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를 벗어던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때론 과감하게 변신을 꾀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선 제자리걸음만 하다가 도태되기 쉽다.
19일 재계와 유통업계에서는 CJ제일제당의 그린바이오 사업부 매각을 이런 측면에서 해석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식품회사로서 더 날개를 달기 위한 큰 그림에 따른 매각이라는 뜻이다.
CJ제일제당의 그린바이오 사업 부문은 CJ제일제당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모태다. 일본 감미료 회사인 아지모노토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아 1963년 ‘미풍’으로 출시했던 MSG(글루탐산나트륨)를 만들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1988년엔 인도네시아에 생산 기지를 설립하며 사료용 아미노산 라이신 시장에 진출했다.
① 중국 라이신의 덫에서 벗어난다
우선 CJ제일제당이 그린바이오 사업 부문을 매각하면 중국 라이신 사업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올해 3분기 실적 발표만 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는 부분이다. CJ제일제당은 3분기 실적 발표를 하면서 내수 부진의 여파를 해외 식품 시장 진출과 그린바이오 사업 부문으로 상당 부분 방어했기 때문이다. 그린바이오 사업 부문의 3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74.9%나 증가했다.
하지만 작년까지는 그린바이오 부문에 발목이 잡힌 신세였다. 사료에 넣는 아미노산인 라이신이 문제였다. 라이신은 돼지나 가축 등 성장과 발육을 촉진하는 필수 소재다. 최대 소비국은 중국이다. 하지만 중국 내수 부진에 외식 수요가 줄어들면서 1차 타격을 받았다. 여기에 중국 업체가 라이신 생산 능력을 확대하면서 재고 소진을 위한 저가 케팅을 벌인 것도 문제였다. 라이신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작년 3분기 그린바이오 부문의 영업이익은 102억원이었다. 2022년 3분기 영업이익(1063억원)과 비교하면 10분의 1토막이 난 수준이었다. 3년 치 영업이익을 봐도 그렇다. 2022년 기준으로 바이오 사업부의 영업이익은 6367억원이었는데 작년엔 2413억원으로 3분의 1로 줄었다.
이는 그린바이오 부문에서 고부가가치 소재 위주로 체질 개선을 이루지 않으면 라이신 가격 추이에 따라 실적 등락이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CJ제일제당의 매출에서 그린바이오 비중은 30%다. 이 중 라이신 사업이 20%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그린바이오 매각 결정에 대해 고부가가치 위주로 포트폴리오에 변화를 주는 것보다 글로벌 식품사로서의 성장에 더 중점을 준 선택이라고 보고 있다. 김정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CJ제일제당은 지난해부터 비핵심 계열사 지상쥐, 셀렉타를 매각했다”며 “식품사, 그중에서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케이(K)푸드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의사 결정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② 슈완스컴퍼니 인수 전과 후가 많이 다르다
자신감을 갖고 인수합병 시장에 나서는 배경도 있다. 바로 미국 슈완스컴퍼니의 인수 전후로 기업 실적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은 지난 2018년 건강·기능식 사업 부문인 CJ헬스케어를 1조3000억원에 매각한 후 2조1000억원을 들여 미국 냉동식품 2위 업체 슈완스컴퍼니를 인수했다. 재무적 문제로 지분 일부를 팔았다가 다시 인수했지만, 인수합병 자체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슈완스컴퍼니 인수 후 CJ제일제당의 미국 식품 매출은 3629억원에서 지난해 4조3807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슈완스컴퍼니는 미국 냉동 피자 시장 점유율 2위 업체다. 이 회사의 강점은 냉동 판매망 영업력이 촘촘하다는 점이다. CJ제일제당은 만두 비비고의 유통망 확대를 시너지 효과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슈완스컴퍼니를 인수한 덕분에 CJ제일제당은 미국 전역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3만 개 이상의 유통 점포에서 만두를 포함한 K푸드 및 아시안 푸드 전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당장 비비고 만두의 유통망은 코스트코뿐 아니라 크로거(Kroger)와 타깃(Target), 푸드시티(Food city), 하이비(HyVee) 등까지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슈완스컴퍼니를 인수할 당시 재무적으로 무리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한 인수합병이었다”면서 “이 경험을 토대로 자신감을 가진 것”이라고 했다.
③ 혹한기 대비한 재무구조 개선
당장 재무구조 개선도 기대할 수 있는 부문으로 꼽힌다. CJ제일제당 그린바이오 사업부의 3분기 기준 차입금은 5조7000억원 수준이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한 올해 순이자 비용은 3121억원 수준이다. 사실상 그린바이오 부문의 올해 영업이익 예상치는 3658억원이다. 이자 비용을 바이오 부문의 영업이익으로 상쇄하는 구조다.
박상준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그린바이오 사업 부문 매각으로 CJ제일제당의 실적 안정성과 재무 안정성이 개선될 수 있다고 본다”면서 “매각 대금 전액은 다른 인수합병에 나설 수 있겠지만, 순차입금을 2조원 이상 줄인다고 봤을 때 기업가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 여자대학에 다니고 있는 남학생들, 어떻게 ‘금남의 벽’ 넘었나
- 구글, 엔비디아와 양자컴퓨팅 기술 개발 협력
- 내수 줄고 파업으로 생산 차질… 車업계, 4분기 부진 우려
- 미래에셋운용, ‘TIGER 미국나스닥100ETF선물 ETF’ 상장
- 우리자산운용, ‘WON 전단채플러스 액티브 ETF’ 상장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