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친윤석열계 아니야. 내 이름 앞에 친윤계라고 붙이지마.”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지면서 ‘한때’ 친윤석열계라고 불렸던 의원들에게서 심심찮게 이런 얘길 듣는다. 이런 얘길 하는 이들 중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친윤 핵심’을 자처하던 의원도 있다.
‘친윤 호소인’ ‘윤초선’(친윤석열계 초선)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던 정권 초반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지난해 3·8 전당대회까지만 해도 친윤을 자처하는 이들이 차고 넘쳤다. 당시 ‘용산’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나경원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를 막기 위해 연판장에 서명했던 국민의힘 초선 의원만도 48명에 달했다. 친윤계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을 정도다. 하지만 당의 이런 분위기는 윤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180도 달라졌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하자, ‘범친윤계’로 범위를 넓혀도 30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친윤 대신 친한? “검증 필요”
그렇다고 ‘탈친윤’한 의원들이 한동훈 대표 쪽으로 옮겨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 안에선 국민의힘 의원 108명 가운데 ‘친한동훈계’라고 불리는 의원을 대략 20여명 정도로 보고 있다. 한 대표와 윤 대통령이 ‘81분 면담’을 한 다음날(10월22일) 이뤄진 친한계 ‘번개 만찬’에 참석한 의원 수가 21명이었다. 한국갤럽이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한 대표가 보수 진영 인사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걸 감안할 때, 친한계가 크게 늘고 있진 않은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다음 대선까지 2년 반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영남의 한 중진 의원은 “정치라는 게 내일 일도 예측 못하는데, 2년 반 뒤 일을 어떻게 예상하냐”며 “그때 국민이 어떤 리더십을 요구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권력의 추가 어디로 이동할지 모르는 만큼, 일단 ‘중립지대’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게 안전하다는 얘기다.
22대 총선이 윤 대통령 취임 직후 치러진 만큼 너도나도 친윤을 자처하며 윤 대통령 앞에 줄을 섰지만, 다음 대선까지 별다른 정치적 이벤트가 없는데 섣불리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영남의 한 초선 의원은 “(장래 정치 지도자로) 한 대표의 지지율이 제일 높긴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부터 친한계에 줄을 설 필요가 없다고 본다. 한 대표가 당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됐고, 검증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현재 국민의힘에선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관망파’가 50여명으로 다수다. 이들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특별감찰관 추진 문제 등을 놓고 각을 세울 때마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다. 물론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걸면 속내를 들려주긴 하지만, 직접 이름을 내걸고 발언을 하진 않는다. “우리라고 왜 할 말이 없겠냐. 그런데 굳이 나섰다가 찍힐 수도 있으니 일단은 묵언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남 한 재선 의원이 이렇게 말했다.
한겨레 서영지 기자 /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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