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1, 방송장악 예산을 삭감했습니다.”
지난 2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전체회의에서 정동영 과방위 예산결산심사소위원장은 이른바 ‘방송장악’으로 규정한 예산항목에 대대적인 삭감과 민생예산 증액을 골자로 하는 2025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야당이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소추, 방송 관련 현안 청문회, 국정감사에 이어 예산으로 다시 ‘공세’에 나선 모양새다.
야당 단독으로 예산안이 과방위 문턱을 넘자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등 방심위원들은 각각 입장문을 내고 과방위가 의결한 예산안으로는 정상적으로 기구 운영을 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반발 입장이 다수 나오면서 언론에선 반발에 초점을 둔 보도가 이어졌다. 연합뉴스에서만 「상임위원 3명 공석 방통위, 인건비까지 삭감에 사면초가」, 「과방위, 방통위 인건비 등 대폭 삭감…與 “정부사업 무력화”」, 「방심위원들 “예산 30% 삭감에 방심위 기능 마비 우려」, 「방통위 예산 삭감에 산하기관도 휘청…“미디어교육 차질”」 등 예산 삭감 비판에 방점을 찍는 보도가 잇따랐다. 일부 언론에선 이번 예산안을 ‘정쟁’, ‘몽니’ 등으로 규정했다.
‘방송장악’ 이유로 대대적 삭감
스팸·디지털성범죄 등 예산은 증액
세부내역을 살펴보면 대대적인 삭감이 이뤄진 건 사실이지만 외려 주요 현안과 관련해 증액된 예산도 적지 않다.
과방위안은 방통위 본부총액에서 2억5000만 원, 운영지원과 기본경비에서 3억 원, 기획조정관 기본경비에서 6억800만 원을 삭감했다. 이들 예산은 언론 대상 소송 비용, 위원장·부위원장 인건비, 간부급 여비 등으로 쓰였다. 야당은 1~2인 체제인 방통위에 불필요한 예산이 과다 책정돼 있고 과도한 심의제재로 인한 소송비용이 남발된 점 등을 고려해 삭감했다는 입장이다.
방심위 예산의 경우 운영 전반에 쓰이는 경상비와 방송사를 심의하는 데 쓰이는 방송심의 예산이 각각 30% 삭감됐다. 정동영 소위원장은 지난 20일 “방심위의 편파심의 월권심의 표적심의 소송비용으로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방송심의 예산 일괄 30%를 감액했다”고 밝혔다.
방심위 인건비 총액에는 변동이 없지만 위원장, 부위원장, 상임위원의 연봉을 삭감(2억4000만 원)하고 이를 평직원 처우개선 등에 쓰는 안으로 조정됐다.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연봉은 1억9500만 원에서 5000만 원이 삭감됐다.
정책현안 관련 증액된 예산도 다수 있다. 재난방송의 중요성을 고려해 방송분야 재난관리 지원예산을 8억4000만 원에서 12억5000만 원으로 증액했다. 현안 과제인 디지털성범죄 등 불법유해정보 차단기반 마련을 위한 예산은 41억9000만 원에서 58억3000만 원으로 늘렸고, 불법스팸 대응체계구축 예산도 32억1000만 원에서 23억 원을 늘린 55억1000만 원으로 증액했다.
방심위의 인터넷심의인 통신심의 예산은 디지털성범죄와 불법유해정보 등 심의 강화를 위한 모니터 예산을 1억7000만 원 늘렸다. 반면 통신심의 예산 중 국제협력예산은 1억3000만 원을 줄였다.
TBS 지원예산 신설·지역방송 예산 증액
아리랑TV·국악방송 예산 “소관 아냐” 전액삭감
방송사 지원에 쓰이는 예산 변동도 컸다. 석달째 임금체불이 지속되는 TBS에 서울시와 방통위의 ‘무관심’이 이어지는 가운데 ‘TBS eFM 프로그램제작 및 운영 지원 확대’ 예산을 25억 원 신규 편성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예산이 전액 삭감돼 논란이 됐던 공동체라디오 활성화 예산도 5억 원을 마련했다. EBS 프로그램 제작지원 예산은 인공지능(AI) 분야를 다루는 프로그램 제작(10억 원)과 과학·문학 분야를 다루는 청소년 프로그램 제작(20억 원) 명목으로 정부안에서 30억 원을 늘린 330억 원을 편성했다.
아리랑국제방송(120억7000만 원)과 국악방송(52억5800만 원) 지원예산 173억2800만 원은 전액 삭감한다. 삭감분 전액은 지역방송을 위해 쓰이는 ‘지역·중소방송 콘텐츠 경쟁력 강화’ 예산으로 재편성해 지역방송 지원예산은 기존 44억6400만 원에서 217억9200만 원으로 크게 늘었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지난 20일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아리랑국제방송과 국악방송은 오래 전부터 방통위 소관인 방송통신발전기금으로 예산을 냈는데, 이들 방송의 관리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한다”며 “교통정리가 몇십년째 안 되고 있어 이번에 정리하려고 한다”고 했다.
예결위 논의 앞두고 ‘반발’ ‘읍소’ 이어져
“증액 예산 많은데, 일부 보도 악의적”
민주당 등 야당은 이른바 ‘방송장악 예산’은 줄이되 정책현안과 민생과제에 필요한 예산은 늘렸다는 입장이지만 여당과 방통위, 방심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과방위에서 통과된 예산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최종 논의를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여야 협상을 통해 적지 않은 변동이 이뤄질 수 있어 예결위를 향한 호소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과방위 간사)은 미디어오늘에 “가처분 결과를 토대로 30전30패 소송 결과라며 방심위의 기관경비, 국제협력 경비까지 감액한 것은 방심위의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것”이라며 “가처분은 방송사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인정해 일단 받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최형두 의원은 “국제협력예산 삭감은 국제협력을 통해 딥페이크, 빅테크 범죄를 차단하고 국민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해치는 것”이라고 했다.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은 입장문을 통해 “국민에게 말할 수 없는 불편이 초래되고 국익에도 큰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방심위원 3인 역시 입장문을 내고 “방송심의는 법정 ‘민생방파제’로서 주요 핵심직무”라며 “소위원회·선거방송심의위원회 운영마저 차질을 빚게 하고, 방송심의 기본자료 확보마저 어렵게 한다”고 했다. 이들은 “폭주하는 민생 위협 앞에, 국민의 삶을 방기할 수는 없다”고 했다.
반면 정동영 소위원장은 미디어오늘에 방통위 예산 삭감 배경에 관해 “소송비용으로만 4억 원 가까운 예산을 사용하고 기획조정관 예산이 바닥나자 기름값까지 전용했다”며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언론보도에 내려진 법정제재에 방송사가 불복해 제기한 집행정지 소송 착수금으로 전부 썼다”고 지적했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방위 간사)은 미디어오늘에 예산 삭감 관련 반발을 강조한 보도와 주장 등을 언급하며 “허무맹랑한, 새빨간 거짓말이다. 방통위, 방심위의 방송장악을 저지하고자 하는 국회의 노력을 폄훼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산 삭감과 관련 “(위원장이) 셀프로 연봉 인상한 인상분을 낮춘 것”이라며 “오히려 딥페이크 관련 예산을 비롯해 공동체라디오, 지역방송 예산, TBS eFM 예산 등을 늘렸다”고 했다.
다만 일부 삭감된 예산 항목에는 구성원들의 우려도 있다. 특히 30%가 삭감된 방심위 경상비는 사무공간․전산 서버공간 임차료에 절반이 쓰이고 공공요금, 전산네트워크․보안 유지, 전자문서․전자회의비 등 필수 비용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한 방심위 직원은 “구성원들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전례가 없는 규모의 삭감이라 ‘겁 주려는 거 아닐까’하며 희망을 갖는 분위기도 있고, 위원장 한 명으로 인해 위원회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직원들의 생활까지 좌우되는 상황에 답답해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했다. 이 직원은 “(위원장 임금 삭감 등) 기관장에 대한 특단의 조치는 필요하다”면서도 “증액된 통신심의 예산은 모니터링 강화 예산인데 효율적 대응을 위해선 검토·후속처리 등을 담당하는 사무처 심의인력에 대한 증원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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