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는 ‘절대 안 돼’ 외치던
남자친구의 비밀
“내 목소리는 공개하고 싶지 않아”라는 핑계를 대며 전화와 영상통화를 거부하던 연인의 비밀이 밝혀졌다. 그 뒤에는 고도화된 사기 수법으로 피해자들의 인생을 뒤흔든 국제 로맨스스캠 범죄 조직의 정체가 숨어 있었다.
이렇게 단순한 거짓말로 시작된 속임수가 디지털 기술과 국제 범죄망을 결합하며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SNS 만남, 사랑이 아닌 사기의 시작
서울경찰청은 최근 SNS를 통해 피해자와 친분을 쌓은 뒤 금품을 갈취한 국제 로맨스스캠 조직을 검거했다.
이들은 파병 미군, 유엔 직원, 유학생 등을 사칭하며 온라인상에서 연인 관계로 발전한 후, 택배 통관비나 은행 계좌 동결 해제 비용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했고, 총책으로 지목된 러시아 국적 남성 A씨와 그의 조직원들은 14명의 피해자로부터 약 14억 원을 가로챘다.
조직은 철저히 역할을 나눴다. 국내에서는 총책이 범죄 수익을 관리했으며, 피해자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역할은 해외에서 이루어졌다.
가짜 프로필과 사진으로 피해자를 유혹하며 이들은 남성에게는 여성으로, 여성에게는 남성으로 접근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경찰 관계자는 “SNS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이 금전을 요구한다면 반드시 의심해야 한다”며 범죄 수법의 진화를 경고했다.
딥페이크 기술까지 동원된 사기
얼마 전 홍콩에서는 더 고도화된 기술을 사용한 로맨스스캠 조직이 체포됐다. 이들은 딥페이크 기술로 만든 여성 이미지를 활용해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대화로 시작했지만, 이후 투자 유혹과 가짜 암호화폐 플랫폼까지 이용해 피해자로부터 막대한 돈을 갈취했다.
피해자들은 “가짜 미인”의 얼굴과 목소리에 속아 거액을 송금했으며, 이 과정에서 범죄 조직은 피해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매뉴얼을 활용했다.
홍콩 경찰은 이번 사건으로 총 27명을 검거했으며, 범죄에 사용된 100여 대의 휴대전화와 고급 시계 등을 압수했다. 특히 이들은 범죄 성공 사례를 순위로 매기며 조직원들을 독려하는 등 비인간적인 행태를 보였다. 피해액은 약 626억 원에 달했다.
한국에서도 로맨스스캠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2023년 한 해에만 피해 신고 건수가 126건으로, 피해액은 55억 원을 넘었다. 특히 피해자 중에는 유명 연예인도 포함되어 있어 충격을 주었다.
로맨스스캠은 대부분 해외 서버와 암호화폐를 이용하기 때문에 피해 금액의 환수는 거의 불가능하다. 피해자들은 “창피하다”는 이유로 신고를 꺼려 실제 피해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로맨스스캠은 단순한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치부할 수 없는 국제적인 범죄다. SNS와 첨단 기술을 결합한 이 사기는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으며, 피해자들의 신뢰와 감정을 악용하는 방식으로 범행의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개인의 경각심은 물론, 외국인 명의 계좌 관리와 딥페이크 규제 등 제도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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