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사도광산에서 강제 노역한 조선인 노동자를 위한 추도식이 한국과 일본의 불협화음 속에 사실상 ‘반쪽짜리’로 진행된 가운데, 추도식에 불참한 정부가 별도로 추모 행사를 진행했다.
외교부 등 정부는 25일 오전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였던 ‘제4상애료’ 터에서 조선인 노동자를 추도하는 행사를 열었다고 밝혔다.
사도광산은 에도시대(1603~1867) 당시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된 후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이용됐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사도광산에 동원된 한국인 노동자의 수는 1500여명으로 추정된다.
이날 추도식에는 한국 유족 9명과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가 참석했으며, 강제 노역한 조선인을 추모하는 추도사 낭독과 묵념, 헌화 등의 순서로 펼쳐졌다.
박 대사는 추도사에서 “80여년 전 사도광산에 강제로 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지쳐 스러져 간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영령에 머리 숙여 깊은 애도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며 “사도광산의 역사 뒤에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도식의 공식 일정은 10여분 만에 종료됐다. 이후 유가족들은 준비한 술잔을 바치는 등 별도로 추모의 시간을 보냈다.
앞서 지난 24일 한국 유족과 정부 대표는 일본 주최로 사도섬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진행된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하기로 했다.
행사 전부터 한일 양국은 행사 명칭과 일본 정부 참석자 등을 두고 갈등을 빚어왔는데, 여기에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2022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점화됐다. 이에 한국 정부는 참배 이력 문제와 추도사 내용 등이 행사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전날 공식적으로 불참을 발표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약 100명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한국 측이 불참하면서 약 30개 의 좌석을 비운 채 행사가 진행됐다.
징용 피해자 지원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지난 24일 입장문을 내고 “정작 추도의 대상이 누구인지조차 종잡을 수 없는 괴이한 형태의 추도식”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모임은 “한마디로 이번 행사는 억울하게 동원된 피해자들의 넋을 달래는 ‘추도’가 아니라 일본이 유네스코 등재를 자축하기 위한 자리였다”며 “한국인 피해자 유가족들을 일본의 유네스코 등재 자축 행사의 들러리 취급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급기야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의 넋을 달래야 하는 추도식에 보란 듯이 전범자들을 추앙하는 우익 성향의 정부 인사를 골라 내보냈다”며 “(이번 추도식 사태로 인한) 외교적 수치와 굴욕은 윤석열 정부의 자업자득이다. 물컵의 반을 먼저 채우면 나머지 반은 일본이 채울 것이라는 윤석열식 ‘퍼주기 외교’, ‘막장 외교’의 처참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해당 추도식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일본이 매년 개최하기로 한국에 약속한 조치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따라 일본 측이 주최한 첫 노동자 추도식은 ‘반쪽 행사’로 전락하게 됐다.
일본 측의 약속에도 조선인 노동자를 기린다는 취지에 맞게 행사를 진행할 수 있겠냐는 우려는 지속 제기돼 왔다.
행사 공식 명칭을 두고 일본 측은 ‘감사’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국 정부가 이를 반대했다. 결국 공식 명칭은 추도 대상조차 드러나지 않는 ‘사도광산 추도식’이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정해졌다.
여기에 한국 유족의 추도식 참석 비용을 일본 정부가 아닌 한국 정부에서 부담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성의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추도식 당일에는 일본 정부가 강제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점도 문제가 됐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추도사에서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라고 해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갱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곤란한 노동에 종사했다”고 했다.
이어 “종전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감스럽지만 이 땅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사도광산을 답사한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사도광산 추도식 추도사에서 ‘가혹한 환경에서 곤란한 노동에 종사’한 건 인정했지만 ‘강제성’ 언급은 또 없었다”며 “최근 사도광산을 직접 답사하고 돌아왔는데,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서도 조선인의 가혹한 노동은 기술돼 있지만 ‘강제성’ 표현은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특히 ‘반도인(조선인)은 원래 둔하고 기능적 재능이 극히 낮다’, ‘반도인 특유의 불결한 악습은 바뀌지 않아’ 등 오히려 조선인을 비하하는 내용을 전시하고 있었다”며 “군함도 등재 당시 일본은 희생자를 기리는 정보센터 설치를 약속했지만 센터를 현장이 아닌 1000km 떨어진 도쿄에 설치하고 ‘강제성’을 부인하는 자료를 전시하는 것에 이어 또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다”고 규탄했다.
아울러 서 교수는 이번 답사 자료를 엮어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의 행태를 유네스코 측에 고발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추도식에 한국 측이 불참한 것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한국 측이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입장은 아니지만, 한국 측이 참가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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