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고 부른다. 머니 머신은 사전적으로는 돈을 잘 버는 ‘부유한 나라’를 뜻하지만, 트럼프는 안보에 있어 ‘한국이 미군의 군사력에 무임승차’하고 있고, 무역에서도 ‘미국을 이용해 먹는 나라’라고 주장할 때마다 ‘머니 머신’이라는 단어를 꺼낸다.
실제로 트럼프 집권 1기 당시 트럼프는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이 분담하는 몫) 5배 인상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한·미 양국이 이견을 좁히지 못해 장기간 표류했고 결국 2021년 1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타결된 바 있다. 또한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 후보로 유세를 펼칠 당시 모든 수입품에 보편적 기본 관세 10~20%, 중국 수입품엔 60%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약하는 등 지독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예고했다.
조선비즈는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지금, 한국 외교·안보와 경제에 미칠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겸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하이브리드위협 연구센터장을 지난 12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고 연구위원은 “트럼프는 예측 불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을 자신의 전략으로 삼는다”면서도 “트럼프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우리가 예측할 때마다 벗어날 것이다. 트럼프의 행동은 계속 예측할 수 없겠지만, 트럼프가 ‘이익을 쫓는다’는 점은 불변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와 제로섬 게임이 아닌 거래를 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미동맹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외교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 “한미 외교, 신뢰보다 이익이 중요해져…상호 이익 추구하는 거래 관계돼야”
고 연구위원은 트럼프가 한미동맹 강화보다는, 한미동맹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할 것이라고 봤다. 예를 들어 방위 분담금을 예상보다 높게 요구할 수도 있고,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 연구위원은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 흑자를 줄이는 쪽으로도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 경우 미국과 한국의 관계가 ‘제로섬 게임’이 된다는 점이다. 제로섬은 한쪽의 이득과 다른 쪽의 손실을 더하면 제로(0)가 되는 게임을 일컫는다. 내가 얻는 만큼 상대가 잃고, 상대가 얻는 만큼 내가 잃는 승자독식의 게임이라 치열한 경쟁이 빚어진다.
고 연구위원은 “(한미동맹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이) 제로섬 게임이 아닌 ‘거래’ 쪽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에게 ‘한국이랑 계속 거래하면 장기적으로 미국에 유리할 거다’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며 “미국이 원하는 것을 일본 등이 아닌 한국이 줄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미국과 거래를 할 때 꺼낼 수 있는 카드에 대해선 “트럼프가 한국을 껴안음으로써 제일 얻고자 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압박, 산업 기반 재건일 것”이라며 “트럼프에게 경제 정책은 없고, 일자리 정책만 있으니 한국이 트럼프의 일자리 정책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우면 된다”고 했다. 그 중심에 방산업이 있다. 고 연구위원은 “많은 분들이 말한 대로 방산 분야에서 협력해야 한다”며 “트럼프는 일자리가 늘어나길 원하니, 한국 방산 기업이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길 원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고 연구위원은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 흑자가 증가한 상황이라 트럼프가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는 방안도 요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자동차 부분이 대미 무역 흑자의 약 30%를 차지하는 만큼 트럼프가 현대차 등에 미국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봤다. 고 연구위원은 “트럼프는 관세 이야기를 할 때, 관세를 부과받은 회사들에 미국에 물건을 팔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생산하면 더 유리하다고 이야기한다”며 “트럼프는 아마도 미국에서 파는 자동차는 미국에서 만들라고 할 것이다. 현대차에 미국에서 생산을 늘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방산업, 조선업, 대미 투자 등을 어떻게 포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고 연구위원은 트럼프 1기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가 보여준 것처럼 “한국과 미국이 붙어있는 것이 서로의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방안이라는 것을 계속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방위 분담금 100억 달러 부를 수도, 이익 공동체 강조하며 거래해야”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10월 15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당선되면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연간 100억 달러(약 14조30억 원)를 지출할 것”이라며 “그들(한국)은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한국은 머니 머신”이라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가 제시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액은 한국과 미국이 2026년 방위비 분담금으로 설정한 1조5192억 원(전년 대비 8.3% 증가)보다 약 9배 많다.
정말 트럼프는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 달러를 요구할까. 고 연구위원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100억 달러가 아니라 200억 달러(약 28조60억 원)를 부를 수도 있다”며 “기술적으로 협상을 딜레이(delay) 시킬 수 있다”고 했다. 고 연구위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분담금 인상의 이유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인공위성 관리 비용까지 내라고 할지도 모른다”며 “한국도 주한미군 주둔 부지 비용을 이야기하는 등 거래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어 “(트럼프가 원하는) 미국의 산업 기반 재건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이 이익 공동체라는 것을 강조하고, 여러 아이템을 제시하면서 (미국이 인상한 방위비 분담금에) 노(No)라고 하기보다 딜(Deal)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고 연구위원은 방위비 분담금을 한미 동맹의 지속 여부와 결부시키지 말라고 강조했다. 고 연구위원은 “서로 마찰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며 “서로 거래를 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처럼 고 연구위원은 인터뷰 내내 트럼프 정부에서는 철저하게 “신뢰보다 이익이 중요하고, 한미 관계가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거래 관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안보, 정치적 안정을 위해선 내수가 위협을 받겠지만, 대미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연구위원은 “미국은 세계 최대의 거대 시장이고, 중국과 경쟁할 필요도 없는 시장이기에 미국 시장을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며 “(대미 투자가 늘면) 내수가 줄어드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되겠지만, 한국 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상황이기에 대미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의 한국 경제 구조가 “제조업 기반보다는 자산 기반으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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