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그간 우리 사회는 수많은 화재 사건을 겪어 왔다.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부터 올해 화성 공장 화재, 부천 모텔 화재까지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안겨줬다.
소방청이 공개한 ‘화재발생 통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는 총 3만8857건이었다.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지만 화재 위험은 여전히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다.
화재는 순식간에 작은 부주의로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며 대규모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건물 내부에서는 연기와 유독 가스가 빠르게 확산돼 질식과 중독의 위험을 높여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화재의 주요 원인으로는 전기 누전, 가스 사용의 부주의, 난방기기 과열 등이 있다. 예방을 위해서 주기적인 점검과 안전 수칙 준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실제로 화재 상황을 피하지 못한다면 어떡해야 할까. 순식간에 덮치는 연기와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칠흑같은 어둠, 그리고 극대화된 공포 속에서 우리는 물 묻힌 휴지, 소화기 사용 등 기본적인 방법마저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이에 많은 이들에게 안전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더 나아가 소중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투데이신문」이 재난 대응 능력을 향상해 주는 ‘안전체험관’에 방문해 직접 인위재난 상황을 체험했다.
본보가 방문한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보라매 안전체험관’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는 재난사고 발생 시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처하는데 도움을 주는 기관으로, 지진, 태풍, 화재, 교통사고 등 4가지 재난체험장과, 심폐소생술과 같은 기본 응급처치와 다양한 소방시설의 작동원리와 조작법 등을 체험하고 배워볼 수 있다.
#. ‘건물’ 급하게 나가기보단 침착한 대처가 필요하다
지하 노래방을 완벽히 구현해 낸 공간에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시끄럽게 울렸다. 흘러나오던 노래도 멈추고 TV 화면, 조명 등이 꺼지며 모든 전기가 차단됐다. 노래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다가 복도로 나가는 문을 향해갔다. 체험임을 알지만 실제와도 같은 상황에 발끼리 부딪히기도 했으며 당황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문을 열자 복도에는 뿌연 연기가 가득했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옷소매로 코와 입을 막고 허리를 최대한 굽힌 채 앞으로 직진했다. 워낙 주변이 어두운 탓에 오른손으로 벽을 잡고 이동해야 했다. 앞사람이 “오른쪽!”이라고 외치며 벽을 치는 소리에만 의지한 채 작은 보폭으로 걸음을 옮겼다. 행여나 섞여 넘어질까, 이 공간을 탈출하지 못할까, 하는 공포감에 심장이 마구 뛰었다.
연기 가득한 것은 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에 갇혀 있으니 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벽을 두드리는 소리에만 집중해 겨우 복도를 빠져나갔다. 평소라면 30초 만에 빠져나갈 수 있는 짧은 거리를 허둥대고 당황해 1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이날 교육을 맡은 박재광 소방관은 먼저 화재가 발생하면 “불이야”라고 크게 외쳐 상황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젖은 수건이나 옷으로 코와 입을 막고 낮은 자세로 피난 유도등을 따라 대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승강기가 아닌 계단을 사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젖은 수건을 만들 때는 물을 너무 많이 부을 경우 숨이 잘 안 쉬어질 수 있어서 젖을 정도로 적당량을 사용해야 하며 물 외에도 탄산음료, 주스 등 액체 성분이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소주, 맥주 등 주류는 제외해야 한다. 우선 알코올류는 증발이 빠르기 때문에 효과가 미미하며 자칫 판단이 흐려질 가능성도 있어 지양할 필요가 있다.
젖은 수건이 준비됐다면 그다음으로 자세는 무릎은 펴고 허리를 굽힌 상태로 빠르게 대피해야 하며, 만일 연기로 인해 앞이 안 보인다면 아까와 같이 벽을 잡고 비상구 표시를 향해 걸어가 피난계단을 찾아야 한다.
만약 건물의 높은 층에서 불이 난 데 이어 연기나 불로 인해 탈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완강기’를 사용해야 한다. 기본 완강기는 하나로 2명 이상 탈출이 가능하다. 다만 간이 완강기는 일회용이다.
통상 완강기는 창문 쪽에 설치돼 있다. 완강기는 3층부터 10층까지 설치돼 화재 등 비상상황시 피난용으로 쓰인다. 다중이용업소의 경우 특별법에 따라 2층에도 설치돼 있다. 완강기에 사용되는 와이어 로프는 각 층별로 1층당 3m 기준이다. 최소 25kg 이상의 하중을 받아야 내려가며 최대 150kg 이하다. 이로 인해 체중이 가벼운 어린이는 안전벨트를 채워 위에서 줄을 당겨 내려 보내고 영유아는 아기띠 등으로 보호자 몸에 밀착시켜 함께 하강해야 한다.
완강기는 총 6단계로 사용한다. 먼저 완강기함에서 완강기를 꺼낸 뒤 완강기 후크를 지지대에 연결한다. 완강기 후크는 반드시 돌려서 잠가야 한다. 그다음 안전벨트를 가슴에 착용한 후 고정링을 가슴 쪽으로 꽉 당긴다. 준비가 다 됐다면 탈출할 아래 쪽을 확인한 뒤 줄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안쪽에 있던 지지대를 밖으로 향하게 한다. 이후 몸을 밖으로 둔 뒤 벨트가 풀리지 않도록 양팔을 벌린 후 벽을 바라본 자세로 두 손으로 벽을 가볍게 밀면서 내려간다.
밀면서 내려가는 이유는 건물 벽에는 뾰족하거나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 옷에 걸리면 몸이 뒤집힐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 ‘지하철’ 탈출은 침착하고 신속하게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하루 평균 승·하차 인원은 880만7236명이다. 이렇듯 ‘시민의 발’이라고 불릴 정도로 시민들에게 중요하면서도 친숙한 대중교통수단이지만, 화재에 있어서 더욱 조심해야 할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지하철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열차 내부에서 문을 개폐가 가능하도록 바꿨으며 의자, 바닥, 천장의 소재가 모두 난연 재질로 교체됐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화재는 이어지고 있다.
최근 사례만 살펴봐도 지난 18일 수인분당선 기흥역에서 고색행 전동차가 정차하던 중 차량 전기공급 장치에서 불이 났으며, 지난 8월에는 지하철 4호선 안산역에서 당고개 방면으로 향하는 전동차에서 연기가 나 전동차에 타고 있던 시민 300여명이 대피하기도 했다.
이처럼 지하철 내 화재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지하철 내 화재는 발생하면 대피가 어려운 데다가 특성상 지하에서 연기가 빠르게 확산하기 때문에 발 빠른 안전 확보와 대피가 절실하다.
먼저 화재 발생을 인지했다면 전동차 내 설치된 비상 통화 장치를 사용해 기관사에게 불이 났음을 알려야 한다. 대개 무전기 모양처럼 생겼지만 신림선 등 신규 호선은 버튼 모양이다. 신고 문구 예시는 “기관사님 5522호에서 화재가 났습니다. 도와주세요”다. 열차 칸 양 끝 벽이나 출입문에 쓰여있는 칸 위치 번호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 소방관은 “전동차 내 불이 나면 119 신고도 중요하지만 기관사한테도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며 “기관사가 해당 사실을 듣고 열차를 멈춰 더 큰 화재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화재 상황에서는 소화기를 이용한 초동 대처도 중요하다. 소화기를 이용할 때는 안전핀을 뽑고 불을 향해 호스를 맞추고 소화기 손잡이를 움켜쥔 뒤 분말을 골고루 쏘면 된다. 특히 아래에서 점점 위쪽 방향으로 쏘는 게 보다 효과적이다. 국내 전동차 안에도 역시 불을 끌 수 있는 소화기가 전동차 칸 앞과 뒤에 설치돼 있다.
체험 현장에서 전동차 내부를 그대로 재현한 시설에 들어서자 마치 출퇴근길의 혼잡한 순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체험을 위해 모인 이들도 사뭇 긴장한 표정으로 박 소방관의 교육을 경청했다.
교육 후 화재 대피를 체험하는 상황이 시작됐다. 전동차가 덜컹거리면서 움직이고 소음이 한동안 이어졌을까. 갑작스럽게 조명이 꺼지면서 화재경보음이 울렸다. 전동차 좌석 앞에 앉은 승객은 기관사에게 화재 사실을 알렸고, 그 사이 사람들은 출입문 앞으로 몰렸다.
전동차의 문을 강제로 개폐할 수 있는 비상 개폐 장치의 마개를 열고 화살표 방향대로 약 90도 돌리자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온 또 하나의 문, ‘스크린 도어’다. 스크린도어는 안쪽에서만 열 수 있는데 손잡이를 잡고 양쪽으로 밀어서 열거나 긴 패닉바(빨간색 바)를 밀어서 플랫폼으로 탈출하면 된다.
배웠던 대로 허리를 낮추고, 코와 입을 막은 채 유도등을 따라 조심스럽게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주변은 이미 뿌연 연기로 가득 차 있었고 유도등조차도 희미했다. 어렴풋이 보이는 빛을 향해 마음을 다잡고 한 발짝씩 내디뎠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 공포와 밀려오는 불안 속에서 온몸의 신경을 벽에 댄 손에만 집중하며 걸음을 옮겼다.
“탈출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생각 하나만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길고도 짧은 시간이 지나 마침내 세상의 빛이 보였다. 도착함과 동시에 밀려오는 안도감에 무릎이 풀릴 듯했다. 체험인 것을 알면서도 어둠과 연기 속에서의 그 긴장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박 소방관은 “화재가 나면 일부 사람들이 불빛만을 따라가려고 한다거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된다는 것을 평소에 알고 있어도 주변 사람들을 따라 같이 탑승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럴 때마다 배운 것을 생각하며 입과 코를 젖은 수건으로 막고 벽을 짚으면서 신속히 움직이면 언젠가 출구가 나올 것이라는 자신만의 확신을 가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체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겪어보고 대처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요인들을 미리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기를 바란다”며 “실생활에서는 다중이용시설이나 지하철 이용 시 ‘여기서 어떻게 대피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특정 장소에 오면 비상구, 소화기 등을 둘러보고 기억해 두는 습관을 가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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