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안전, 휴식 등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 활동을 할 권리는 헌법상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돼 있다. 이주노동자도 예외는 아니다.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를 판례로 정립했다. 여기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포함된다.
현실은 다르다. 고용허가제 등을 통해 입국한, 130여만 명으로 추산되는 이주노동자 중 노조에 가입한 이의 수는 2000명 이하로 추정된다. 이주노동자의 약 0.15%만이 노조할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2023년 비정규직 노조 가입률 2.77%와 비교해도 20분의 1 수준이다.
이런 현실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대구성서공단지역지회(성서지회)는 이채롭다. 150여 명의 조합원 중 130여 명이 이주 조합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지난 6일 대구 성서지회 사무실에서 김희정 성서지회 지회장과의 인터뷰, 15일 이주노동자로 성서지회 간부로 활동 중인 차민다 성서지회 부지회장과의 연속 인터뷰를 통해 성서지회의 이주노동자 조직화 성공 비결을 들어봤다.
“이주노동은 더 싸게? 노동조건 하향평준화돼 정주노동자 고용에도 영향”
성서지회가 터 잡은 대구 달서 성서산업단지는 섬유, 전기·전자, 운송장비, 목재 등을 생산하는 소규모 사업체가 밀집한 곳이다. 2023년 대구시 통계를 보면, 입주업체는 2847개, 노동자 수는 4만7064명이다. 한 사업체가 평균 16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셈이다.
인력난을 겪기 쉬운 작은 사업장에 이주노동자가 많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2023년 통계청 통계를 보면,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 69%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50인 미만으로 범위를 넓히면, 이 비율은 78.8%가 된다.
작은 사업장이 많은 성서산단의 운영도 이주노동자의 노동을 빼고 말할 수 없다. 성서산단이 있는 달서 거주 외국인은 지난 4월 기준 1만2610명이었다. 김 지회장은 특히 작은 사업장의 청년 신규 취업자가 줄며 한국인 생산직 노동자들이 고령화되고 있다고 했다.
“이주노동자를 채용하려면 전체 정주(한국인)노동자를 구한다는 채용공고를 7일 이상 내야 하거든요. 그런데 와서 하루 이틀 못 견디고 가요. 그러면 현장에는 고령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이 남아요.
태경산업이라는 회사에 조합원들이 있는데, 제일 젊은 사람이 이주노동자예요. 70이 넘은 생산직 정주노동자도 있어요. 조합원이 있는 다른 두 회사도 제일 젊은 정주노동자는 사업장을 선택할 수 없는 특례병(산업기능요원)이나 현장실습생이에요. 그걸 빼면, 61세 조합원이 제일 젊은 정주노동자인 곳도 있어요.”
이주노동자가 많고, 그들의 노동이 꼭 필요한 산단에 자리잡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노조 활동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노조 내부에서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가 표출되곤 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성서지회 안에도 진통이 있었다. 과거 한국인 조합원 중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에게 신고를 무기 삼아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이들도 일부 있었다. 성서지회 구성원 다수는 그러나 그런 행동에 분명히 선을 그었고, 이제 그런 조합원은 사라졌다.
김 지회장은 이처럼 성서지회가 “모든 노동자는 하나”라는 원칙을 지키며 운영돼온 것이 현재의 모습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도 인간’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도 들리는 원칙이었다.
그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지키고 개선하는 일은 정주노동자의 노동조건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했다.
“정주노동자든 이주노동자든 똑같이 회사에서 일을 해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말자는 사람들이 있죠. 그렇게 하면 사용자들이 더 싼 사람들을 쓰려고 하면서 노동조건이 하향평준화되고, 정주노동자 고용에도 영향을 미칠 거예요. 그래서 모든 노동자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받아야 하는 거고요.”
한글교실, 무료진료소 운영에서 임금체불·사장 갑질 해결까지
성서지회의 활동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이주노동자를 만나기 위한 생활밀착형 접근이다. 조합원들은 산단 구석구석을 누비는 선전 활동, 노동상담소 운영에 더해 언어, 의료 등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오래 이어왔다.
“노조 설립 초기부터 한글교실과 무료 진료소를 운영했어요.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뭐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시작했어요. 한글교실이나 진료소에 왔다 지회에 가입한 분도 있었고요. 진료소 통역은 주로 아픈 노동자의 동료 중 한국 말을 할 수 있는 분들이 많이 하셨어요. 통역을 하던 이주노동자 중 한 분은 노조 상근 간부가 됐어요.
저희가 다 하는 건 아니에요. 마음이 동해 움직이는 분들이 있어요. 한국어 교사 중에는 이주노동자를 오래 취재했던,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가진 기자가 있고요. 진료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사들이 주로 봐주셔요.”
이주노동자 조합원의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도 열심히 했다. 주로 발생하는 문제는 갑질을 하는 사장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사업장 이동, 임금체불 등이었다.
“OO목재라고 있었어요. 목재로 ‘파레트(pallet)’ 같은 걸 만드는 회사인데, 불량이 난 목재를 기숙사 난방용 땔감으로 썼어요. 아궁이를 현대화했다고 보면 돼요. 회사에서 퇴근한 이주노동자들에게 그걸 떼게 시켰어요. 그것까지는 참았는데, 사장이 욕도 하고 때리기도 했어요. 항의집회를 열었어요. 당사자도 직접 참여했고요. 결국 회사가 사과문을 게시했고, 이주노동자들도 원하면 회사를 옮길 수 있게 됐어요.
또 심한 게 임금체불이에요. 근로계약서에는 출근시간이 8시인데 회사가 새벽 3시부터 일을 시켰는데, 돈을 못 받았다는 이주노동자가 있었어요. 항의하러 갔더니 회사가 자발적으로 한 일이라는 거예요. 누가 하루에 4시간 무료 노동을 자발적으로 해요. 말도 안 된다고 항의하고 4000만 원 정도 되는 체불임금을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2500만 원으로 합의를 보자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 집회를 크게 해서 다 받아냈죠.”
임금체불이나 갑질과 관련한 활동에 대해서는 공단 내 한국인들의 여론도 성서지회에 우호적이었다. 김 지회장은 이주노동자에게 임금을 안 주거나 욕을 하고 때리는 사업주는 주변의 한국인 사장이나 시장 상인, 노동자들에게서도 손가락질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성서지회에서는 한발 더 나아간 변화도 있었다. 한국인 조합원들이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조합원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곳이 생겼다. 올해도 성서지회 소속 태경산업현장위원회가 △이주노동자가 원할 경우 자동계약연장, △이주노동자 상여금 인상 등을 요구안에 포함해 단체교섭을 진행 중이다.
노조를 통해 ‘인력’ 아닌 ‘인간’이 된 이주노동자
무엇보다 소중한 변화는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 와 흔히 ‘인력’으로 대우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외치는 ‘인간’으로 바로 서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조합원 혹은 간부로서 성서지회가 하는 사업을 주체적으로 이끌고 있다.
차민다 부지회장도 그 중 한 명이다. 2010년경 출국을 앞둔 동료의 체불임금 문제 해결방안을 찾던 중 성서지회를 알게 된 차민다 부지회장은 이후 5년여 간 거의 매주 일요일 성서지회가 운영하는 노동상담소, 무료진료소 등에서 통역 일을 도왔고, 2015년경 성서지회에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이후 2019년 성서지회 부지회장이 됐다.
“노동운동에 대해 잘 몰랐는데, 여기 와서 노조를 만나고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노동권이 있구나. 함께 싸울 수 있구나. 그런 의지가 마음 속에 생겼어요. 체불임금 안 주는 사용자들한테 항의하는 연설을 하면서 자꾸자꾸 마음속에 무서운 게 없어지고, 에너지가 생겼어요.
저는 노조 조끼를 너무 좋아해요. 현장에 가서 사장들 만나뵙고, 해결 안 되면 싸우고 하는데 노조 조끼가 얼마나 힘이 됐는지…. 14년 정도 성서공단 노조와 함께 상담도 하고, 투쟁도 하고, 사업주와 싸우고 하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차민다 부지회장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성서지회에 가입한 이주노동자의 국적만 10개에 달하는데, 국가별로 “리더” 역할을 하는 간부들이 있다. 이들이 모여 성서지회 운영에 대한 회의를 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 조합원도 마찬가지다. 한 달에 한 번 두 개 조로 나눠 사업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나누거나 교육을 받기 위한 모임을 가진다.
차민다 부지회장은 조합원들을 만날 때면 노조는 “보험회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는 일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뜻에서다. 단 혼자서는 해내기 어려운 그 일을 노조에 가입하면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도 함께 강조한다고 했다.
차민다 부지회장과 10명의 국가별 “리더”들 역시 OO목재 ‘갑질 사장’에 맞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이동을 요구할 때, 또다른 사업장에서 새벽 3시부터 이주노동자를 출근시켜 놓고 오전 8시 이전 업무에 대한 임금은 주지 않는 사장에게 항의할 때, 싸우는 이주노동자 조합원들과 함께 했었다.
한국사회에는 더 많은 성서지회가 필요하다
물론 성서지회도 조합원이 소수라 힘이 부칠 때가 많다. 갑질이나 임금체불 문제 해결을 요구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독한 사장을 만나면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는 것과 같은 구조적 문제 앞에서 벽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성서지회는 꾸준히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주노동자 스스로의 힘으로 현장에서부터 노동권을 쟁취하는 길은 노동조합 외에는 찾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지회장은 그런 노력이 노동계 전반으로 번지기를 바란다며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일하러 온 이주민이 130만 명이 넘었다고 하잖아요. 노조 가입을 늘릴 가능성은 충분한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하면, 아직 내부 준비가 안 됐다고 이야기해요. 이주노동자들이 이미 이 사회의 일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계속 후순위로 미루면 안 돼요. 일단 밀고 나가면 좋겠어요.
작은 사업장들이 있는 공단에 활동가 두 명이 있으면,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소를 열 수 있어요. 노조가 하겠다고 의지를 밝히면, 주변에서 돕겠다는 사람들이 나와요. 그런 사람들을 모아 시스템을 만들면 돼요. 공간은 노조 사무실 한켠에 열 수 있고요. 한글교실도 마찬가지예요. 노조가 이런 일을 하겠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동의할 거라고 봐요.”
차민다 부지회장 역시 갈수록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는 한국의 현실을 짚으며 “이주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은 꼭 필요하다. 어떤 노동자든 노동권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주노동자든 이주노동자든 똑같은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함께 싸우고 단결할 수 있는 사람이 늘면 든든할 것 같다”고 헸다.
성서지회 간부들의 바람과 달리 변화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성서지회가 출범하고 이주노조 운동의 한 모델을 보여준 지 20년이 넘었다. 최근 3년간 정부가 사람 구하기 어렵다는 재계의 아우성에 따라 이주노동자 비자를 3배 넘게 늘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함께하는 노조는 특별한 사례다. 이제 한국 땅에서 없어선 안 될 이주노동자들이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서서 노동조건 개선을 외치는 일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일은 언제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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