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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갈등’이라는 한가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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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12일, 동덕여자대학교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 논의에 반발한 학생들이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에서 항의하며 건물 안쪽에서 문을 막고 서 있다. ⓒ연합뉴스
▲ 11월12일, 동덕여자대학교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 논의에 반발한 학생들이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에서 항의하며 건물 안쪽에서 문을 막고 서 있다. ⓒ연합뉴스

시위는 어떻게 기사가 되는가. 사회부 기자였을 때 고민이 많았던 지점이다. 보통 기사화되는 시위·집회는 고공 시위를 100일은 한다던가(주로 100일, 200일 하는 스페셜한 숫자에 맞춰 보도된다), 주위 교통을 마비시킬 만치 규모가 크다던가, 경찰과의 충돌이 거세다든가 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시위 자체가 가시화의 목표가 크지만, 보도도 눈에 보이는 ‘갈등’ 위주로 중계하는 경우가 많다. 집회 참가자들이 드는 피켓이나 집회 과정에서 파손된 기물 등에 포커스를 맞춰 사진을 찍는 것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공학 전환 반대’ 농성을 두고도 ‘갈등’이 가장 많이 보이는 보도 행태다. 기사를 보면 거의가 사회부 사건팀 기자의 르포, 사진 기자의 현장 사진 등에 의지해 갈등 양상을 그리고 있다. 그만큼의 품도 들이지 않고,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 도는 사진을 그러모아다가 ‘오늘자 동덕여대 시위 근황’이라는 게시물 제목을 그대로 인용해 기사를 쓴 곳도 더러 있었다. 레커칠이 된 설립자 동상, 본관 앞을 수놓은 학생들의 ‘과잠’(학과 점퍼) 시위 등을 사진 기사 위주로 다루기도 했다. 여기에 반여성주의 단체의 집회 예고, 남성들의 교내 침입이 이어지자 ‘학내 갈등’에서 ‘젠더 갈등으로 격화됐다’며 갈등의 범위를 넓혀 잡았다.

그러나 ‘갈등’이라는 이름의 ‘중립 기어’만큼 보도에서 한가한 소리가 있을까. 일련의 페미니즘 백래시를 ‘젠더 갈등’으로 호명했던 몇몇 언론의 취재 문법이, 동덕여대 사태에서도 고스란히 답습됐다. 여대의 공학 전환 이야기는 여러 번 나왔지만, 동덕여대 학생들의 반발이 거센 한 편 다른 여대로까지 연대가 이어지는 데는 딥페이크 성범죄나 젠더 기반 폭력 같은 여성 혐오 범죄가 증가한 것도 한 몫 한다. 이러한 현실을 증명이나 하듯 학생들을 폭도로 규정해 신상을 특정하겠다는 ‘신남성연대’가 있고,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칼부림 예고글’이 올라온다. 그렇다면 이것은 ‘갈등’인가, 일방향적인 ‘폭력’인가. 학교 기물을 파손했다는 ‘시위의 폭력성’ 이전에 직접적으로 사람을 겨냥한 폭력이 더욱 문제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공유하는 상식이다.

단순히 ‘학내 갈등’ 운운하는 기사도 한가한 소리이긴 매한가지다. ‘학령 인구 감소’라는 명목 하에 대학의 이공계 기초학과나 인문·사회학과들이 줄줄이 폐과 직격탄을 맞고 있다.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도 학교 측 명분은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신입생 확보의 어려움’이었는데, 그렇다면 과연 ‘공학 전환’은 번지수가 맞는 해법인지를 언론은 물어야 한다.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7일 대구대에서 열린 ‘사회학과 장례식’의 연장선 상에서 시장 논리로 여대를 공학화하고, 기초 학문들을 학교에서 몰아내는 게 온당한지를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여성대학이 갖는 의의와, 학생들이 여대를 ‘최후의 보루’처럼 여기는 이유에 대한 분석도 함께 필요하다. 한 마디로 언론사의 사회부 사건팀과 교육팀, 젠더팀(있다면) 기자가 모두 달라붙어 다각도로 조명해야 하는 기사라는 것이다.

▲ 11월12일, 동덕여자대학교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 논의에 반발한 학생들이 벗어둔 과잠이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 앞에 놓여 있다. ⓒ연합뉴스
▲ 11월12일, 동덕여자대학교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 논의에 반발한 학생들이 벗어둔 과잠이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 앞에 놓여 있다. ⓒ연합뉴스

‘학내 갈등’의 영역에선 “공식 회의 안건이 아니었으며 학생들 의견을 구하려 했다”는 학교 측 주장에도, 학생들이 이토록 불신하는 까닭에 대한 취재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월간조선의 지난 14일자 기사(「[단독] “공학 논의된 적 없다”더니… “동덕여대, 3년 전부터 공학 전환 논의”」)가 큰 힌트가 된다. 해당 기사에는 학교 측이 일찌감치 공학 추진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며, 두 달 전부터 교수들 의사를 타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소속 교수의 발언을 통해 나와 있다. 거기에 총학생회 차원에서 여러 해에 걸쳐 학내 경사로 완화와 난간 수리 등을 요청했음에도 학교가 이를 이행하지 않았고, 이에 지난해 6월 학생이 쓰레기 수거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불통의 역사’ 등도 기사를 쓸 때 충분히 감안해야 할 맥락이다.

최근 여성단체 활동가 이민주씨가 쓴 ‘페미사냥’이라는 책을 봤다. 책에는 남성 게임 유저들의 요구에 호응해 ‘페미를 배제하겠다’고 나선 기업들이 있었고, 이에 남성 소비자들이 지지의 표시로 기업 측에 선물을 보내자 기업이 공적 기부로 화답한 일이 언급돼 있었다. 책은 일부 IT·게임 언론과 경제지가 이를 ‘소통 경영’과 ‘선한 영향력’의 사례로 소개했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했다. ‘집게손’을 위시한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단순 ‘논란’과 ‘젠더 갈등’, ‘남성 혐오’로 프레이밍해 정당한 의견 개진으로 공식화한 언론의 잘못이 고스란히 나와 있어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홧홧해졌다. 분노보다 부끄러움이 앞서는 걸 보니, 나만 해도 그들 기사와 ‘언론계’라는 동류의식이 있어선가 보았다.

▲ 책 ‘페미사냥-젠더 정치 탐구’ / 지은이 : 이민주 / 출판사 : 민음사
▲ 책 ‘페미사냥-젠더 정치 탐구’ / 지은이 : 이민주 / 출판사 : 민음사

‘언론계 일원’이라는 자의식에 기반해 자성을 촉구하며, 미디어 수용자들에게 믿고 거를 언론을 알아보는 ‘팁’을 하나 전한다. 그것은 바로 ‘논란’, ‘갈등’ 같은 한가한 소리의 남발 여부다. ‘젠더 갈등’이나 ‘남성 혐오’를 따옴표 같은 인용 부호 없이 쓰는 기사가 있다면, 그냥 걸러도 된다. 동덕여대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말을 하려고, 이렇게 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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