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공학 전환 추진을 두고 갈등을 거듭하고 있는 동덕여대가 두 차례 면담 끝에 수업 재개를 합의하고 봉쇄를 부분적으로 해제하기로 했다. 그러나 오는 25일 예정된 ‘면담 전까지’라는 단서가 붙어 있어 갈등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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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일부터 이어진 동덕여대 학생들의 반발은 10일째인 지난 20일 총학생회가 학생총회를 소집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총학생회는 학생 최고 의결기구인 학생총회를 통해 학생들의 의사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겠다면서 학생총회를 열었다.
학생총회 안건은 ‘남녀공학 전환’과 ‘총장 직선제’ 2가지였다. 총회에는 1973명(재학생 수 6564명)이 참석했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재학생 투표는 남녀공학 전환 반대 99.9%를 기록했다. 총장직선제 도입도 100%에 가까운 찬성을 이끌어냈다.
일각에서는 ‘거수 방식’으로 이뤄진 투표가 일방적일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반면 재학생 3분의 1이 참석했다는 점이 열기의 방증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학생총회에서 만난 동덕여대 재학생 이 모(20)씨는 “학교와 소통이 잘 되지 않으니 이런 방법으로 의사를 전하고 싶었다”며 학교 측의 소통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총학생회는 21일 학생총회 결과를 두고 처장단과 면담을 진행했다. 오전 11시부터 3시간가량 진행된 면담 후 동덕여대 측은 남녀공학 논의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는 면담 결과를 밝혔다. 합의는 향후 논의 재개 시 학생들과의 협의를 통해 진행하겠다는 입장문 발표를 전제로 이뤄졌다. 수업 재개를 위해 본관을 제외한 건물은 봉쇄를 해제하고, 학교 측은 다음 면담이 예정된 25일 관련 입장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총학생회는 면담 다음날인 22일 본관을 제외한 건물들의 봉쇄를 해제한다는 입장을 동일하게 밝혔다. 동덕여대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소통 부족’에 대해서는 “대학본부는 기존과 다른 민주적인 의견 수렴 절차 구조를 가져올 것을 중앙운영위원회와 약속했다”며 “학우 여러분께서는 수업 거부와 별개로 강의실 문 막기 등 수업 방해는 지양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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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1일부터 열흘 남짓 학생들이 대학 건물 대부분을 점거하면서 교내 곳곳에는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남녀공학 결사 반대’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전단지로 작성하거나 테이프를 붙여 글씨를 만든 학생들도 있었지만, 래커로 글씨를 쓴 경우도 많았다. 래커는 유성 도료로 나무나 금속 위에 칠하면 제거가 쉽지 않다.
동덕여대는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약 24~54억 원의 피해 금액을 산정했다. 동덕여대 측은 “래커, 페인트 등의 경우 스며든 정도에 따라 단순 세척 또는 건물 외벽 교체를 결정해야 하고, 래커 훼손 부위를 교체하려면 해당 마감재로 구획된 부위를 전부 교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12일 예정됐던 취업박람회가 학생들의 점거로 열리지 않으면서 박람회 주관 업체의 손해배상 청구액 약3억 3000만 원도 포함된 액수다. 다만 외부업체의 손해배상 청구액 3억 3000만 원만을 학교 측이 총학생회에 직접 전달했고, 이외에는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발표했다.
총학생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된 21일 처장단과의 면담 속기록에 따르면 이날 면담에서도 손해배상 청구 주체는 논란이 됐다. 교무처장이 손해배상 액수에 대해 “대학본부에서 대신 내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하자 총학생회장도 “우리도 정확한 것은 낼 수 없다. 3억 3000만 원. 우리도 현장에 없었고 대학 본부에서 논의해보길 바란다”는 갑론을박이 오갔다.
전날 학생총회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최현아 동덕여대 총학생회장이 “최소 피해 금액이 24억 원에서 최대 피해 금액이 54억 원인데 약 30억 원 정도가 차이 나지 않나”라면서 “어떻게 추산해서 30억 원 정도가 차이 나는지가 의문이라 (정확한) 근거가 궁금하다”고 밝힌 만큼 피해 금액의 구체적인 산정 기준, 시위 과정의 책임 등을 두고 합의점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덕여대 시위 관련) 재산상의 피해 등에 대해서 ‘폭력 사태 주동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글을 올리면서 사건의 파장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다만 아직까지 학생들의 책임과 관련해 공식적인 사법 절차는 아직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도 충분히 완전한 사람은 아님. 학교도 완전하지 않고. 서로의 잘못을 항상 가지고 있지만, 여러분들이 본부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서로가 물러서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음. 서로가 잘못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수용해야 더 나은 대화를 할 수 있음.” (21일 총학생회와의 면담 속기록 중 동덕여대 국제대외협력처장)
“학교가 제대로 된 소통 없이 학생들의 반대가 있을 걸 알고 쉬쉬하며 몰래 추진한 점에 분노했어요. 그간 학생들이 학교 측에 누수 문제나 노화된 시설 보수, 갑작스럽게 폐지된 셔틀버스 재운행 등 여러 문제를 건의했는데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학생 수를 늘리겠다면서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하는 게 이해되지 않아요.” (동덕여대 재학생 정 모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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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이화학당을 설립한 선교사 프라이는 여대의 설립 이유로 고등교육을 제공해 여성을 편견으로부터 해방해야 하며,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해방 이후 비슷한 이유로 많은 여대가 설립됐지만 1998년까지 16개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됐다. 남녀공학 전환에 대한 최초의 반발은 1978년 수도여자사범대학에서 벌어졌다.
연구에 따르면 수도여자사범대학 동창회가 1000여 명 가까이 시위를 하는 등 격렬하게 반대해 휴교까지 이어졌지만 학교 측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이렇게 남녀공학으로 바뀐 대학이 현재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세종대다. 당시 반대에 나선 이들은 “법인과 학교 본부가 학생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학교개편을 진행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로부터 약 20년 후인 1996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상명여대도 상명대로 남녀공학 전환을 마쳤다. 전환까지는 약 4년의 시간이 걸렸다. 학교개발팀이 30개월간 관련 안건을 검토했고, 교수와 학생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결과 학생들의 69%가 찬성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상명대 또한 남녀공학에 반대한 학생들이 집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처럼 공학 전환에는 항상 잡음이 있었다. 유독 동덕여대의 사례가 주목을 받는 것은 학생들과 학교 측과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극단적인 방법이 사용됐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곽윤숙 여주대 심리재활치료과 교수는 “이번 사태의 초점은 학교의 논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사가 제대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분노한 것에 있다”고 분석하면서 점진적인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오는 25일 열릴 면담 결과가 향후 동덕여대 갈등의 향배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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