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 국내에는 현재 여자대학이 4년제 7개, 전문대학 7개로 총 14개가 있다. 여대는 역사적으로 고등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한받던 시절, 여성에게도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자 설립됐다.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여자대학은 여성 인재를 배출하며 사회적 리더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1866년 설립된 이화여자대학교를 시작으로 국내 여자대학의 역사는 150년이 넘지만, 남녀 통합 교육이 보편화된 현시점에서 여대의 필요성에 대한 찬반 논의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여대의 남녀공학 전환을 두고 학교와 학생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학교 입구는 학생들의 활기 대신 분노로 가득 찬 수많은 대자보와 래커로 쓴 글과 함께 근조화환이 행렬을 이루고 있다. 이는 최근 불거진 동덕여자대학교(이하 동덕여대)와 성신여자대학교(이하 성신여대)의 ‘남녀공학 전환’ 반대에 대한 학생들의 대응이다.
동덕여대는 학생들의 익명 커뮤니티에서, 성신여대는 ‘2025학년도 전기 외국인 특별전형 신·편입학 모집 요강’에서 남녀공학 전환 사태가 제기되었다. 이에 학생들은 일방적으로 학교 측이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수업 거부, 시위 등 학생들의 격렬한 투쟁이 일어나는 가운데, 동덕여대 측은 “일부 단과대학에 한해서 논의가 있었으나, 현재 공식 의제화 이전이므로 확정되거나 의결 단계가 아니”라며 입장을 밝혔다. 성신여대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국제학부 설치는 공학 전환과 전혀 무관한 사안”이라며 “공학 전환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본부 차원에서도 추진하고 있지 않다”라며 사태 진압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여대의 남녀공학 전환 논란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무분별한 여성 혐오와 젠더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동덕·성신·이화·숙명여대 재학생 4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왜 투쟁에 나섰는지, 여대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직접 이야기를 나눠봤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동덕여대 김지민 씨(가명, 이하 김) : 동덕여자대학교 총학생회 ‘나란’의 국장이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성신여대 임수빈 씨(이하 이) : 자주성신 제36대 총학생회장 임수빈이며, 현재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화여대 이수연 씨(가명, 이하 이) : 이화여자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숙명여대 최유진 씨(가명, 이하 최) : 숙명여자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다.
Q. 여대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김 : 입시 당시에는 합격한 대학교가 동덕여자대학교뿐이라 선택하게 됐다. 그런데 다른 학우 중에서는 여대라는 이유로 선택해서 오신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
임 : 고등학교 때부터 여성이 함께 연대하며 대학교에 다니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여대를 지원한 끝에 입학할 수 있게 됐다.
이 : 재수를 하던 당시 학교에 먼저 입학해 있던 친구가 여대의 좋은 점들을 많이 얘기해 줘서 선택하게 됐다.
최 : 입학 전, 여대에서는 좋은 성적을 얻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만큼 모두가 학업에 열중해 수업 분위기가 좋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성적에 맞춰 대학을 지원했다.
Q. 사실 여대에 대한 각종 편견이 많지 않은가. 실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면.
김 : “여대는 재미없는 곳이다”, “페미니스트에 물들 수 있다” 등 편견 가득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임 :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대 다니면 재밌고 편하겠다”라는 이야기와 “여대면 재미없는 곳 아니냐”는 편견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주신 분들도 많았다.
이 : 10년 정도 알고 지낸 남자친구와 학교에 관해 이야기하다 “너희 학교에 페미(페미니스트) 많냐?”는 식으로 질문했다. 오래 본 친구임에도 내가 여대를 다닌다는 이야기에 저런 질문을 했다. 이와 유사하게 ‘페미니스트’, ‘여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은 질문을 많이 들었다.
최 :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기억에 더 남는다. “페미 양성소”, “기싸움이 심할 것 같다” 등 여대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Q. 여대에 대한 실제 만족도는 어떤지.
김 : 입학하기 전부터 편견 가득한 말들을 듣는 것이 속상했다. 하지만 막상 학교에 와보니, 그런 얘기가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같은 여성들끼리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남녀공학에서는 얻을 수 없는 여대만의 경험을 준다고 생각한다.
임 : 여성이 주체가 돼 함께 뜻을 모아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또한, 동성끼리 있다 보니 이성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
이 :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남녀공학 학교에 다녔다. 그래서 여대를 직접 다녀보기 전까지는 여대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에 알게 모르게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운명 같은 학교라고 느껴질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 동기들과의 서로 유대감이 깊고,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여성 전용 스터디 카페, 여성 전용 오피스텔 등 같은 성별끼리 있는 공간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안도감이 있다. 이는 성별이 섞여 있는 공학에서는 누릴 수 없는 편안함이다.
최 : 매우 만족한다. 여대를 선택해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리더 역할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대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Q. 동덕여대와 성신여대에서 현재 ‘남녀공학 전환’과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다면.
김 : 동덕여대 익명 커뮤니티에서 ‘어떤 교수님들이 남녀공학 전환에 대해 확정된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닌다’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총학생회 측에서는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학교 본부의 처장들에게 문의하자 ‘대학 발전 관련 아이디어 논의 과정 중에 남녀공학 전환 내용이 등장했던 것은 사실’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현재 정확한 상황을 확인하고 발생할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 있다.
임 : 성신여대에서는 2025학년도 전기 외국인 특별전형 모집 요강을 통해 교내에 국제학부 소속 외국인 남학생 입학을 허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학교 본부에서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남녀공학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이전까지 협의체에서 소통이 되지 않았던 것을 미뤄봤을 때 전적으로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Q. 이 같은 상황에 대해서 학생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김 : 학생들은 학교와 정확히 소통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노하고 있다. 소통 문제는 이번 남녀공학 전환 사태뿐 아니라 지난해 학교 건물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와도 관련이 있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학생들은 해당 건물의 위험성과 안전장치 설치에 대해 끊임없이 제기했지만, 학교 측에서는 이를 무시했다.
또한, 올해 3월에도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듣지 않고 갑자기 단과대를 통합하고 새로운 단과대를 신설하는 학사 제도 개편을 진행했다. 전임 교원 부족이나 시설 노후화 등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무시했는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또 다른 변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당연히 학우들의 불만을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남녀공학 전환 논란도 학교의 전적들을 보아 논의에서 끝나지 않고 학교가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보여 학생들이 강경 대응하는 것이다.
임 : 여대에 다닌다는 자부심을 가지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학우들이 많다. 그런데 남학생이 여대를 다니는 것을 구성원과의 소통 없이 추진했다는 점은 강력히 규탄받아 마땅하다. 11년 전부터 외국인 편입학을 해왔다고는 하지만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남학생이 여대를 다니며 졸업증을 받게 되는 신입학은 더 큰 문제다. 성신여자고등학교의 남녀공학 전환이 이사회 회의에서 가결된 것과 더불어, 같은 재단 내에 있는 대학 또한 현재 상황에 대해 많은 학우가 우려하고 있다.
이 : 남녀공학 전환 사태 이전까지는 여대의 정체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번 사태 관련해서 한 학생회가 게시한 입장문 중 “우리가 원하는 여대의 결말은 공학 전환이 아닌 여대의 소멸이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공학전환이 된다면 여대의 정체성은 사라지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학교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학교들의 태도가 제일 문제다. 대학은 결국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러나 학생을 학교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공학 전환이라는 문제가 여대의 정체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일인데 학생들과 상의하지 않고 총장이나 교직원들끼리만 소통하는 것이 매우 아쉽다.
최 : 학생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임에도 젠더 갈등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여론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다. ‘공학 전환 철회’에 대한 논의보다 시위의 폭력성이 부각되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학교의 비민주적인 방식과 학생들이 표출하는 불만 사항을 미온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언론도 이를 중점으로 다루지 않는 것 같다.
Q. 남녀공학 전환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여대 존립 이유에 의문을 가지는 시선들이 있었다.
김 :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여성 살해 소식을 듣고 있다. 여전히 여성 혐오 범죄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남녀공학으로 전환된다면 여성들이 사회에서 느꼈던 불안감을 캠퍼스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범죄 우려 문제가 아니더라도, 여성학 강의를 들으며 여성의 권리를 배우는 것이 좋아 이 대학을 선택한 학우들이 있다. 남녀공학으로 전환이 된다면 여성 중점 강의 수가 줄어들어 성 평등 의식을 고취할 기회가 사라질까 봐 걱정된다.
임 : 여대의 설립 이념을 생각하면 당연히 답이 나오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성 인재를 기르고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는 중추로서 우리 사회에 여대가 필요하다.
이 : 이번 사태를 통해 더욱 여대는 존재해야 한다고 느꼈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진출할 기회가 많아졌고, 유리천장이나 차별이 없다고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직 여성이 생애 가장 높게 달성할 수 있는 평균임금은 남성이 28~30세에 받는 평균임금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컴퓨터공학과나 기계공학과의 여성 비율이 낮은데, 여성 인재를 기르는 여대가 사회적 차별을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일부 커뮤니티에서 ‘왜 여대만 있느냐, 남대도 만들어달라’고 하는데, 남대를 만들면 갈 의향이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여대의 존재가 여성들의 특혜라고 생각하고 차별로서 바라보는 것이 안타깝다.
최 : 여성 혐오 자체가 부정당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여대는 여성들이 자유롭게 목소리 낼 수 있는 공간이다. 이것만으로도 여대의 존립 필요성에 대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Q. ‘남녀공학 전환’ 사태에 대자보를 붙이고 래커 시위하는 등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면.
김 : 동덕여대 총장 직선제와 남녀공학 전환 전면 철회가 목적이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원활한 소통과 현 사안에 대한 정확한 설명과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 : 성신여자대의 학우들이 많은 목소리를 내며 단합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전달하고, 남학생 입학 철회와 더불어 학교 본부와의 적극적인 소통이 목적이다.
Q. 여대의 구성원으로서 학교 또는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김 : 현재 교내 상황이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고 극단적으로 다뤄지고 있어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는 것 같다. 학생들은 학내 구성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인데, 학생들이 하는 폭력시위 등의 자극적인 내용만 보도된다. 학생들이 싸우는 이유, 본질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임 : 학령인구 감소로 남녀공학에 비해 여대가 재정적으로 힘들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는 생각한다. 다만 여대는 여성 인재를 양성하는 것에 큰 역할을 하는 곳이다. 재정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남녀공학 전환이 아닌 다른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 : 젠더 갈등을 정치적인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성들의 표를 모으기 위해, 혹은 남성들의 표를 모으기 위한 공약이나 정책들이 내세워지는 것 같다. 자신들의 이익이 아닌 사회 균형을 이루기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했으면 좋겠다. 또한, 여대를 입학하기 전의 기대감, 졸업하고 나서의 자부심은 여성 대학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부디 학생들의 이러한 마음을 알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길 바란다.
최 : 차별받지 않고, 안전을 보장받고 싶은 여성들의 처절한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이번 사태에 많은 여대 학생들이 연대하는 것 또한 여성의 권리를 지키고 싶어서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이용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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