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년 2개월만에 긴축기조를 종료한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다음 주에 열리는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3.25%로 동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 절반 이상은 이 결정이 만장일치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으며, 일부만 소수의견 등장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번에 발표되는 ‘수정 경제전망’에 대해서는 성장·물가 전망이 하향 조정될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과반수 전문가들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은 종전 2.4%에서 2.2~2.3%로, 내년 성장률은 2.1%에서 1.8~2.0%으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물가 전망도 이전보다는 하향 조정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 “미국 우선주의 강화될 것… 환율·가계부채도 지켜봐야”
조선비즈가 24일 국내 증권사 거시경제·채권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전원은 오는 28일 열리는 한은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연 3.25%로 동결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전망대로 금리가 결정된다면 기준금리는 지난달 0.25%포인트(p) 인하된 후 다시 동결로 돌아서게 된다. 지난달 기준금리 인하 전까지 한은은 13회(작년 2·4·5·7·8·10·11월, 올해 1·2·4·5·7·8월) 연속 금리를 묶어둔 바 있다.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대규모 관세와 감세 등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주목했다. 이는 미국의 수입물가와 소비자물가를 높여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를 더디게 할 수 있다. 연준의 추가 금리인하가 늦어지면 한·미 금리차(현 1.5%p, 상단 기준)를 주시하는 한은도 선뜻 금리 인하에 나서기 어려워진다.
강(强)달러가 지속되는 등 외환시장이 불안한 흐름을 보이는 것도 금리 동결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는 22일 1401.8원을 기록하면서 1400원을 넘겼다. 지난 12일(1403.5원)부터 14일(1405.10원)까지 1400원을 넘긴 후 6거래일 만이다. 장중 고가 기준으로는 지난 14일 1411.1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가계부채 증가세와 서울 집값 상승세도 불안 요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전(全) 금융권 가계대출은 6조6000억원 증가하면서 전월(+5조3000억원) 대비 증가 폭이 확대됐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로 그간 감소하던 제2금융권 대출이 증가(+2조7000억원) 전환하는 등 ‘풍선효과’까지 나타나는 모습이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트럼프의 당선 및 레드 스윕(공화당이 상·하원 과반을 차지)으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부동산과 대출을 잡고 경기방어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 통화당국의 생각이겠지만, 환율이 다시 한 번 발목을 잡는 모습”이라면서 “부동산과 대출도 지켜볼 시간이 필요하니 정책 기조 유지를 위한 명분도 있다”고 했다.
◇ 내년 금리인하, 1~2월 시작… 전문가 50% “최종금리 연 2.5%”
채권시장 전문가 전원은 금리 인하가 내년 1분기에 재개될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관세를 포함한 경제정책이 구체화되면서 한국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앞서 대외경제정책 연구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약인 관세정책이 시행되면 우리나라 수출액은 53억~448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전문가 10명 중 5명은 내년 한은의 금리 인하 횟수를 3회로, 최종 금리는 연 2.5%로 전망했다. 3명은 한은이 금리를 1회 덜 내려서 최종 금리가 2.75%로 내려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머지 1명은 최종 금리를 2.25%(4회 인하)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FOMC의 금리 결정을 주시하면서 경기상황과 환율, 가계부채 등 요인에 따라 인하 횟수를 정할 것으로 봤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한은의 금리정책은 성장 쪽에 포커스가 맞춰지지 않을까 싶다”면서 “한은은 금리 결정 과정에 잠재성장률을 중시하는데, 내년에는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하회할 가능성이 있고 내후년에도 2% 성장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잠재성장률이란 노동이나 자본 등 자원을 최대로 활용하였을 때 달성 가능한 성장률을 말한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기본적으로 국내외 모두 점진적인 인하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국내의 경우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 경기적인 요소만 고려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국보다 인하 폭이 제한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1분기 인하 후 두 번째 인하는 3분기로 예상되지만, 경기가 부진할 경우 4분기에 1회가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 내년 성장률 하향조정… “1.8%로 내릴 것” 주장도
한은은 이달 금통위에서 경제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담은 ‘수정 경제전망’도 발표한다. 지난 8월에 한은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4%, 내년 성장률을 2.1%로 제시한 바 있다.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의 경우 올해는 2.5%로, 내년은 2.1%로 전망했었다.
전문가 10명 중 7명은 한국은행이 내년 GDP 성장률을 당초 전망보다 낮은 1.8~2.0%로 내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중 4명은 한국은행이 내년 GDP 성장률을 잠재성장률(2%)를 밑도는 수준인 1.8~1.9%로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성장률에 대해서는 10명 중 7명이 2.2%를 예상했고, 나머지 3명은 2.3~2.4%를 전망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미국 대선 결과 확인 이후 한은은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위험보다 우리나라의 내년 성장률 전망 하향요인이 더 크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면서 “내수부진 속 수출 모멘텀이 둔화되고 있고, 건설투자는 2026년까지 어려울 가능성이 큰 점도 감안할때 성장률 전망을 하향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성장률 하향 조정의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 업황 등 대외여건 악화”라면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따른 관세 리스크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경기 둔화로 수요가 약화되면서 물가도 하방 압력을 받을 것”이라면서 “국제유가도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 증가와 중국의 수요 둔화로 하방압력을 받아 물가 상승률 하락에 일조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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