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전국 곳곳에서 폭설 수준으로 첫눈이 쏟아지면서 온라인에선 시대별로 다른 첫눈의 의미에도 관심을 갖는 분위기다.
출근길 교통혼잡의 짜증과 울상을 뒤로 물린채 첫눈이 사람들에게 묘한 기대와 흥분, 설렘을 안겨주는 건 ‘첫’이라는 의미일 거다. 무슨 일이든 첫 번째는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니 말이다.
첫눈은 단순히 눈이 내리는 것을 넘어 상징성을 담고 있다. 비와 바람, 우박까지. 자연은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선물을 주건만 유독 인간은 눈에 환호하는 것 같다.
현대 대중매체에선 첫눈은 첫사랑을 만나는 날로 자주 나온다.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고 이날까지 그 색을 유지하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첫눈 오는 날이 일종의 만우절처럼 여겨졌다. 첫눈 오는 날에는 왕에게 거짓말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
2013년 공전의 대히트 드라마 SBS ‘별에서 온 그대’ 3회에선 조선 시대 선현들의 아름다운 삶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그려졌다.
천송이(전지현 분)의 맹장염으로 급작스레 매니저가 돼버린 도민준(김수현 분)이 병원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고 조선시대에 이화(김현수 분)와 첫눈을 함께 맞았던 순간을 회상했다.
이화는 “첫눈이 오시네요. 이 나라 조선에선 첫눈이 오시는 날 그 어떤 거짓말을 해도 용서가 된답니다. 심지어 왕에게 하는 거짓말도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랍니다”라며 민준에게 “나으리가 좋습니다”고 수줍은 고백을 했다.
제작진은 “특정 날짜를 만우절로 정해 거짓말도 계획을 세우고 할 수 있는 서양의 풍속과는 달리, 첫눈이 오는 날을 만우절로 정한 선현들의 결정은 운치와 멋이 담긴 지혜다”고 해당 장면을 녹여낸 의도를 밝혔다.
이 장면은 단순히 첫눈이 주는 감회에서 비롯된 대사가 아닌,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는 실제 기록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세종 1년 상왕 태종이 노상 왕인 정종에게 첫눈을 상자에 담아 약상자라 속이는 거짓말을 했다는 기록에서 출발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첫눈을 고이 포장해 상대가 모르게 선물하고 그 상대가 포장을 풀면 지는 내기를 했는데, 진 쪽이 이긴 쪽의 소원을 들어줬다.
이 과정에서 받게 하려는 자와 받지 않으려는 자의 술래잡기 같은 상황도 벌어졌다.
실록을 보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이 첫눈이 온 날 친형인 노상 왕 정종에게 첫눈을 약으로 속여서 보내는데, 정종도 사전에 이를 알고 사람을 보내서 막으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다.
현대에서도 첫눈은 은유적으로 쓰인다.
2018년 6월 ‘실세 행정관’으로 불린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사직서를 제출하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며 반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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