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부터 6일간 경남 김해에서 진행된 제105회 전국체육대회에서 4월 창단된 국민대학 생활체육학부 복싱팀 홍예준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하며 기염을 토했다.
홍예준은 남자대학부 LH 급 16강전에서 서원대 이재동을, 8강전에서 용인대 하태웅을 각각 판정으로 잡고 국민대학 복싱부 창단 후 처음으로 맞이한 전국체전에서 최초의 메달리스트로 방점을 찍었다.
비록 표본은 작지만 최초라는 상징성은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한 피어리, 남극점을 처음으로 정복한 아문센처럼 지워지지 않는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에 큰 의의를 두고 싶다.
국민대학 복싱팀은 용인대학 선후배인 이정호 총괄교수와 홍성민 지도교수가 투톱을 결성, 탄생시킨 결정체다.
수도권에 운영되는 24개 체육관 총수인 SM 프로모션 대표직을 겸직하고 있는 홍성민 지도교수의 사촌 동생인 홍예준은 지난 7월 개최된 제54회 우승권 대회에서도 4강에서 상지대(강원도) 선수를, 결승전에선 우석대학(충북) 선수를 꺾고 우승과 함께 최우수 복서(MVP)에 선정된 복서다.
또한 홍예준은 대망의 전국체전을 앞두고 지난 8월 예비고사로 벌어진 제54회 대통령배 시도 대항전 결승전에서 남찬영(한국체대)을 판정으로 제압하고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주목을 받았다.
지난 5월에 1989년부터 4년간 국가대표팀 복싱 감독을 맡으면서 각종 국제무대에서 4차례 종합우승을 일궈내며 최우수 지도자상을 받은 김승미 감독의 팔순 잔치가 최근 서울 강남 모처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는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 김승미 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홍성식(라이트급), 최기수(라이트 미들급), 채성배(헤비급) 등 3명의 복서가 주축이 되어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장에는 김민기, 김장섭, 양석진, 신수영, 이승배, 정승원, 오세한, 김재경, 이훈, 정동환, 박덕규, 윤용찬 등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국가대표 복서들이 대거 참여, 말 그대로 별들의 잔치였다.
그 수많은 별 가운데 북극성처럼 가장 빛나는 한 명의 복서가 필자의 레이더망에 포착된다. 주인공은 안정현 나주시체육회 사무국장으로, 바로 제33회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을 획득한 안세영 선수의 아버지였다.
이번 주 스포츠 컬럼 주인공 안정현은 1969년 전남 나주 출신으로, 1995년 6월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제4회 서울컵 복싱대회에 「복싱계 히딩크」로 불리는 김승미 사단의 일원으로 SH급 국가대표로 출전, 결승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알렉세이 초디노프(러시아)와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판정승을 거두고 대망의 금메달을 획득, 국위를 선양했다.
안정현은 천흥배 선생이 지휘봉을 잡은 영산포 상고 출신이다. 영산포 상고는 1983년 제6회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최우수복서(MVP), 1984년 LA 올림픽 최종선발전 라이트급 우승자 진행범,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황충재를 배출한 복싱 명문 학교다.
안정현은 졸업반인 1987년 5월 제11회 김명복배 대회에서 LH 급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 대회에서 이흥수 사단의 서울체고는 B급 김민기, LW급 박창현, LM급 김현실, H급 정승원 등 4체급을 석권하며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안정현은 H급으로 월 장 전국체전에 출전해 결승에 진출, 2체급 석권을 노렸지만 정승원(서울)에 판정패해 은메달에 머문다.
1988년 안정현은 최진태 신안체육관 관장이 지휘봉을 잡은 목포대학에 진학한다.
1946년 목포 태생의 최진태 목포대 감독은 필자와 통화에서 안정현은 말이 없고 예절 바른 모범적인 복서였다고 회고하면서 중량급답지 않게 스피드가 빠르고 복싱 감각이 좋은 복서였다고 밝혔다.
여담이지만 최진태 관장의 첫 작품은 현 목포시청 회장인 주항선이다.
주항선 (덕인고)은 목포시 최초로 1977년 제58회 전국체전 LW 급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이듬해 조선대학으로 진학,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각종 국제대회에서 수차례 메달을 획득한 목포복싱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를 지켜본 최진태 관장이 1981년 3월 이현주, 권현규, 장성호 등을 주축으로 목포대학팀을 전격 창단해 전국 무대를 호령한다.
이후 문성길, 전칠성 김건호, 우용현, 윤동주, 김은동, 조성근, 안정현 등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 복싱 명문대학으로 입지를 확고하게 구축했다.
한편 1989년 제10회 전국선수권 헤비급을 제패, 상승 무드를 탄 안정현은 1990년 4월 헤비급 국가대표로 발탁되면서 선수촌에 입촌 그해 6월 개최된 제2회 서울컵 대회 출전 결승전에서 채성배 (호남대)에게 판정패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수준 높은 경기력을 과시해 한국복싱의 해묵은 과제인 중량급 선수 빈곤의 갈증을 해결할 적임자로 주목을 받았다.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 헤비급 선발전 결승에서 숙적 채성배에 또다시 판정패를 당하면서 출전권을 상실한 안정현은 슈퍼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려 전성기를 맞이한다.
1992년 10월 안정현(장흥군청)은 제73회 전국체전 슈퍼헤비급 결승전에서 아시안게임 2연패와 올림픽 사상 최초의 헤비급 은메달리스트인 거함 백현만과 맞대결을 벌여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송곳 같은 날카로운 펀치로 득점에 성공하면서 판정승하며 돌풍을 일으킨다.
탄력을 받은 안정현은 1993년 1월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개최된 제3회 KESC 국제복싱대회에서 이란의 모하메드 사마디와 벌인 결승전에서 반 박자 빠른 절묘한 카운터를 수차례 명중시키면서 16:8 하프 스코어로 꺾고 감격의 국제대회 첫 우승을 일궈낸다.
그해 5월 중국 상해에서 개최된 제1회 동아시아대회 준결승전에서 홈 링의 중국 선수에게 텃세에 밀려 동메달 획득한 안정현은 1994년 1월 이란에서 개최된 제17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 준결승전에서 인도의 상탄 선수와 치열한 접전 끝에 15대 15 동점을 이룬 후 유효타수에서 밀려 판정패를 당했지만 그의 실력이 국제무대에서도 통함을 여실히 증명한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도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출전한 안정현은 그해 전국체전 결승전에서 백현만과 재격돌, 6:4로 근소한 판정패를 당한다.
그러나 포스트(POST) 백현만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1995년 5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8회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안정현은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이란의 칼코란을 8:3 으로 제압하며 8강에 올랐지만 세계랭킹 7위 우즈베키스탄 선수에 판정패, 아깝게 탈락했다. 이 대회에서 복싱 강국 쿠바는 4체급을 석권 대회 7연패 달성에 성공했다.
안정현은 1985년 9월 제6회 회장배대회에 첫 출전, 동메달을 획득한 후 1997년 7월 제27회 대통령배 대회에서 동메달을 끝으로 링을 떠날 때까지 12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9차례를 비롯해 도합 40차례의 각종 대회에 출전했다.
중요한 사실은 국제대회에서 2관왕 달성을 포함, 전국체전 3회 우승 등 각종 선발전 대회에서 무려 15차례의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사실이다. 노메달에 그친 경우는 1994년 6월 제7회 월드컵(태국), 1994년 10월 히로시마(일본) 아시안게임, 1995년 제8회 독일 세계선수권대회 등 단 3차례에 불과하다.
이처럼 국내외 각종 대회에서 높은 퀄리티(quaqlity)를 보여준 선수는 김동길, 허영모 등 극소수의 초엘리트 복서들을 꼽을 수 있을 뿐이다.
이 기록은 안정현이 평소에 수도승처럼 자기절제를 통한 몸 관리를 성실하게 수행했기에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노메달에 그친 아쉬움을 자신의 딸인 안세영 선수가 2023년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종목에서 2관왕을 달성함으로써 훌훌 털어버렸다.
뿐 아니라 2023년 10월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거행된 제61회 대한민국체육상 정부포상시상식에서 체육인의 장한 어버이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국민에게 감동을 준 자신의 딸 안세영을 세계적인 배드민턴 선수로 키운 노력과 공로를 국가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잠시 배드민턴과 복싱의 공통점 한 가지를 유추해 보았다, 가로 6.1m 세로 13.4m 직사각형의 배드민턴 코트는 1.55m의 네트로 양분되어 있다. 이 공간에서 선수들은 무하마드 알리의 어록인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반복적인 공격패턴으로 경기를 펼친다.
최고 300Km를 훌쩍 넘는 스매싱을 민첩한 풋워크로 받아내는 동작은 마치 복서 메이웨더가 1m 지근 거리 에서 던지는 초속 8m의 스트레이트를 록 어웨이 (Roke away)로 피하는 장면처럼 신기에 가깝다.
배드민턴도 복싱처럼 순발력과 지구력 그리고 민첩성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종목이란 생각이 든다. 복싱처럼 오랜 침체의 길을 걸었던 배드민턴 종목이 안세영이란 신성의 출현으로 반전의 기회를 만들었듯이 우리나라 복싱계도 전도유망한 샛별 발굴을 위해 총력전을 기울이길 바라면서 자랑스런 복싱인 안정현 사무국장의 건승을 바란다.
글쓴이 조영섭 복싱전문기자는 1980년 복싱에 입문했고 현재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 복싱인이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2018년 서울시 복싱협회 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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