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28일 삼성전자 평택공장에서 반도체 업계를 만나 “국회에서 반도체 특별법이 원안대로 통과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특별법은 연구개발(R&D) 인력을 주 52시간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주 52시간 근무 체제로 인해 오후 6시면 컴퓨터를 끄고 퇴근해야 하는 현실이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는 업계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다.
그동안 국내 수출 대들보 역할을 해왔던 반도체 산업은 최근 국내외 불확실성 고조로 위기라는 평가가 많다. 이에 업계는 주 52시간 근무에서 반도체 업종을 예외로 해 R&D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한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법안 개정의 키를 쥔 야당이 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30분만 더하면 되는데 ‘컴퓨터 셧다운’
이날 오후 2시 삼성전자 평택공장에서는 ‘반도체협회 초청 간담회’가 열렸다. 고용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와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이 최근 불거진 반도체 위기론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취지다.
최근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반도체 보조금을 줄이는 등 정책 변화를 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중국이 자국의 반도체 투자와 생산을 급격히 늘리면서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반도체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런 위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오후 6시면 컴퓨터 전원을 끄는 셧다운으로 인해 R&D에서 어려움이 많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퇴근 시간 직전 30분 정도만 더 하면 결론을 낼 수 있는 상황에서 장비를 끄고 퇴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후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다음 날 2시간가량 다시 장비 설정을 한 뒤 새로 시작해야 한다.
김희성 강원대 법전원 교수는 “우리 근로 시간 제도는 반도체 연구개발처럼 특수한 분야에 유연하게 활용하기 어렵다”며 “오후 6시가 되면 연구 중이던 컴퓨터 전원이 자동으로 꺼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정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국내 반도체 산업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미국이나 일본처럼 근로자와 기업의 근로 시간 선택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김문수 장관은 “반도체 R&D와 같이 시급한 분야에 대해서는 송곳처럼 원포인트로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산업부 등 관계 부처와 함께 반도체특별법에 업계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반도체 시작 전 산업군 확대…”근로자 건강권 침해”
현재도 주 52시간 이상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기업들이 고용부 장관 인가를 받아 특별연장근로를 하면 주 최대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또 근로기준법상 선택근로제와 탄력근로제 등을 활용하고 있지만, 모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업계가 반도체 R&D 인력의 주 52시간 예외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실제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야당과 노동계가 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반도체를 시작으로 다른 업종에도 이런 예외 조항이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곧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지고 근로자의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야당이 추진하는 반도체특별법은 이날 예정된 본회의 안건에 오르지 못했다. 앞서 지난 2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법안심소위원회를 열어 반도체특별법을 심사했으나 반도체 R&D 인력의 주 52시간 적용 예외 등을 두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홍상진 명지대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위기를 극복하고, 기술 초격차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중요성이 매우 크다”며 “국가의 적극적 지원과 자유로운 연구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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