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의언론=오세라비 작가]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공화당은 행정부와 상원. 하원 입법부 전체를 장악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언론의 거의 95%가 트럼프 낙선을 장담하며 편파보도를 일삼았으나 트럼프는 승리했다.
2024년 대선 상황도 2016년과 흡사하다. 각종 주류 언론사의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줄기차게 이어졌다. 예컨대 대선 당일에도 영국 유력 시사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민주당 해리스 후보 승리 가능성 56%, 공화당 트럼프 후보 43%라는 완전히 잘못된 대선 예측 모델을 발표했다.
선거 승패 요인을 엄밀히 분석하려고 들면 매우 복잡하다. 이 글에서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주목할 부분 몇 가지만 평가해보기로 한다. 한국의 각 정당이 참고할 중요한 시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공화당 트럼프 후보에게 투표한 남성 유권자들의 표심이다. 투표 결과 성별 분류를 보면 남성 54%가 트럼프를 선택했다. 그중 49%가 젊은 남성(18~29세)들이었다. 트럼프 승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렇다면 통상적으로 투표 참여율이 낮은 편인 젊은 남성들은 왜 이번 대선은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을까. 10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백인 남성. 여성 비율은 2016년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으나, 2024년의 특이점은 라틴계 남성이 대거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32%(2016) → 53%(2024)로 트럼프를 선택했다. 전통적인 민주당 표밭인 흑인 남성들은 13%(2016) → 20%(2024)로 트럼프를 선택했다. 트럼프에게 투표한 흑인 여성, 라티노 여성 유권자도 상승했다. 흑인 여성 4%(2016) → 7%(2024), 라티노 여성 25%(2016) → 37%(2024)였다. 이는 민주당으로서는 뼈아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로 나타났다. 젊은 세대와 흑인, 라티노는 민주당 지지가 당연한 듯했으니까 말이다.
둘째, 트럼프에게 투표한 젊은 남성들의 공화당 지지를 놓고 보수화되었다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젊은 층은 자신들의 가치관, 이익에 따라 표가 움직인다. 하지만 이미 젊은 남성들의 오른쪽 이동은 수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원인을 살펴보면 젠더 페미니즘의 맹렬한 기세로 남녀 분열은 심각했다. 1960년대 후반 미국 정치 담론에 등장한 정체성 정치는 정치적 올바름(PC주의), 워키즘의 만연으로 산산이 분열했다.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 어젠다 시대와 2017년 폭발한 미투운동 이후 성적인 문제는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또한 불법 이주자 문제에 대해서도 젊은 남성층으로부터 더 많은 반대가 있었다. 유럽도 최근 몇 년 동안 젊은 남성들의 우익 성향은 두드러져, 강력한 우익 정당으로(흔히 극우라 칭하는) 지지가 옮겨간 경향이 있다. 반면 여성들은 인종, 성별, LGBTQ 어젠다에 있어 더욱 좌파적 흐름이 이어졌다. 이처럼 젊은 남녀의 이념적 차이가 눈에 띄게 벌어진 것이다.
셋째, 2024년 미국 대선의 가장 큰 쟁점은 대규모 불법 이민자 문제, 경제 이슈다. 젊은 남성들도 이 문제에 예민하다. 혼란과 위기 상황에서 트럼프의 강한 ‘마초이즘’은 남성성이 약화한 현 세태에 어필함과 동시에 사태 해결에 강력함을 발휘할 것이란 기대감을 주었다.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의 동맹에 젊은층 반응은 뜨거웠다. 두 사람은 슈퍼리치에, 상상을 뛰어넘는 많은 것들을 성취한 경외의 대상으로 작용했다.
넷째, 트럼프는 고령임에도, 젊은 남성들의 기호에 맞춘 캠페인 전략이 주효했다. 세계 최대 팟캐스트 조 로건과의 3시간에 걸친 성실한 대담은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온라인 게임 방송 진행자인 20대 아딘 로스와의 생방송에서는 격의 없이 어울리며 큰 관심을 끌었다. 일찌감치 트럼프 캠프에 합류한 UFC 대표 데이나 화이트는 트럼프의 절대적인 우군으로 남성 유권자들을 자극했다.
다섯째, 트럼프의 대중을 향한 행보는 어땠을까. 맥도널드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드라이브 스루에서 주문을 받아 직접 감자튀김을 만들어 전달했다. 서민층 이발소를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친근함을 주었다. 무엇보다 트럼프 캠프의 발빠른 전략은 민주당을 압도해, 바이든이 트럼프 지지자들을 향해 “쓰레기들”이라 발언하자, 다음날 바로 쓰레기 수거 트럭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환경미화원 복장으로 등장하는 빼어난 순발력을 보였다. 이런 캠페인 전략이 모여 젊은 남성들의 지지를 이끌었다.
여섯째, 반면에 민주당 해리스 캠프는 어땠나. 화려한 슈퍼스타들의 리스트로 채웠다. 테일러 스위프트, 비욘세, 우피 골드버그, 오프라 윈프리, 레이디 가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조지 클루니, 앤 핸서웨이, 에미넴, 카디비, 게다가 아놀드 슈워제네거, 클린트 이스트우드까지 합류해 연예인 파티가 벌어졌다. 해리스 캠프는 스타들이 유세 연단에 오르는 광경이 화제였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 계층은 민주당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기득권층의 대변자는 민주당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일곱째, 민주당은 미국인 누구나 현실로 깨닫는 “미국이 잘못 되어 가고 있다”에 부응하지 못했다. 불법 이민 문제, 경제 현안에 등한했다. 대신 해리스는 낙태 이슈에 지나치게 몰두했다. 낙태 반대가 민주당의 전통 기조인 건 맞지만 해리스의 낙태 이슈는 효과가 없었다. 민주당 해리스 캠프의 총체적 선거 전략 실패였다. 트럼프 캠프는 완벽에 가까웠다. 슬로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간결한 구호는 지지자들을 뭉치게 만드는 파워가 있었다.
여덟째, 민주당의 패배는 대선 100여 일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당내 경선 없이 부통령 해리스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하지만 그것은 민주당이 자초한 일이다. 열성 민주당 지지 방송인들이 패배의 원인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는 것도 목불인견이다.
예컨대 ABC 방송국의 인기 토크쇼 ‘THE VIEW’는 페미니스트들로 구성된 민주당 전용 프로그램과 다름없다. 이 프로의 공동진행자인 서니 호스틴은 대선 결과가 확정된 11월 7일 방송을 통해 남성들이 트럼프에게 투표한 것은 “여성혐오, 성차별, 외국인혐오, 인종차별이다”는 말을 쏟아냈다. 더 가관인 발언은 “흑인 여성들은 나라를 구하려고 애썼다. 교육 못 받은 백인 여성들이 트럼프를 찍었다”, “라티노들이 어머니와 누이, 할머니를 버렸다”고 성토했다. 서니 호스틴은 부친이 아프로-아메리칸이다. 이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뱉은 말로 그대로 되돌려줄 수 있지 않나.
아홉째, 민주당을 지지했던 토크쇼 진행자, 방송인들이 울분을 토해내며 “민주주의가 파괴됐다”는 식이라고 하는 발언을 들으면 민주당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그들만의 아성에 국한된 정체성 정치를 하고 있는지 증명한다. 그러니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은 것이다.
열째, 공화당은 민주당 텃밭인 ‘블루 스테이트’에서도 득표율이 크게 올랐다. 대선 현황을 보면 트럼피즘은 상당히 오래가리라 예상된다. 민주당의 공포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물론 민주당과 리버럴 진영의 저항은 격렬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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