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N 교육정책뉴스 왕보경 기자] 대학생들이 시험을 볼 때 참고하는 이른바 ‘족보’가 있다.
족보란 몇 년 동안의 시험문제를 모은 문제은행인데, 일부 과목들에서는 족보에 나온 그대로 시험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모든 시험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족보가 있으면 시험을 볼 때 유리하다. 시험 문제의 방향성이나 기조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교수들은 시험 문제를 몇 년간 그대로 내기도 한다. 매번 바뀌지 않는 시험 문제를 내는 교수들에 학생들은 불만을 제기하기도 하고, 그 편안함에 편승하기도 한다. 누가 만든 물건이기에 시험 기간마다 족보는 학생들에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것일까.
▲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가격은?
‘족보’는 지인, 인맥 간에 공유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친한 사이에 알고 있는 문제를 서로 공유하거나, 선배가 후배에게 알려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족보를 사고파는 경우도 존재한다. ‘에브리 타임(대학생 전용 커뮤니티)’만 둘러봐도 족보를 구하는 글들이 눈에 띈다. ‘해피캠퍼스(대학 리포트, 자기소개서 제공 사이트)’처럼 리포트를 돈 주고 구매하거나, 판매하는 사이트의 족보를 검색하면 나오는 건수가 6,874건이다.
▲ 족보는 어떻게 구매할 수 있을까?
커뮤니티 사이트에 ‘족보’를 검색해 판매자에게 연락을 하자 답장이 왔다. ‘매스컴과 대중문화’라는 교양 과목의 족보를 판매하고 있는 학생이었는데, 카카오톡 오픈채팅 주소를 보내주며 들어오라고 이야기했다.
오픈 채팅에 들어가자 입금 확인 후, 카카오 톡으로 자료를 보내주겠다고 판매자가 이야기한다. 가격을 묻자, “원하는 가격이 얼마냐”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3천5백 원이면 될까요?”라고 했더니 “4천5백 원으로 할까요”라는 답변을 받았다.
거래가 성사되고, ‘족보’를 파일로 전달받았다. 파일 안에는 약 30 문항의 문제들이 4페이지 분량으로 채워져 있었다. 문항 별로 답변이 달려 있었고 대부분이 짧은 단답형 문제였다.
이어 ‘해피 캠퍼스’에서 전북대학교 신소재공학과의 ‘재료 수학’ 족보를 3,200원에 구매했다. 판매자와 1 대 1로 연락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트에 올라간 정보를 구매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미리 올려둔 족보를 살 땐 ‘미리 보기’ 기능이 있다. 앞 페이지 한두 장 정도를 미리 볼 수 있어, 실제 이 과목의 족보가 맞는지 내용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게 진짜 시험에 나왔던 정보인지는 알 길이 없다.
▲ 출처는?
족보 구매 후, 판매자가 가지고 있던 족보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의문이 들어 ‘에브리 타임’의 족보 판매자에게 출처를 물어봤다. 직접 본 시험 문제와 지금까지 나왔던 문제들을 찾아서 모아두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다면 직접 정리한 문제 외의 시험 정보들은 어디서 구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판매자는 학교 커뮤니티의 강의평가를 찾아보면 학생들이 후기와 함께 문제를 적어둔다는 답변을 했다. 이렇게 해서 얻은 정보들이 ‘족보’라는 이름으로 4,500원에 팔리고 있었다.
▲ 믿을 만한 정보일까?
돈까지 주고 산 족보가 믿을 만한 정보인지 의문이 들었다. 얼굴도 모르는 상대에게 돈을 지불하고 어떤 정보가 들어있을지 모르는 자료를 얻는 방식은 신뢰도가 떨어진다. ‘미리 보기’라는 기능이 있다 하더라도, 5 페이지 이하의 짧은 자료는 사이트 내에서 이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직접 구매를 하는 경우에는 판매자의 말만 믿고 자료를 구매해야 한다. 첫 구매 이후, ‘만 원’에 ‘매스컴과 대중문화’의 족보를 팔겠다는 연락이 왔다. 같은 시험의 족보라 하더라도 가격은 달랐다. 모든 시험을 족보를 구매해가며 준비할 필요는 없다. 항상 족보와 같은 문제가 출제되는 것도 아니고, 대다수의 학생들이 족보를 구하려는 이유도 시험의 경향이 어떤지 참고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족보의 유무가 성적에 끼치는 영향이 높은 과목들이 존재합니다. C 대학교 인문대학의 구비 문학 관련 수업은 약 5년간 시험 문제가 바뀌지 않았다. 해당 과목의 교수님도 학부생끼리 돌려보는 족보의 존재를 알면서도 넘어가는 눈치이다. 이런 경우, 학과 생활을 하지 않는 학생이나, 타과 수강생의 경우 시험의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학생들이 편의를 위해 만든 족보가 암암리에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구매할 만큼 성적을 좌우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면 이는 제재가 필요할 것이다. 대학의 목적이 ‘학문 탐구’라면 족보에 의존하는 방식의 평가는 다시금 생각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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