에서 보호받았다. 현재는 약 270마리가 시설에서 살고 있다.

시설에 특히 많은 보호를 받고 있는 종은 ‘파충류’였다. 실제로 CITES동물 보호시설 내 사육장은 악어, 뱀, 거북으로 가득했다. 그중엔 포악한 성질을 가진 늑대거북도 있었다. 일반 포유동물보다 희귀성이 높아 불법 사육 선호도가 높아 밀수·밀거래 건수가 많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시설 내 보호되고 있는 동물 중 90% 이상이 파충류다.

시설을 돌아보던 중, 노란색의 거대한 나무뿌리 기둥처럼 보이는 생물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아나콘다(Anaconda)’였다.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뱀으로 남아메리카 지역 브라질, 파라과이에 서식한다. 1997년 동명의 영화에서 무서운 식인뱀으로 등장해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동물이다.

국립생태원에서 보호 중인 ‘옐로우 아나콘다’. ‘그린 아나콘다’보다는 작은 종으로 최대 4m, 60kg 정도까지 성장한다./ 박설민 기자
국립생태원에서 보호 중인 ‘옐로우 아나콘다’. ‘그린 아나콘다’보다는 작은 종으로 최대 4m, 60kg 정도까지 성장한다./ 박설민 기자

국립생태원에서 보호하고 있는 아나콘다는 ‘옐로우 아나콘다’였다. ‘그린 아나콘다’보다는 작은 종으로 최대 4m, 60kg 정도까지 성장한다. 영화 속 모습과 달리 매우 느리고 온순해 동물원 등에서 자주 사육되는 종이다. 하지만 아무리 온순해도 아나콘다는 엄연히 최상위 포식자다. 때문에 국내 자연환경에선 당해낼 생물이 없다. 환경부에서는 아나콘다를 ‘사육시설등록종’으로 등록해 관리 중이며 밀반입은 당연히 불법이다.

불법인 만큼 멸종위기종 밀반입 과정은 매우 끔찍하다. 2015년 인도네이사에서 밀수된 유황앵무새는 500ml 크기 물병에 넣어져 반입됐다. 앵무새들은 좁은 물병 속에 숨구멍만 뚫은 다음 구겨 넣어져 있었다. 2022년 인천공항에서 발견된 물왕도마뱀 2종은 비디오게임기 속에 넣어져 반입됐다. 이밖에도 텀블러에 담긴 새끼악어, 두꺼운 책 틈에 넣어 반입된 새끼 게코도마뱀 등 다양한 밀반입 사례가 존재했다.

김동혁 국립생태원 CITES동물부 부장은 “물병, 게임기, 텀블러 등에 넣은 동물들은 엄청난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지만 생각보다 오래 버틸 수 있다”며 “설사 몇 마리가 죽는다 하더라도 밀수업자 입장에선 손해가 아니기 때문에 끔찍한 방법의 밀반입 사례가 매해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불법인 만큼 멸종위기종 밀반입 과정은 매우 끔찍하다. 2015년 인도네이사에서 밀수된 유황앵무새는 500ml 크기 물병에 넣어져 반입됐다. 또한  2022년 인천공항에서 발견된 물왕도마뱀 2종은 비디오게임기 속에 넣어져 반입됐다./ 박설민 기자
불법인 만큼 멸종위기종 밀반입 과정은 매우 끔찍하다. 2015년 인도네이사에서 밀수된 유황앵무새는 500ml 크기 물병에 넣어져 반입됐다. 또한  2022년 인천공항에서 발견된 물왕도마뱀 2종은 비디오게임기 속에 넣어져 반입됐다./ 박설민 기자

◇ 한 마리에 3,000만원 호가… 끊을 수 없는 불법거래의 굴레

이 같은 불법 야생동물거래 문제를 막기 위해 전 세계에선 힘을 합치고 있다. 대표적인 대응 방안이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다. 1975년 발효된 이 조약은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이다. 멸종위기 생물종의 무질서한 포획, 채취에 대한 억제 역할을 한다.

CITES 협약에는 현재 183개국이 가입돼 있다. 한국은 1993년 가입했다. 협약에 따르면 규제대상은 5,000여종의 동물과 2만8,000여종의 식물 등 약 3만3,000종의 생물이다. 각국은 CITES 대상 생물의 멸종위기 정도에 따라 부속서Ⅰ,Ⅱ,Ⅲ으로 나눠 관리한다. 이중 부속서Ⅰ에 해당하는 종은 국제거래에 대한 엄격한 제약을 받는다.

하지만 CITES 협약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야생동물들의 밀수·밀거래가 여전히 성행 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희귀한 멸종위기종은 그 값어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있다. 싼값에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밀수입한 후 국내 불법 사육장, 판매업자들을 통해 비싸게 멸종위기종을 파는 것이 현재 주요 수법이다.

김동혁 부장은 “현지에서 야생동물 거래 가격은 1만원에서 1만5,000원 정도인데 이를 한국에 들여오면 보통 70에서 80만원까지 올라간다”며 “게코도마뱀, 알비노 콘스네이크 등 파충류 중 예쁜 색깔로 변이한 개체는 수백, 수천만원으로 팔려나간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희귀한  멸종위기종 파충류는 국내에 들어올 경우 1,000만원 상당에 팔리기도 한다”며 “최근 보호시설에 들어온 방사거북의 경우 동물원 등 합법 시설에서 사육하기 위한 구매 가격이 3,000만원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이를 막기 위해 국내외 관련 기관에선 점차 처벌·단속을 강화 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천공항본부세관에서 이를 담당한다. 세관에서는 밀수의 경우 ‘관세법 제269조 (밀수출입죄)’에 따라 조사·처벌한다. 통과 서료 위조 등 합법을 가장한 반입에 대해선 ‘관세법 제270조 (관세포탈죄등)’에 의해 조사·처벌한다.

하지만 이를 통제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막대한 비용 때문이다. 독일 라이프니츠 생물다양성 변화 연구소·핀란드 오울루대학교 공동 연구진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매년 불법 야생동물거래로 인한 자원 손실은 연간 480억~1,530억달러(약 67조원~214조원)로 추산된다. 하지만 현재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불법 야생동물거래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되는 비용은 2억6,100만달러(약 3,643억원). 전체 손실액의 0.1%에 불과하다.

연구진은 “불법 야생동물거래와 같은 범죄 활동은 해당 국가에 대한 국제적 투자를 막고 국가 경제 개발 가능성을 더욱 제한하게 된다”며 “이로 인한 재정적 손실은 국가의 사회경제적 개발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시사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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