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 부추겨 작대기 꽂아놓고 당선시키는 양대 정당 총선이 끝나면 당선자를 정당 색깔로 표시한 당선지도가 나온다. 수도권을 제외하면 오른쪽과 왼쪽의 색깔이 빨강색과 파랑색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역 대립의 행태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꽃으로 포장된 선거 제도가 국민을 좌우로 갈라놓은 꼴이 되었다. 상대방을 악마화시켜서 반대급부로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저급한 선동질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정치인들이 갈라진 국론을 융화시키기는커녕, 당선만 되면 무슨 일이라도 괘념치 않겠다는 듯이 정치를 한 결과이다. 형편이 그러하니 선거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가 유지되거나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상실된 상태로 보아야 한다. 국민의 선택권은 정치인들의 선동질에 빼앗기고, 투표는 형식적 행위로 전락하였다. 선거가 끝난 자리에 적대감과 지역이기주의만이 통념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지방선거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영남은 국민의힘으로 몰아주고,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몰아준다. 후보의 정책과 자질은 별 의미가 없다. 영호남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작대기를 꽂아놓아도 당선된다는 것이 통설이다. 주민 상당수는 자신이 선택한 후보와 그 정당이 좋아서 혹은 훌륭해서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당이 싫으니까 상대당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냥 투표한다고 한다. 정치인은 상대당을 악마화시키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묻지마 투표를 하니 지방 의원들 대부분과 자치단체장은 같은 당 소속이기 마련이다. 당연히 행정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의회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그런 와중에 가끔은 의원들끼리 패거리를 만들어 다투기도 한다. 의장단 선거를 할 때나 공공시설 유치를 할 때 그런 현상은 확연히 드러난다.
지방의회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는?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여수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권이 발생하거나 의장 선거가 있을 때에는 통합 이전의 행정구역이었던 여수시와 여천시 의원들이 서로 반목하며 다툰다. 시청사나 공공기관 위치를 가지고도 서로 반목하고 다툰다. 명분으로는 균형발전 혹은 주민의 편리성을 제시하지만, 결국은 지역 내에서의 이기주의적 다툼일 뿐이다. 그렇게 이기적 시각으로 정치를 하다보니, 그들은 지역을 총체적으로 살피지도 못하고, 멀리 미래지향적으로 내다보지도 못한다. 그 결과 환경 파괴, 도심 공동화, 예산 낭비, 교통 혼잡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지만 남의집 불구경하듯 한다.
학교배치 문제만 해도 그렇다. 고등학교가 구시가지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어서 신시가지 거주 학생들이 통학에 불편을 느껴 기숙사가 있는 외지 학교로 빠져나가는데도 속수무책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지역 균형에 맞게 학교 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현 소재 지역의 주민들과 동문들의 반발한다는 이유로 학교이전은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최근에는 경찰서 건물이 오래 되어 신축이전 제안이 나오자 또 문제가 된 모양이다. 해당지역 주민들과 의원들은 벌써 견제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지역 내에서도 이렇게 지역주의가 작동하여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다수의 주민들은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그런 지역주의는 시 전체의 균형 발전에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시의원들이 자기 선거구의 표만 의식할 뿐, 시민 전체의 의사는 외면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물론 이는 시의원 개인의 자질을 탓하기 전에 선거제도의 한계를 먼저 지적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민주주의 꽃이라고 선전되는 선거 제도가 시민 전체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함으로 인해, 선거로는 민주주의의 가치 실현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가 경고한 대로 대의민주주의는 삼권분립, 언론의 자유, 집권당 교체가 버젓이 이루어지더라도 경제 엘리트 때로는 글로벌 엘리트에 의해 사실상의 지배가 이루어질 뿐, 민주주의는 속 빈 강정이 된 게 분명해졌다.
투표를 잘하면 민주주의가 완성될까?
시정부나 의회를 감시하고 주민자치성을 높이기 위해 시민단체의 역할이 요구되기도 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거나 예상되면 시민단체에서 토론회를 열거나, 정책 제안을 하고, 심지어는 성명서를 내거나 집회까지 하면서 시민의 뜻을 전달하려 한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요구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서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건의 수준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일부 의원들은 자신들이 투표에 의해 당선된 대표이므로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권한 행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착각하고 시민단체의 제안까지도 무시하려 한다. 의원은 시민의 주권을 편의상 잠시 위임받았을 뿐, 시민의 주권을 넘겨받은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서 시의 전체적인 문제는 시장이나 시의원들에게 맡기지 말고 시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할 때마다 시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막대한 예산을 지출해야 하므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투표는 시민의 불만 표출을 억제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항상 공정한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각종 선거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투표가 포퓰리즘에 영합하기도 하고, 특정 집단의 선동과 지역주의의 영향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투표는 지역갈등의 원인을 제공하여 많은 후유증을 낳기도 한다.
그런 현상들로 인해, 대의기구인 의회에 대한 불신이 선거제도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여러 지역에서 의원들의 뇌물수수, 갑질행위, 폭력, 성희롱, 부정청탁, 이해충돌 등의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의회의 신뢰도는 더 떨어지고 있다. 동네 일꾼이어야 할 의원들의 상당수는 직업 정치인이 되어 동네 유지 행세를 하기도 한다.
대부분 지역에서는 특정 정당이 의회를 독점하기 때문에 견제와 비판도 없고, 변화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이러하니 주민들의 입에서 지방의회를 없애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자주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방의회를 정말로 없애는 것은 집행부의 독주를 제도화해주는 꼴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싹부터 자르는 것과 마찬 가지일 것이다. 구더기 무섭다고 장독을 깨버릴 수야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이미 신뢰를 잃은 지방의회를 무기력하게 이대로 두는 것 또한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다. 문제의 본질은 선거를 통해서 국민의 주권을 제대로 보장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대책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상실한 국민주권, 어디서 찾아야 하나
이런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가는 나라들이 많이 있다. 시민의회가 운영되는 나라들이다. 아일랜드나 프랑스, 아이슬란드 등에서는 국가단위로 시민의회가 운영되고 있고, 벨기에나 캐나다 등에서는 지방의회 단위에서 시민의회가 성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번의 시행이 있었고, 그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입법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시적이고 임의적으로 운영되다보니 그 결과를 정권 마음대로 변질시키거나 없애버리기도 하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국민참여단을 모아 운영했던 ‘공론화위원회’가 하나의 예이다. ‘공론화위원회’에서는 수차례의 토론과 숙의를 거쳐 건설 중이던 ‘신고리 5・6호기는 공사를 재개하되, 신규 건설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권고안을 정부에 제시하였다. 당시 정부는 권고안을 그대로 수용하였고, 국민들도 그 권고안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또 지지하였다. 그러나 바뀐 윤석열 정권은 그것을 백지화시켜버렸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시민의회가 입법화되지 않아서 그 권고 내용이 어떤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으로 시민의회는 그 중요성에 비해 인식이 부족하고, 실질적인 변화나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이제라도 우리 나라에서 시민의회가 입법화 된다면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볼 만하다. 만일 시민의회가 있어서 국회에서 하지 못하는 선거법만 개정하여도 지역대립을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고, 40여 년 전에 군사독재를 유지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낡은 헌법을 개정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을 훨씬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민생을 망가뜨리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대통령을 굳이 헌법재판소의 법조인 몇몇이 최종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투표로 결정할 수 있는 국민투표요구권을 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추첨제 시민의회, 시행한 나라들 만족도 높아
국가단위에서부터 시행하면 좋겠지만, 조례 개정이 쉬운 지방의회에서 먼저 시행해보는 것도 의미 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시민들 간이나 의원들 간에 낯붉힐 일 없이 시민의회에서 숙의와 토론을 통해 균형있는 권고안을 만들어낸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선거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는 분명히 들어났다. 관건은 정치인들이 모든 권력을 자신들이 독점하겠다는 욕심을 덜어내는 것이다. 그동안 국민의 뜻을 배반하면서까지 위임된 주권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국민을 농락했던 대의기구는 이제 ‘국민의 주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정치’를 행해야 한다. 국민들은 촛불집회를 통해 그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 정치권은 촛불시민들이 독재에 맞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외친 뜻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건 여당이나 야당이나 마찬 가지이다. 국민들은 지금의 ‘국민의힘당’ 정권을 대하며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꼴’이라고 여긴다. 이제 국민의 것을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이다. 국회는 물론이고 지방의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수에서 촛불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에게 ‘시민의회’에 대해 얘기했더니 첫마디가 ‘지금의 지방의회도 보기 싫은데 옥상옥을 만들겠다는 거냐?’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직 대중들에게 시민의회는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추첨제 시민의회’에 대해 조금 설명했더니 ‘생각해볼 만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음에 만났더니 ‘추첨제 시민의회가 참 좋은 대안이다. 국민주권을 세우는데도 크게 역할을 할 수 있겠다’라고 하였다. ‘추첨제 시민의회’, 새로운 제도에 대한 두려움만 버린다면 꽤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제도가 되리라 믿는다.
이현종 님은 중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다 퇴직 후에 여수에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시민의회 전국포럼의 교육위원장으로 시민의회 활성화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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