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일본이 한국이 불참한 ‘사도광산 추도식’을 강행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그간 반복해 불거진 ‘과거사 문제’라는 점에서 반일 정서를 다시 자극하게 됐다. 반복되는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윤석열 정부의 책임론도 거세다. 내년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한일 관계 악화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6일 정부에 따르면, 외교부는 전날(25일) 주한일본대사관을 접촉해 사도광산 추도식 관련 협의 과정에서 일본의 태도에 유감을 표했다. 외교부는 “외교부 당국자는 이 문제가 더 이상 불필요한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고 개별 사안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긴밀히 소통해 나갈 것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사도광산 추도식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처음으로 일본에 공식적인 항의의 뜻을 전한 것이다.
앞서 일본은 지난 24일 니가타현과 시민단체 주관으로 사도광산 추도식을 진행했다. 지난 23일 한국 정부가 추도식 불참을 선언했음에도 이를 강행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번 추도식 불참의 이유로 “일본 측의 추도사 내용 등 관련 사항이 당초 사도광산 등재 시 합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꼽았다. 추도사에 ‘강제동원’ 등의 내용이 담기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아울러 일본 정부 측 인사로 추도식에 참석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지난 2022년 8월 15일 참의원 당선 직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점도 원인이 됐다.
문제는 책임 소재가 다분함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이 이번 추도식 파행의 책임을 한국에 돌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추도식 불참에 대해 “유감”이라며 이쿠이나 정무관의 참석을 결정한 것은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야시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 교도통신이 이쿠이나 정무관의 신사 참배 관련 보도를 ‘오보’라고 정정한 것에 대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보도가 이뤄져 추도식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이번 파행의 책임을 단순히 ‘오보’에만 국한한 셈이다.
◇ 정부 ‘미온적 태도’ 비판 자초
이러한 일본의 적반하장식 태도에도 한국 정부는 미온적 태도를 보이면서 비판을 자초했다. 특히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이 약속을 어긴 일이 이번뿐만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 컸다. 앞서 일본은 지난 2015년 ‘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당시에도 군함도의 실상을 알리는 정보센터 설치를 약속했지만, 실제 설치가 된 곳은 상당한 거리가 떨어진 도쿄였다. 그마저도 강제동원 역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며 논란이 됐다. 과거의 전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해 ‘외교 무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렇다 보니 정치권 안팎에선 현 정부의 ‘책임론’도 들끓고 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막장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물컵 끼얹기도 이토록 치욕스럽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도 “사도광산 추도식은 윤석열 정부의 굴욕외교가 낳은 참사”라고 질타했다. 광복회는 이날 성명서에서 ”그동안 일본 정부는 ‘개념 없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만 몰입’해 온 윤석열 정부의 외교행태를 악용했다“고 꼬집었다.
여당 내부에서도 쓴소리는 이어졌다. 유승민 전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윤석열 정부 들어서 강제징용 제3차 배상,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사도광산 등 우리는 일본이 원하는 대로 다 내줬는데, 일본은 우리에게 대체 무엇을 해줬나“라며 ”윤 대통령은 나라와 국민이 당한 모욕에 대해 국민께 머리 숙여 사죄하고 외교부 장관 등 정부의 책임자들을 엄중문책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에 ”정부는 이번 추도식 파문의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재발 방지 대책을 분명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내년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관계 강화를 공언했던 대통령실은 이와 관련한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와 여당에선 이번 사안의 엄중함을 인식하면서도 양국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강인선 외교부 2차관은 이날 서울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과거사에 대해 일본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한일 모두 이익에 부합하는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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