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은 김치의 날이었다. 재료 11개가 모여서 22가지의 효능을 낸다는 의미를 담아 11월 22일로 정한 것인데, 재료나 효능의 가짓수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김장철에 맞춰 시기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김치를 알리기 위해 2020년에 김치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했다.
이렇게 김치의 날이 제정될 정도로 김치는 우리 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서구인들이 한국인을 김치라는 말로 표현했을 정도로 해외에도 널리 알려졌다. 2013년엔 한국의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김치가 중국의 파오차이, 일본의 쓰케모노와 같은 채소 절임류에서 유래한 음식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김치는 그런 절임류와 구분되는 발효음식류다. 바로 그 발효라는 특성 때문에 최근에 김치가 서구권에서 재발견되고 있다. 건강에 매우 좋은 음식이라는 것이다. 다만 절이는 단계가 들어가기 때문에 염분의 문제가 있어서 이 부분은 주의를 요한다.
채소를 절여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냉장고가 없던 시절 한국인은 안정적으로 채소를 섭취할 수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 전후로 고추가 전래돼 17, 18세기를 거쳐 고추가 들어간 매운 김치가 일반화됐다고 한다.
오늘날처럼 고춧가루가 본격적으로 들어간 건 100년 정도 됐다. 과거엔 고추를 곱게 빻기가 어려워 채를 썰거나 고추기름 등으로 매운 맛을 냈다. 1920년대에 제분 기계가 도입되면서 고춧가루가 대중화됐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먹는 통통한 배추김치는 1950년대에 형성됐다. 우장춘 박사가 배추를 개량해 살집이 큰 신품종을 만든 것이다. 그전까지 조선 배추는 길쭉하고 얇아서 배추김치보다 무김치가 더 사랑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조금씩 개량된 김치는 한국인의 식문화에서 쌀밥 다음으로 가장 기본적인 음식이 되었다. 김치찜, 김치볶음밥처럼 김치에서 파생된 음식도 많다. 평양냉면도 원래는 겨울에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던 음식이었다.
이렇게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으나 과거엔 서구에서 차별당하기도 했다. 발효음식이기 때문에 냄새가 강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동양인 인종차별과 결부되어 극심한 혐오 음식 대우를 받은 것이다. 아시아권에서도 김치에 대한 인식이 특별히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한국이 발전하면서 김치에 대한 시선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신종플루, 사스 등이 국제적으로 전염될 때 한국만은 큰 피해가 없었다. 중국 등에서 김치 덕분에 한국인의 면역력이 강하는 소문이 돌면서 이때부터 김치에 대한 선망이 본격적으로 생겨났다. 당시 미국 매체에도 그런 내용을 담은 기고글이 실렸고, 일부 연구진이 실제로 김치의 효능이 인체에 매우 이롭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2001년 미국의 건강 잡지 ‘헬스’는 한국 배추김치를 세계 5대 건강 음식으로 선정했다.
2000년대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서 김치의 위상은 수직상승했다. 서구에서도 김치가 건강식품이라는 인식이 본격적으로 퍼져나갔고, 오바마 정부 당시에 미셸 오바마 여사가 백악관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 먹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김치는 심지어 선망 받는 음식이 되었다. 2021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김치의 날을 제정했고 아르헨티나에선 김치의 날이 국가 기념일이 되었다. 김치 수출량과 수출 국가도 날로 늘어간다.
이렇게 김치가 잘 나가자 그게 그렇게 시샘이 났던 것인지, 중국 일부 누리꾼들이 김치가 중국 음식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김치가 혐오 음식일 땐 중국에서 김치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선망의 대상이 되자 갑자기 자기들 것이라고 한다.
요즘도 중국 SNS에는 ‘#김치’, ‘#중국’ 이런 식의 해시태그를 단 김치 영상이 많다고 한다. 김치를 먹어본 적도 없이 살았단 중국인들이 왜 이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게 단순히 일부 누리꾼들의 빗나간 애국주의나 한류에 대한 시샘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이라면 차라리 괜찮다. 그 정도를 넘어서서 장차 한반도를 중국 문화 휘하에 두려는 장기적 목표 하에 감행하는 문화 침탈이라면 문제가 정말 심각해진다. 한족의 중국은 원래 황하 유역에 있었는데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확장해왔다. 근세에 이르러 만주까지 진출했으니 이젠 그 앞에 한반도가 남았다.
이런 우려가 제기되면 한국인의 걱정이 커질 것이고 한중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 오해를 막으려면 중국 당국이 문화 침탈로 비칠 수 있는 흐름을 교정하려는 노력을 가시적으로 보여야 한다.
다행히 한류가 뜨면서 김치 등 한국 음식에 대한 인식이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이 널리 뿌리내릴수록 한국에 대한 문화 침탈은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 대중문화산업이 문화 안보를 지키는 셈이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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