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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주동자? 사고예방자? 한순간 ‘핵심’인물 된 평범한 기관사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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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가 바뀌면 30년을 철도 현장에서 열차를 운행한 기관사가 된다. 수십 년간 지속된 끔찍한 취업난의 시대에 한 직장에서 30년을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더구나 철도에서 일한다는 것은 사람을 이어주고 환경을 보호하며 온실가스를 줄여 기후 위기에도 도움이 되는 아름다운 일이었기에 큰 복을 받은 것이 틀림없는 일이다. 이를 축하라도 하듯 11월에 들어서자 한국철도공사 사장으로부터 감봉 1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았다.

이야기는 1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12월, 내가 일하는 철도공사 서울기관차승무사업소의 간부로부터 감사실로부터 조사를 받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감사실 조사 소식에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봤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실에서 조사를 받아야 할 잘못을 저지른 일이 있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해가 바뀌었고 감사실 조사 건을 잊을만한 시점에 2023년 9월에 있었던 철도노조 파업 관련 조사가 필요하다는 감사실 출두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역시 왜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서 나에 대한 조사가 필요할까라는 의문이 들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노조 간부들 조차 “아니 우리는 그렇다 쳐도 왜 형이 출두 요청을 받아?”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철도현장에는 수 백 명의 노동조합 간부에 대한 징계 프로세스가 진행됐다. 회사는 불법 파업에 따른 징계를 하겠다는 것이고 노조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행사한 합법 파업이라는 입장이다. 두 대립되는 주장은 결국은 법정 판결로 어느쪽이 맞는지 판가름 날 것이다. (☞관련기사 : [단독] 철도공사, 尹 정부 철도 정책 반대했다고 직원 175명 대량 징계)

▲ 전국철도노동조합 대전지방본부가 지난해 9월 14일 대전역 동광장에 모여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 전국철도노동조합 대전지방본부가 지난해 9월 14일 대전역 동광장에 모여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나에 대한 철도공사의 징계는 파업이 불법이든 합법이든 무관하게 부당하다. 철도공사의 징계 의결 요구서에 적힌 나의 혐의는 다음과 같다.

“혐의자는 철도노조 정책위원이자 중앙쟁대위 집행위원회에 속해 쟁대위의 모든 사업을 총괄, 투쟁 상황을 점검·통제하고 투쟁방침에 따른 구체적인 행동 지침 등의 생산 및 하달, 각종 결의대회 참석 지시, 선전물 생산·배포 등으로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파업에 참여하도록 불법파업을 기획·주도·선동하였다.”

처음에는 나의 혐의를 읽는 동안 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나는 철도노조의 상근 간부도 아니고 당연히 중앙쟁대위 집행위원도 아니다. 파업과 관련해서 중앙쟁대위 집행위원회 회의가 여러차례 열렸겠지만 그런 회의가 언제 열렸고 누가 참석했으며 무슨 내용이 논의됐는지 조차 모르는데 거의 철도 파업의 핵심 주동 인물이 되어있었다.

여기서 잠시 창피하지만 나의 사생활을 조금 언급하자면 가급적이면 사람들과의 만남을 줄이고 주로 골방에 틀어박혀 있거나 시립도서관 순례를 한다. 한때 노동조합 간부를 지낸 적도 있지만 노동조합의 일상 업무로부터 벗어난지가 15년도 넘었다. 나는 승무를 쉬는 날이면 홀로 방안에서 철도 관련 역사나 정책을 연구하거나 외국 자료를 번역하기도 하고 필요할 때는 글을 쓰기도 한다. 정독 도서관 열람실에서 떨어지는 벚꽃을 보다 졸기도 하고 현장에서 가까운 마포 도서관의 서가를 어슬렁거리는 일이 전부다.

최근 몇 년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철도의 숨은 가치를 발견해 내는 인문학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강의 준비를 하는 것이 추가 되었을 뿐이다. 이 교육과정은 철도공사와 노조가 공동 출연한 희망철도재단의 공식 사업이기도 하다.

파업을 기획하고 무엇인가를 지시하고 행동지침을 하달하려고 한다면 광범위한 조합원들을 지속적으로 만나야 한다. 빈방에서 홀로 그 일을 수행했다면 거의 스타워즈 제다이 기사에 버금가는 포스로 사람들을 조정했다는 말이 된다.

철도공사 감사실의 주장에 따르면 나는 본업인 승무를 일상적으로 하면서 철도 정책 관련 연구와 강의를 지속하는 동시에 중앙쟁대위 집행위원으로 변신하여 파업을 기획하고 선전물을 만들어 배포하고 조합원들을 만나 파업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수퍼 히어로가 아닌 이상 진즉에 과로사하고 말았을 일을 수행한 것이다.

지난해 파업이 있었던 9월에 나는 철도공사 서울본부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업무 중 선로 상태의 이상을 발견하여 열차 탈선 위험을 막았기 때문이다. 서울본부장은 “평소 맡은바 직무에 힘써 왔으며 특히, 위험요인을 사전에 발견하고 조치하여 철도안전수송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라고 표창의 이유를 밝혔다. 파업주동자와 사고예방자. 같은 시기에 벌어진 전혀 성격이 다른 두 가지 행위 중 진실은 무엇일까?

▲ 철도를 달리는 열차. ⓒ프레시안(박세열)
▲ 철도를 달리는 열차. ⓒ프레시안(박세열)

나는 근 20년을 철도 정책을 연구하면서 철도공사든 철도노조든 철도가 제대로 성장하는 일이라면 힘을 아끼지 않고 도왔다. 철도공사와의 협업도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진행했다. 지난 20년은 국토부의 이상한 철도경쟁체제라는 정책으로 한국철도가 파행의 한 가운데를 질주하는 시간이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국토부는 철도공사의 기능과 역할을 줄이는데 주력해왔고 철도공사는 상급부처의 잘못된 정책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철도공사의 대변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여러 공식, 비공식 자리에서 국토부의 정책이 갖는 문제들을 비판해 왔다. 국토부 철도 정책의 우선 순위는 한국철도공사를 한국철도를 총괄하는 건강한 공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철도공사는 나에게 징계가 아니라 표창을 주어야 맞는게 아닐까.

지난해 파업 관련해서 평조합원으로 노동조합의 지침에 따라 파업에 참여한 것 이외에는 아무런 한 일이 없다. 철도공사 감사실이 합리적 이성과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업무가 집행된다면 나의 소명서 제출로 오해가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 결과는 나의 순진한 판단이었다. 소명은 기각됐고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노조는 부당한 징계이므로 징계 대상자들의 징계위원회 출석 거부 지침을 내렸지만 나는 기꺼이 대전 본사에서 열린 징계위원회에 출석했다. 징계위원회 출석 이유는 공정과 상식이 작용된다면 징계위원회가 감사실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모두가 출두를 거부한 징계위원회에 홀로 출석하는 것은 나의 무고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식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징계위가 끝나고 두 달이 지난 시점에 철도공사 사장의 결제를 받은 징계결정서가 송부되어 왔다. 9월에 있었던 징계위원회에는 5명의 징계위원이 나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나는 감사실의 잘못이 없었다면 굳이 쓰지 않았을 장문의 소명서를 읽으며 발제했고 질의와 응답이 이어졌다. 징계위원들이 최소한의 한글 독해력이 있다면 징계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게되리라 생각했지만 역시 오산이었다.

사실 아주 간단한 문제였다. 감사실이 주장하는 나의 행위를 나는 한 적이 없다. 징계위원회는 내가 징계를 피할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만 판단하면 된다. 내가 파업을 기획·주도·선동 했다는 실제적 증거를 제시하면 된다. 세상에 내가 하지 않은 행위를 누군가가 뒤집어 씌우며 비난하는 것 만큼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철학자 들뢰즈는 대상에 대한 정의를 다시하면서 사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고 했다. 이 방법론에 따르면 내가 9월에 만난 징계위원들은 “호흡하는 허수아비”였다. 징계위원들은 나의 소명서와 증언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이해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소명을 기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징계위원들이 나의 소명을 이해하지 못했기를 바란다. 이해했는데도 징계를 의결했다면 그들의 양심과 영혼이 너무 불쌍하기 때문이다. 전자의 이유라면 내가 글쓰기에 더욱 정진하면 되는 일이다.

감사실에 대한 소명과 징계위원회에 출석해 장시간 무고함을 밝힌 일들은 무의미한 일이 되었다. 모든 과정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최종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징계의결서에 인쇄된 “이 처분에 대한 불복이 있을 때에는 인사규정…따라 이 설명서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라는 상투적 말에 현혹되어 재심청구서를 쓰는 대신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철도공사 간부들과 공동작업을 여러 번 수행했다. 적지 않은 간부들은 성실성과 유능함을 겸비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감탄을 하기도 했다. 반면 일부 간부들은 어떻게 저런 자리에 올랐는지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이를 “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명명했다. 어느 사회에서나 늘 일정한 비율의 문제아들은 있기 마련이다.

나의 징계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적대적 증오가 이성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적대적 증오의 하위 수행자들은 그저 행정업무의 일환으로 사람을 취급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나의 징계사유서에 명시된 행위들에 대해 어떻게 옆에서 본 사람처럼 확신을 가지고 기술했을까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웬걸 다른 사람들의 징계사유서도 똑 같았다. 그러니까 징계 수위에 대한 표준안을 만들고 어떤 기준인지 모르지만 대상자들을 흩뿌린 것이다.

나는 수년 전 철도공사 간부 몇명을 이끌고 폴란드의 오시비엥침 역을 안내한 적이 있었다. 절멸수용소 아우슈비츠가 있는 곳이다. 나는 당시 간부들에게 이 수용소가 우리에게 말하는 현재적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내가 쓴 책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의 한 챕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치는 대량 살육을 행정업무로 처리했다. 문서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은 사유가 무엇이 됐든 열차를 타고 오시비엥침 역에서 지선으로 갈라진 아우슈비츠 수용소까지 가야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오!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오! 라는 항변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감사실 징계요구서와 징계위원회 징계처분 사유서의 문제는 각 개인의 행위가 무시되고 처음에 감사실에서 특정한 사람들을 등급에 따라 그냥 묶어 버리게 된다. 우리 인간들은 모두 이름이 있고 그 삶의 구체성은 저마다 다르다. 그 다름이 조화를 이루고 사회를 이루어 간다. 우리는 표준안에 이름만 바꿔치기 되는 불성실한 문서에 오르내리도록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문서들은 과거 오시비엥침 역이나 뤼순 역과 서대문 역에서 남발되었던 문서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글의 결론을 내야 할 시간이다. 나는 한문희 철도공사사장의 성공을 바랐다. 사장이 임기를 무사히 채우고 성과를 낸다는 것은 한국철도가 그 만큼 한 걸음 나아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사장이 성공하는 길은 한 개인이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서로 인내하고 인정하면서 만들어 내는 성과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공사나 노조가 서로를 제거해야 할 적대적 대상으로 간주하고 피 터지게 싸우면서 얻어낼 수 있는 성과란 과연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글의 제목을 정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1년간 한문희 철도공사 사장 체제에서 벌어진 한 늙은 기관사에 대한 가스라이팅이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한문희 철도공사 사장체제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한문희 철도공사 사장을 언급하는 이유는 어쨌든 나에 대한 징계의 최종 결정권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의 시대가 열릴것이라 자부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상한 일들이 연기처럼 세상 곳곳에서 스멀 퍼지고 있는 것 같다. 모두들 무사하기를 바란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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