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읽는 판결문’은 복잡하고 방대한 판결문을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취지입니다. 독자에게 판결문 속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슈, 쟁점, 법리적 해석 등을 간결하게 설명해 그 의미가 잘 이해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판결문 속에서 숨겨진 사회의 정의를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A교수는 1차로에서 오토바이로 주행하고 있었다. 2차로에 있던 택시가 급하게 유턴을 했고, 이를 피하지 못한 A교수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택시의 과실을 80%로 판단했다. 이에 교수의 유족인 배우자와 두 명의 자녀는 택시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유족연금 수급자와 손해배상금의 상속자가 상이해 다툼이 발생했다. 대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 ‘직무상유족연금’… 상속 아닌 고유 권리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조희대, 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A교수의 유족들이(배우자와 25세 이상인 두 자녀)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손해배상금을 먼저 상속인들에게 상속한 후에 ‘직무상유족연금’을 공제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대학교수나 공무원 등이 직무상 재해로 사망했을 때 유족이 가해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 총액이 종전보다 더 많도록 판례가 변경됐음을 뜻한다. 30년 만의 일이다.
이 사건은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이하 ‘사학연금법’)에 따라 퇴직연금 수령이 가능했던 자가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망인은 사학연금 대상자다. 하지만 망인이 타인의 불법행위로 사망했기 때문에 그 유족은 사학연금법에서 정한 직무상 재해로 인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직무상유족연금(이하 ‘유족연금’)’이라 한다.
다만, 사학연금법에서 유족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유족은 공동상속인과는 다르다. 즉 공동상속인 중 유족연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배우자만 유족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수급권자에 해당한다. 두 자녀는 25세 이상으로 수급자격이 상실됐다.(사학연금법은 공무원 재해보상법 제40조를 준용한다.)
또 유족은 망인을 사망케 한 가해자에게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손해배상금의 산정은, 망인이 사고 없이 정년까지 근무했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퇴직연금일시금(이하 ‘퇴직연금’)’을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있다. 유족연금의 수급권자가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금까지 상속하게 되면 같은 목적의 급부(재물)를 이중으로 받는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수급권자가 아닌 상속인들은 상속받은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금은 지급받더라도 같은 목적의 급부를 이중으로 받는 것이라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족연금에 대해 대법원(2000년/98다50340)은 “유족의 경제적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지급된 것이다”며, “수급권자가 된 유족은 상속인으로서가 아니라 직접 자기 고유의 권리로서 유족연금의 수급권을 취득한 것이므로 상속재산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망인의 사망으로 상속한 손해배상금과, 사학연금법에 따라 사학연금공단으로부터 지급받은 유족연금은 귀속주체가 서로 상이해 상호보완적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 손해배상액에서 유족연금은 ‘상속 후 공제’
이 사건의 쟁점은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이 타인의 불법행위로 인한 직무상 재해로 사망해 발생하게 되는 손해배상액을 산정함에 있어 유족연금을 언제 공제하는가다. 유족연금 수급자와 공동상속인이 다른 경우 ‘상속 후 공제’ 방식과 ‘공제 후 상속’ 방식 중 어떤 견해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손해배상액의 계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존 대법원 입장은 ‘공제 후 상속’ 방식을 취해왔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 전체에서 유족연금 등을 먼저 공제한 후 나머지 손해배상채권이 상속인들에게 각자의 상속분 비율에 따라 공동상속된다”는 취지로 판례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제 후 상속’ 방식과 같이 손실전보의 중복성을 강조해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에서 유족연금의 공제 범위를 넓게 인정한다면,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는 재원으로 가해자의 책임을 면제시키는 결과가 된다”며 “수급권자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위한 사회보장법률의 목적과 취지가 몰각된다”고 다른 견해를 내놨다.
그러면서 기존 대법원 입장을 변경하는 ‘상속 후 공제’ 방식을 판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에 따르면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에서 유족연금을 공제하는 순서는 “망인의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은 상속인들에게 각자의 상속분 비율에 따라 공동상속”되고, 그 후 “수급권자가 지급받는 유족연금은 그 수급권자가 상속한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을 한도로 해 그 손해배상채권에서만 공제된다”고 판단했다.
예컨대 이 사건 유족(배우자, 두 자녀)의 손해배상 산정 기준액이 8억원이고 유족연금이 4억원이라고 가정해보자. 기존 대법원 입장인 ‘공제 후 상속’ 방식을 따르면 8억원에서 4억원을 먼저 공제하고 유족에게 상속되면 △배우자는 1억6,000만원 △자녀1은 1억2,000만원 △자녀2는 1억2,000만원을 받게 된다. 그리고 배우자는 유족연금 4억원을 사학연금공단으로부터 받는다. 그러면 유족은 △손해배상금 4억원 △유족연금 4억원, 총 8억원을 수령한다.
반대로 ‘상속 후 공제’ 방식에 따라 손해배상 산정 기준액 8억원을 먼저 유족에게 상속하면 △배우자는 3억2,000만원 △자녀1은 2억4,000만원 △자녀2는 2억4,000만원을 받게 된다. 이후 배우자가 상속받은 손해배상금에서 유족연금 4억원을 공제하면 배우자의 손해배상금 수령액은 0원이다. 마지막으로 배우자는 유족연금 4억원을 사학연금공단으로부터 받는다. 그러면 유족은 △손해배상금 4억8,000만원 △유족연금 4억원, 총 8억8,000만원을 수령한다.
결론적으로 ‘상속 후 공제’ 방식이 ‘공제 후 상속’ 방식보다 유족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종전 판례를 변경해 ‘상속 후 공제’ 방식을 채택한 것은 “피해자인 망인의 상속인들의 권리를 더욱 보호하기 위함”이라며 “수급권자가 상속분을 초과해 유족연금 일부를 중첩해 받더라도 이는 생활보장적 성격으로 지급한 것이므로 사회보장법률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