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은 ‘법조1번지’, 전국 최대 법조타운이다. 서울중앙지검·고검·대검 등 주요 검찰청과 서울중앙지법·서울고등법원·대법원 등 주요 법원이 모여있다. 서초동에서 검찰과 법원을 출입하는 ‘법조(출입)기자단’의 폐쇄성에 대해 그동안 많은 비판이 나왔다. 법조기자단은 수사나 재판정보에 더 먼저,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는데 이 ‘법조기자단’에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법조기자단은 검찰발 보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데 검찰이 언론을 쥐고 흔들 수 있고 이러한 ‘언론플레이’를 통해 피의자는 제대로 된 방어권을 얻지 못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검찰에서 제공하는 정보의 조각들을 모아 ‘단독’보도를 하는 것보다는 사회적으로 의미있다고 판단한 사건의 재판을 취재해 양 당사자의 입장을 듣고 기사를 써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일부 매체는 검찰이 아닌 법원을 취재하고 있다. 다만 언론인의 의지만으로 이러한 재판 취재가 가능해야 하는데 이 역시 ‘서초동’에선 어렵다. 서초동에 있는 서울중앙지법·서울고등법원 재판에 가면 출입기자용 비표가 있어야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에서 열린 ‘윤석열 명예훼손(뉴스타파 vs 윤석열)’ 사건 세 번째 공판준비기일, 방청석에 있던 한 뉴스타파 기자가 ‘(법조)출입기자가 아니지만 노트북으로 기록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이에 재판장은 “기자들이 (타이핑한 워딩) 자료 공유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룰은 룰이니까 타이핑은 하지 말고 듣고 가달라”며 거부했다. 법조기자단 사이에서 재판 내용을 타이핑해서 공유할지 모르지만 출입 비표를 받지 못하면 펜으로 메모할 수밖에 없다. 같은 언론사 기자가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는데도 제대로 기록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창간한 법조전문 비영리 독립언론 ‘코트워치’는 이러한 ‘서초동’ 관행이 취재의 장벽이 된다는 사실을 느꼈다. 코트워치는 뉴스타파함께재단이 탐사보도 교육과 독립언론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뉴스타파저널리즘스쿨’(뉴스쿨)에서 연수받은 최윤정·김주형 등 두명의 기자가 만든 매체다. 코트워치는 창간 이후 이태원 참사,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등의 재판을 꾸준히 따라가면서 해당 내용을 토대로 사건 전후에 있었던 일이나 필요한 후속조치 등에 대해서도 보도하고 있다.
코트워치는 최근 서초동 ‘법조기자단’을 취재하겠다고 밝혔다. 최윤정 코트워치 기자는 지난 22일 뉴스레터를 통해 “코트워치 활동을 통해 바라는 ‘변화’가 뭔지 작은 것부터 뽑아내는 회의를 하는데 (동료인) 김주형 기자가 ‘코트워치가 서초동에서 노트북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을 뽑았다”며 “노트북을 써야 법정에서 오고 간 말을 더 정확하게 워처(코트워치 독자) 여러분께 전할 수 있다”고 했다. 최 기자에 따르면 수원·평택·대전·청주·안동·울산의 법원에서는 노트북 사용을 막지 않았다. 이태원참사 사건을 다루는 서울서부지법 등 서울의 다른 지역의 법원에서 노트북을 썼더라도 1심이 끝나고 사건이 서울고등법원으로 오면 노트북 사용이 금지된다.
최 기자는 지난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법정 안에서 노트북 사용 규정이 재판부 재량에 있다고 하는데 ‘서초동’에선 ‘규정’이라며 허가를 하지 않는다”며 “(오송참사 사건을 다루는) 청주지법에서는 재판부에서 ‘노트북 사용을 허가하겠다’고 미리 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 기자는 “(서초동 법원에서) 눈치를 보며 노트북을 펴면 경위가 ‘기자냐’고 묻고 코트워치 명함을 보여주면서 기자라고 해도 출입기자 프레스카드 없으면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법원에서는 녹음·녹화가 금지된다. 노트북을 사용하지 못하면 기록할 수 있는 양이 현저히 줄어든다. 최 기자는 “노트북을 못쓰면 기록 속도의 차이가 너무 크다”며 “재판부, 검사, 변호인들이 하는 토씨 하나하나가 중요할 때가 많은데 손으로 쓰다보면 중요한 단어나 뉘앙스를 다 받아쓸 수 없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코트워치 기자들은 ‘이 시대에’ 수필 속기를 배워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 최 기자는 “노트북 없던 시절 속기사들이 쓰던 방식인데 부호를 만들어 빠르게 받아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에 배워볼까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속기 공부 대신 서초동에서 ‘코트워치’와 같은 신생매체도 노트북을 쓸 수 있게 되는 ‘변화’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실제 재판 방청에는 피의자 가족들, 사건 피해자 등 다양한 관련자들이 법정을 찾지만 이들 역시 ‘출입기자’가 아니란 이유로 수첩에 메모를 해야 한다. 최 기자는 “성범죄 사건 재판에 연대방청 오는 분들이 많은데 노트북 사용이 막혀 어떻게 서로 나눠서 수기를 할 것인지 팁을 공유하기도 한다”며 “(코트워치가) 법조기자단에 들어가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라 노트북 사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최 기자는 “법조기자단이 전국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고 다른 지역과 서초동은 어떻게 다른지, 관련 규정이나 매뉴얼이 서초동에서 어떻게 마련돼 있는지 취재해볼 예정”이라고 했다. 또 “법조기자단 관련 미디어오늘·뉴스타파·셜록이 (서울고법·서울고검에) 제기한 행정소송과 헌법재판소 헌법소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코트워치의 두 기자는 왜 법조분야 독립언론을 창간했을까. 최 기자는 “김주형 기자는 (창업을 준비하는 뉴스쿨에서) 펠로우할 때 고 이예람 중사 재판 기사를 썼고, 난 어렸을 때부터 법정을 다룬 영화 등이 관심이 있었고 (뉴스쿨 연수) 당시 신당역 사건 선고를 계기로 성범죄 판결문을 본 경험을 바탕으로 준비했다”며 “재판에 가보면 정말 중요한 재판인데 기자가 아무도 없거나 있더라도 관심도가 떨어져 기자들이 나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코트워치는 ‘평택 SPL 제빵공장 산업재해(노동재해) 사망’ 등 당장 기사화하진 못했지만 감시가 필요한 재판을 방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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