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불빛이 새어나오는 산등성이 달동네 밤풍경은 시공간을 넘어선 감성공간이 된다. 왠지 그곳은 돌아가야할 모태적 공간으로 다가온다. 사실 모든 도시의 모습이자 과거부터 현재로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풍경이지만 유달리 현실적 팍팍함을 이탈케 해준다.
추억의 공간처럼 시간의 흐름도 벗어난다. 시간이 정제된 순수 서정의 세계로 이끈다. 삶의 고단함을 어루만져주는 치유의 근원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본향적 공간으로 꿈과 소망을 꿈틀거리게 해준다. 온기가 느껴지는 정영주 작가의 달동네 풍경이 그렇다. 미술시장에서 없어서 못파는 작가로 자리잡은 이유다.
정영주 작가가 글로벌 화랑인 ‘알민레쉬 런던’에서 12월 20일까지 개인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연다. 화랑측은 영국미술작가 에이미 도슨의 글을 통해 작가를 소개했다. 정영주의 한국 판자촌 그림에는 한국의 역사와 사회적 요소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지 조각들을 캔버스에 붙여 작가 특유의 깊이와 질감을 구현하고 있다.
한지는 빛을 흡수하여 재료에 따뜻한 색채를 부여한다. 정영주가 한국 판자촌 주택을 현대 미술이 묘사하는 방식으로 한지를 사용해 만족스러운 울림을 주고 있다. 낡고 구겨진 한지의 질감은 현대사회에서의 취약성을 반영하고 있다.
화랑측은 별도로 작품소개 보도자료도 냈다. 황혼이 되면 은은하게 뻗어나가는 달동네 풍경은 깜박이는 불빛으로 얼룩져 밀도가 높지만 보이지 않는 인간의 존재를 암시한다. 1970년에 태어난 작가는 젊은 시절 마을 건물을 그리며 보내다가 한국을 떠나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귀국후 남산을 오르고 해질녘에 서울 시내를 보았다.
작가의 그림은 이러한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상징이기도 하다. 언덕 마을은 도시의 빈곤을 반영한다. 페인트칠된 좁은 거리, 기울어진 벽, 낡은 옥상에 진정성을 불어넣어 공간들이 살아 숨 쉬는 느낌을 준다. 작가는 전통 한지를 구겨 펴서 이미지를 만들고 색을 칠한다.
잡아당기고 긁고 구겨내는 과정자체가 견뎌내기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삶의 방식을 연상시킨다. 작가의 그림들은 아름답거나 과장된 것이 아니다. 노출된 벽돌, 슬레이트 옥상, 녹슨 문을 정직하게 표현한 것이다. 집들은 희미하게 빛나고 겸손한 거주자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우리는 어둠이 내리면 이같은 세상에 흡수된다. 이 평화로운 전환의 중심에는 신성한 가정의 일상이 놓여 있다. 스며나오는 빛은 살아있는 도시의 웅성거림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삶을 상징한다.
최근들어 작가의 화폭에 자그마한 변화조짐이 보인다. 가로등 불빛이 화폭을 과감히 가로지르며 숨통이 되어주고 있다. 좀 더 관조하는 분위기다. 한지조각들에 칠해지는 색들의 스펙트럼도 차츰 다채로워지고 있다. 감성의 진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빛과 색을 다리삼아 구상 너머 추상으로의 여정 가능성도 엿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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