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10원에 육박하면서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선이 뚫렸다. 한국은행의 시장 개입에도 미국 주식 등 도널드 트럼프 관련 수혜주로 투자가 쏠리는 ‘트럼프 트레이드’ 현상이 거세지면서 달러 강세를 막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트레이드가 최소 내년 1분기, 최장 내후년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환율, 2거래일 연속 1400원 웃돌아
13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보다 6.5원 오른 1410원에 개장했다. 전 거래일 마감가(새벽 2시 기준) 1409.9원보다 0.1원 오른 값이다. 개장 이후 환율은 오전 9시 39분 현재 1409원선을 움직이고 있다.
환율 시가는 전날에도 1402원을 기록하면서 1400원을 넘어선 바 있다. 이후 1400원 선에서 등락을 거듭하다가 오후 종가 기준으로 1403.5원을 기록했다. 환율 종가가 14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 2022년 11월 7일(1401.2원) 이후 2년 만이었다. 그러나 이후 환율은 더 가파르게 올라 1410원에 육박했다.
한은도 시장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 5일 한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말 기준 4156억9000만달러로, 전월 말(4199억7000만달러)보다 42억8000만달러 줄었다. 넉 달 만에 감소세로 전환한 것인데, 달러 강세에 따른 외환 당국의 미세 조정 등 영향에 따른 것으로 해석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환딜러는 “한은은 지금도 달러를 매도하면서 변동성을 제한하는 수준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수출 업체들도 차익 실현을 위해 보유 중인 달러를 풀고 있어 외환 시장에서 매도 가격은 촘촘하게 형성돼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딜러도 “한은이 조금씩 시장에 개입하면서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한은의 개입에도 미국 주식 등으로 자산이 쏠리는 트럼프 트레이드 현상이 거세지면서 달러 강세가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미국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지난 11일(현지 시각) 일제히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304.14포인트(0.69%) 오른 4만4293.13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6001.35,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1만9298.76에 마감했다.
◇ 트럼프 트레이드, 2026년까지 지속될 수도
시장에서는 트럼프 트레이드 현상이 내년 1분기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내년 1월 취임 전까지는 공약이 구체화되기 어려운 데다, 취임하더라도 경제 정책들이 바로 쏟아져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빠르면 1분기 말부터 정책이 나올 것 같고 2분기 초를 예상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구체화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2일 발표한 ‘2024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장벽이 내년까지도 현실화되지 않고 2026년에야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전망대로라면 트럼프의 공약이 구체화되는 내후년에야 트럼프 트레이드가 종료될 가능성이 있다.
환율은 1400원 초중반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1400원을 뚫고 올라가면서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졌기 때문에 이번 주에는 1410원, 4분기에는 1420원까지 올라갈 여지를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이번 주 환율은 1430원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 관계자는 환율이 1450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아직까지는 고(高)환율 추이가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만큼 한국경제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리나라만 환율이 올랐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이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여서다. 실제로 오전 7시30분 현재 달러·엔 환율은 154.66엔, 달러·위안 환율은 7.23위안을 기록하면서 지난 7월 말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국내 물가가 치솟을 수 있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통화당국의 고심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말 미국 워싱턴D.C.에서 한국 기자단과 만나 “환율이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굉장히 높게 올라 있고 상승 속도도 빠르다”면서 “지난번(10월 금융통화위원회)에는 고려 요인이 아니었던 환율이 다시 고려 요인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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