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반도체는 ‘인공지능(AI)’의 두뇌다. 알고리즘, 데이터 처리, 연산 등 모든 AI의 작업능력은 곧 반도체 성능과 직결된다. 최근 AI산업이 발전하면서 그래픽 처리장치(GPU),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여러 반도체 관련 기술이 급성장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때 국가 반도체 기술력의 뿌리가 되는 것이 바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 분야다. 반도체 소부장 산업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글로벌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한국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우수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국가라 하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반도체 제조·설계기술뿐만 아니라 소부장 기술 분야 확보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에 글로벌 반도체 소부장 산업 현황과 해외 국가들의 지원책, 산업 트렌드를 살펴봤다.
◇ AI시대 맞아 ‘소재·부품’ 산업 급성장
반도체 소부장 산업 중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는 산업은 ‘소재(material)’ 분야다. 단순히 반도체를 만드는 재료 정도로 인식될 수 있으나 소재는 반도체 성능과 직결된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규소 결정에 불순물을 넣어 만드는 ‘외인성 반도체’용 소재다. 대표적으로는 실리콘(Silicon)을 꼽을 수 있다.
AI반도체 시장이 커지면서 반도체 소재 관련 산업 규모도 급성장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에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Fortune business insights)’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소재 시장 규모는 현재 693억9,000만달러(약 97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오는 2032년엔 연간 4.2%의 성장률을 보이며 962억4,000만달러(약 134조4,954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는 “반도체 소재 산업은 스마트폰, 컴퓨터, 전장 등 첨단 IT제품 수요 증가, AI, 사물인터넷(IoT) 등 산업 트렌드에 의해 촉진되고 있다”며 “특히 소비자용 전자제품산업은 5G연결 및 AI 통합 기능 추가로 혁신적인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켜 반도체 소재 시장 성장을 촉진한다”고 설명했다.
소재와 맞닿아 있는 ‘부품’ 부문도 소부장 핵심 산업 분야다. 특히 ‘세라믹’은 부품 산업 분야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라믹이란 열과 냉각 등으로 굳어진 고체 무기물이다. 쉽게 말해 도자기, 유리를 생각하면 된다. 세라믹 소재를 이용한 부품은 반도체 소자 제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때 세라믹 반도체 부품은 극한의 온도, 가혹한 화학 물질 및 높은 수준의 전기 전도도를 견디도록 설계해야 한다. 때문에 고도의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이 시장을 이끌어간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비즈니스리서치인사이트(businessresearchinsights)’에 따르면 반도체 세라믹 소모품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은 대부분 ‘일본’이 보유했다.
비즈니스리서치인사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용 세라믹 부품 핵심 기업은 △쿠어스텍(미국) △교세라(일본) △페로텍(일본) △TOTO Advanced Ceramics(일본) △GBC Advanced Materials (영국) △NGK Insulators(일본) △미코 세라믹스(중국) △ASUZAC Fine Ceramics(일본) △NGK 스파크 플러그(일본) △3M 세라믹스(미국) 10곳. 이 중 미국 2곳, 영국 1곳, 중국 1곳을 제외하면 6곳이 일본 기업이다.
비즈니스리서치인사이트는 “글로벌 반도체 세라믹 부품 시장 규모는 2022년에 14억7,050만 달러에서 2031년 29억1,178만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며 “예측 기간 동안 7.9%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반도체 산업은 전자, 통신, 자동차,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세라믹 소모품은 장비와 기계에 사용되는 필수 구성 요소입니다. 글로벌 반도체 세라믹 소모품 시장은 최근 몇 년 동안 상당한 성장을 목격했습니다.
◇ “AI부터 극저온까지”… 첨단기술 쏟아지는 ‘제조장비’ 분야
‘붕어빵’을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붕어빵에 필요한 소재·부품은 반죽과 팥이다. 하지만 이 재료들만 가지고 붕어빵을 만들 수 없다. 또한 예쁜 모양(성능)의 붕어빵을 만들기 위해선 좋은 붕어빵틀이 필요하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고성능의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선 소재와 부품도 중요하지만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제조장비’의 성능이다.
실제로 반도체 산업에 있어 반도체 제조장비 기업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미국의 ‘램리서치(Lam Research)’,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pplied Materials)’, 네덜란드의 ‘ASML’ 등 세계3대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슈퍼을(乙)’로 불리기도 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모두 이 기업들의 신형 장비 도입 경쟁을 벌인다.
이중 한국 반도체 업계가 주목해서 살펴볼 만한 기업은 ‘램리서치’다. 최근 램 리서치는 AI를 이용, 반도체 제조·진단 장비 성능을 극대화하는데 성공했다. 반도체 양산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장비에 적용한 것이다. 이를 통해 AI는 불량 원인 중 가장 연관된 데이터를 찾아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당 기술 개발은 램 리서치 ‘지능화장비 연구팀’에서 진행했다. 기술명은 ‘플라즈마 화학기상증착(PECVD) 공정 모니터링’. 앤드류 D. 베일리 책임연구원이 이끄는 지능화장비 연구팀에서 개발했다. ‘은닉 마르코프 모델(HMM)’ AI모델을 이용. 현상 변화를 확률로 표현한다. 불량 탐지도는 약 81%에서 9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AI뿐만 아니라 램 리서치는 최근 ‘극저온’ 식각 기술에도 집중하고 있다. 지난 8월 공개한 ‘크라이오(Cryo) 3.0’이다. 이 기술은 -60 ~ -70℃ 수준의 극저온 환경에서 반도체 회로를 식각(깎아내는)하는 기술이다.
크라이오 3.0 기술을 적용한 반도체 제조장비는 별도의 보호막 코팅 없이도 반도체 웨이퍼에 균일한 패턴 형성이 가능하다. 기존 식각 대비 2.5배 이상 공정속도도 빠르다. 또한 에너지 소비량은 40%, 탄소 배출량은 90% 줄어든다. 최근 반도체 업계의 핫이슈인 ‘지속가능한 반도체’에도 최적화된 셈이다.
세샤 바라다라잔(Sesha Varadarajan) 램리서치 글로벌 제품 그룹 부사장은 “크라이오 3.0은 반도체 제조사가 1,000층 높이의 3D NANA 개발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며 “기존 유전체 공정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낮고 제조 속도는 두 배 이상으로 AI시대 반도체 제조 장애물 극복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소부장 경쟁력 높이는 ‘일본’… 韓, 정부 지원 및 체질 개선 필수
반도체 소부장 산업 중요성이 커지면서 정부 차원의 투자도 세계적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산·학·연이 협력해 과거 ‘반도체 왕국’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막대한 지원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7월 일본 정부는 ‘섬코(Sumco)’의 새로운 실리콘 웨이퍼 공장에 약 7,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한다. 국가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섬코는 1999년 스미토모금속공업(현 일본제철)과 미쓰비시머티리얼즈 실리콘 웨이퍼 사업 부문이 합쳐져 설립된 회사다. 세계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섬코의 실리콘 웨이퍼 공장은 일본 남부 시가현 세워질 예정이다. 총 사업액은 약 2,250억(약 2조3,420억원)이 투입된다. 이중 약 33%에 달하는 750억엔, 우리 돈 약 6,888억원의 비용을 일본 경제산업성에서 부담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소니(SONY)’를 필두로 △미쓰비시전기 △롬 △도시바 △키옥시아홀딩스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 △라피더스 △후지전기의 일본 주요 반도체 기업 8곳도 2029년까지 5조엔(약 46조원) 규모의 반도체 설비 투자에 나선다.
특히 소니는 반도체 이미지 센서 증산에 오는 2026년까지 1조6,000억엔(약 14조6,816억원)을 투입한다. 또한 최근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소니 반도체 솔루션 그룹(SONY semiconductor solutions group) 내 기술자들은 램리서치 등 주요 반도체 제조 장비 업체와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 역시 이 같은 흐름에 맞춰 반도체 소부장 산업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는 27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반도체 생태계 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에 따르면 내년도 정부는 반도체 기반 시설 마련을 위한 기업 부담을 대폭 완화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약 3조원 규모의 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의 송전 인프라 사업비 중 60%를 차지하는 송전선로 지중화 작업 비용 분담을 추진한다. 정부가 부담하는 비용은 절반 이상이 될 계획이다.
국가 첨단전략 산업 특화단지에 대한 정부 지원 한도도 상향 조정한다. 현재 지원 한도는 500억원으로 제한돼 있다. 여기에 소부장, 팹리스, 제조 등 반도체 전 분야에 대해 내년 총 14조원 이상의 정책금융을 공급한다.
시중 최저 수준의 금리를 제공하는 산업은행 반도체 저리대출 프로그램도 내년 4조2,500억원 규모로 공급한다. 정부는 1,200억원 규모의 신규 반도체 생태계 펀드를 조성, 총 4,200억원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 반도체 업계의 ‘체질 개선’이라고 강조한다. AI산업 시대에도 여전히 국내 반도체 산업은 비메모리보다는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다. HBM이 AI반도체 분야 핵심으로 떠오르곤 있지만 소부장 관점에서는 한계가 뚜렷한 상황이라는 것.
이동주 SK증권리서치센터 연구원은 “국내 소부장 업체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비메모리보다는 메모리에 노출이 크다”며 “소부장 관점에서 관련 수혜 업체는 제한적이고 이마저도 국내외로 다변화되는 상황으로 결국 전통 메모리 산업의 국면 전환 여부에 크게 좌우될 것”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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