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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그 수식어 그대로…참 반가운 ‘방준혁’ [데스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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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혁 의장ⓒ넷마블
방준혁 의장ⓒ넷마블

“한게임에 라꾸라꾸(접이식 침대)가 있다면, 넷마블에는 야전 침대가 있다.”

2000년대 초 국내 1위 게임포털 한게임과 이를 모델로 삼아 고스톱, 바둑, 테트리스 등 웹보드 게임을 서비스 한 넷마블을 두고 돌던 말이다. 우스갯소리 같겠지만 정말로 방준혁 넷마블 의장(당시 대표) 사무실 한구석엔 모포와 국방색 야전 침대가 놓여 있었다. 야전 침대를 두기 전까진 사무실에서 노숙을 했다. 바닥이 너무 추울 땐 신문을 깔았다.

이를 보다 못한 직원이 어느 날 사장실에 야전 침대를 갖다 뒀다고 한다. 방 의장은 이렇게 사무실에서 개발자들과 동고동락하며 넷마블을 일궜다. 그 결과 1년 만에 1000만명 가까이 늘어날 만큼 회사의 성장 속도가 놀랄 만큼 빨랐다. 그래서 야전 침대는 방 의장의 열정이자, 벤처 정신의 상징물처럼 여겨졌다.

“정말 독하게 버텼다.”

그렇다고 방 의장이 한 번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는 여러 번 창업에 나섰다가 번번이 실패했다. 인터넷으로 영화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1998년 창업한 ‘시네파크’는 반응은 상당히 좋았으나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다. 모뎀이 주를 이뤘던 당시에 돈을 주고 인터넷으로 영화를 보겠다는 사람들이 있을 리 없었다. 이후 ‘스카이 시네’라는 위성방송을 준비했으나 벤처 거품이 거치면서 결국 자금난으로 중도에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두 차례에 걸친 사업실패는 방 의장에게 큰 교훈을 줬다. 사업은 무작정 달려드는 우연이 아닌 타이밍이 성패를 가른다는 것, 그리고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것은 창업자의 ‘열망’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 속에 그는 2000년 마지막으로 넷마블을 차렸다. 설립 당시 자본금은 1억원, 직원은 8명에 불과했다.

“그동안 미뤘던 건강검진을 하면서 담배를 끊었어요. 다행히 병원에선 아무 이상이 없다네요.”

2004년 지분 대부분을 800억원에 CJ에 넘긴 뒤 서대문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던 허름한 식당에서 그는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어떨 때는 72시간 개발자들과 함께 야근하고 야전 침대에 쓰러져 깊은 잠을 자는 등 모든 걸 쏟아부은 그였으니 넷마블 지분 매각이 얼마나 아쉬웠을지 짐작되고도 남았다.

불과 1년 전 2003년 그는 사업자금 확대를 위해 상장기업이던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로 들어가 그해 매출 270억원에 156억원의 순익을 내면서 모회사인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 마저 흡수한 터였다. 당시 세간에는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하지만 그의 말과 달리 이후에도 정작 자신의 건강은 제대로 돌보지 않고 일에 몰두한 듯하다. 그는 그로부터 얼마 안 된 2006년 건강 악화로 은퇴했다. 대표로서의 마지막을 그야말로 하얗게 불태운 셈이다.

권영식 넷마블 대표의 수상 소감을 듣고 있는 방준혁 넷마블 의장(가운데).ⓒ데일리안 이주은 기자
권영식 넷마블 대표의 수상 소감을 듣고 있는 방준혁 넷마블 의장(가운데).ⓒ데일리안 이주은 기자

“스타트업으로 좌절감을 맛보고 있을 때 방준혁 의장이 손을 내밀었다.”

그는 2012년 당시 넷마블 지분 48.2%를 380억원에 되사오면서 다시 경영에 참여했다. 2010년 주력 온라인 게임 ‘서든어택’ 서비스권을 넥슨에 빼앗기면서 위기에 처하자, 모기업인 CJ가 그를 구원투수로 부른 것이다. 그가 없던 5년간 넷마블은 19개 게임을 개발해 11개를 선보였으나 모두 흥행에 참패했다.

나머지 게임 8개는 출시조차 못 했다. 그 사이 게임 시장의 무게중심은 온라인 게임에서 모바일 게임으로 완전히 옮겨갔다. 시장의 관심은 그가 그간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였다. 그는 또 처절하게 자신을 몰아쳤다. 복귀 후 2년간 거의 퇴근하지 않고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일에 매달렸다. 그 결과 2012년 2000억원에 불과했던 연 매출이 2015년 1조원으로 늘었다.

그리고 ‘2015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레이븐’으로 창사 후 처음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당시 대상을 수상한 넷마블에스티 유석호 대표는 수상 소감에서 방준혁 의장에 대한 감사부터 표했다. 그렇게 방 의장은 게임대상 시상식에서 처음으로 가장 마지막에 이름이 불린 사람이 됐다.

“창작의 자유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주신 방준혁 의장께 감사드린다.”

그 이름이 9년 만에 다시 불렸다. 지난 13일 열린 ‘2024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넷마블의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나혼렙)가 대상을 받았다. 나혼렙은 각종 규제와 경기 침체 등 과거와 사뭇 다른 환경에서도 출시 직후 해외 105개국 매출 10위 안에 오르고 최근 서비스 5개월 만에 누적 이용자 50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성과를 냈다.

사실 최근 2∼3년 넷마블의 성과는 저조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근무환경 변화와 신작 출시 지연 등으로 인해 애초 목표했던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방 의장은 이런 위기에 맞서 야전 침대 같은 옛날 방식이 아닌 명확한 변화를 택했다. 오히려 야근과 주말 근무를 없애고 탄력근무제를 도입했다.

넷마블은 밤에도 건물 불이 꺼지지 않아 ‘구로의 등대’로 불렸던 터다. 이런 변화에 대해 그는 “근무환경 등이 변해 예전처럼 스피드를 경쟁력 삼아 게임 산업을 운영할 수 없다”며 “이젠 ‘웰메이드 게임’으로 승부 보는 시대”라고 말했다. 그 결과물이 이번 대한민국 게임대상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방 의장은 무작정 옛것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변화를 갈망하는 구성원들을 위해 버려야 할 것을 버릴 줄 아는 포용의 리더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번 수상과 관련해 가장 먼저 “임직원의 사기를 드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돼 기쁘다”고 전했다. ‘집념’과 ‘열정’ 뿐 아니라 이렇게 조직에 대해 따뜻한 애정도 가진 사람이다. 모처럼 반가운 풍경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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