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11월 기준금리를 시장 예상과 달리 연 3.0%로 ‘깜짝’ 인하한 배경에 대해 이창용 한은 총재는 “미 대선 이후 (공화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하는) ‘레드 스윕’(red sweep)이 가시화한 것과 3분기 우리나라 수출 물량 증가세가 크게 낮아진 문제 등 큰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이런 여건 변화를 토대로 한은은 내년과 후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대로 낮춰잡았다. 이 총재는 “수출 증가율 둔화를 고려해 경제 전망을 낮췄다”며 “수출이 내수로 흐르는 온기가 약화할 것을 대비해 기준금리를 낮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성장 VS 환율’ 상충 관계… 금통위원 4대2로 결국 ‘인하’
이 총재는 28일 금통위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10월 포워드 가이던스(향후 3개월 내 기준금리에 대한 위원들의 전망을 취합한 것)에서 제시한 것과 달리 이번에 인하 결정을 한 배경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묻는 말에 “저희 입장에선 10월 이후 큰 변화가 있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10월 금통위 당시 금통위원 6명 중 5명은 ‘(당시 금리 수준인) 연 3.25%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는데, 이번 결정은 달랐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한은이 미 대선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고려했던 것은 맞지만, 상·하원 모두가 한쪽(공화당)으로 쏠린 ‘레드 스윕’은 우리 예상을 뛰어넘은 측면이 있었다”며 “우리 수출이 액수 면에서는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나 물량 증가세는 크게 낮아졌는데, 이것이 일시적 요인보단 경쟁국과의 수출 경쟁이 심화한 데 따른 구조적 요인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포워드 가이던스가 이번 인하 결정으로 한 달 만에 뒤집힌 것에 대해 이 총재는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포워드 가이던스는 ‘조건부’”라며 “조건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실망스럽겠지만, 큰 뉴스가 들어오면 경제 전망을 바꾼 것처럼 (기준금리에 관한 판단도) 당연히 바꾸는 것이다. 새로운 사실이 생기면 (포워드 가이던스도) 바꿀 수 있다는 걸 명확히 커뮤니케이션하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은은 이에 따라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지난 8월 종전 전망 대비 크게 낮춰잡았다. 내년과 후년을 각각 1.9%와 1.8%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2%로 보면, 내년·후년 경제 성장률은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수치”라며 “수출 증가율이 떨어지는 건 (근본적으로) 구조개혁을 통해 대응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금리가 성장률을 받쳐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기준금리를 25bp(1bp=0.01%포인트) 낮출 경우 경제성장률을 0.07%p 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다만 이번 결정은 금통위원 6명 중 2명의 ‘동결’ 소수 의견이 존재했던 만큼, 논의가 치열했던 분위기로 전해진다. 이유는 ‘환율 변동성’ 때문이다. 이 총재는 “유상대 한은 부총재(당연직 금통위원)와 장용성 금통위원이 기준금리 연 3.25%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소수의견을 냈다”며 “미 달러화 강세 영향으로 환율 변동성이 커져, 국내 외환시장과 물가에 미칠 영향을 유의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하·동결 모두 장단점이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덧붙였다.
◇ 석 달 뒤 시각도 ‘팽팽’… 3명 연 3.0% 유지 VS 3명 추가 인하
성장 대응과 외환시장 안정화 중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인지에 대한 시각차로, 금통위원들이 3개월 후를 내다보는 포워드 가이던스도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 총재는 “6명 중 3명은 대내외 경제 여건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성장 전망 자체의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경기 전망 변화에 따라 금리를 추가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견이었다”며 “나머지 3명은 우리 경제의 중립 금리와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을 고려해 속도를 점진적으로 조정할 수 있기에 현재의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것이 ‘조건부’임을 다시금 강조했다.
이 총재는 여전히 환율 변동성을 우려하고 있다면서도, 특정 환율 수준을 ‘타깃’(목표로 삼음) 하지 않는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외환시장 구조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특정 환율 수준을 위기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라며 “다행스럽게도 미 대선 결과를 앞두고 커졌던 ‘트럼프 트레이드’가 숨을 고르는 모습이다. 오히려 최근엔 원화 절하 속도가 다른 화폐에 비해 크게 나빠지지 않아, (한은이 인하를 결정하기에) 단기적으로 부담이 줄었다”고 말했다.
한은은 외환시장에 대한 우려를 통화 정책으로 대응하진 않았지만, 국민연금 ‘외환스와프’라는 수단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500억달러 규모 국민연금 외환스와프가 연말 종료되는데, 그 전 (확대를) 논의할 것”이라며 “(액수를) 몇 배까지는 아니고, 변동성에 맞춰서 상당한 정도로 늘려서 할 필요성은 있다”고 했다. 그는 “과도하게 환율이 절하되거나 속도가 빨라지는 경우엔 여러 수단을 통해 변동성을 조절할 수 있다는 원칙적인 시그널로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간 기준금리 결정에 주요한 고려 요인이었던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과 관련해선 문제가 완화됐다고도 판단했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등에 따른 금융 안정 문제는 8·9월 굉장히 걱정이 많았었다”며 “강력한 대출 규제를 중심으로 한 거시 안정성 정책을 구사해 안정되고 있는 상태로, 현재로선 그 걱정이 덜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가계부채 (증가세)는 11월 5조원대에서 유지되고, 12월엔 하향 추세를 그릴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한편 이 총재는 이날 일각에서 제기되는 차기 국무총리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현재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은 만큼, 한은 총재로서 맡은 바 업무에 충실히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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