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은 국내 패션 기업과 함께 성장해 왔습니다. K패션·뷰티 브랜드의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게이트(관문)가 되겠습니다.”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신세계 본사에서 만난 김창록 신세계 상품본부 뉴리테일 운영팀장은 ‘신세계 하이퍼그라운드(이하 하이퍼그라운드)’의 목표를 이같이 밝혔다. 하이퍼그라운드는 신세계백화점이 국내 중소 패션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지난해 5월 업계 최초로 출범한 온라인 기업 간 거래(B2B) 플랫폼 ‘K패션82′의 새 이름이다.
처음엔 국내 브랜드의 수출을 돕는 B2B 플랫폼으로 출범했으나, 태국, 일본 등 해외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임시 매장)을 여는 등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까지 확대했다. 최근엔 플랫폼 명을 하이퍼그라운드로 바꿨다. 하이퍼그라운드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운영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 대상 K패션 전문관 명칭으로, 사업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명칭을 변경했다.
지난달부터는 일본 오사카 한큐백화점에서 K패션 브랜드 14개를 선보이는 릴레이 팝업스토어를 운영 중이다. ‘럭셔리의 대명사’ 백화점이 K패션 수출 전도사를 자처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 팀장은 “국내 패션 유통 생태계를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다음은 김 팀장과의 일문일답.
—하이퍼그라운드를 소개해 달라.
“국내 신생·중소 패션 브랜드의 해외 비즈니스를 돕는 플랫폼으로 수주 전시회, 쇼룸, 팝업스토어 운영 등을 통해 브랜드의 수출을 돕고 있다. 온라인 B2B 플랫폼의 경우 전 세계 바이어(구매자)들이 쉽게 K패션 브랜드를 주문할 수 있도록 결제, 해외 배송, 정산 등을 지원한다. 현재 280여 개 K패션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협력 업체들로부터 국내 시장은 포화 상태이니, 해외 진출하는 걸 도와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받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차원에서 B2B 수출 플랫폼을 만들게 됐다. 현재 겸직 인력 7명을 포함해 총 12명의 팀원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사카 한큐백화점에서 K패션 팝업스토어를 운영 중이다. B2C로 사업을 확대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엔 B2B 플랫폼으로 출범했지만, 세계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의 인지도가 낮다 보니 반응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해외 소비자들에게 직접 K패션 브랜드를 소개하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현지 백화점에서의 팝업스토어 운영을 병행하게 됐다. 옷은 화장품과 달리 직접 입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태국 방콕 시암 디스커버리 백화점에서 두 달간 9개 K패션 브랜드를 선보이는 팝업스토어를 운영했고, 이 중 한 브랜드는 100만 달러(약 14억원) 규모의 수주 계약을 맺는 성과를 거뒀다. 이번 오사카 팝업은 한큐백화점에서 먼저 제안해 추진하게 됐다.”
—참여 브랜드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한큐로부터 관심 있는 브랜드 명단을 받고, 신세계가 브랜드 관계자를 만나 설득해 매장을 내게 됐다. 이번에 팝업을 내는 14개 브랜드 중 절반 이상이 처음 해외에 진출하는 브랜드다. 이미 일본에 진출한 브랜드의 매장을 내면 매출이 잘 나오겠지만, 그런 방식은 우리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현지 디스트리뷰터(도매상)와 계약 맺은 브랜드를 제외하고, 해외에 진출하지 못한 브랜드를 중심으로 선정했다.
의지와 아이디어만 있으면 1인 기업도 지원하는 게 우리 방침이다. 최근에는 이지선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트리플 루트’에 동반 성장 펀드 무이자 자금 1억원을 지원했다.”
—현지 반응은 어떤가.
“오사카 팝업에 앞서 도쿄에서 프레스 행사를 열었는데, 이세탄 등 현지 백화점 바이어와 언론으로부터 ‘신세계가 한국 패션의 부흥을 위해 체계적으로 사업을 진행한다’는 평을 얻었다. 더불어 도쿄 소재 백화점으로부터 팝업스토어 운영을 제안받아 현재 검토 중이다.”
—한국과 일본 소비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한국이나 일본이나 소비자들의 보는 눈은 비슷하다. 일본의 젊은 소비자들은 라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과 같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한국 문화와 트렌드를 잘 이해하고 있다. 한국에서 잘 되는 브랜드가 현지에서도 잘 될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 B2B 플랫폼의 성과는 어떤가.
“출범 후 20여 개의 해외 박람회에 참석하고 쇼룸, 팝업스토어 등을 운영했다. 작년 말 기준 수주액은 53억원이다. 그동안 해외 바이어들의 데이터베이스(DB)를 쌓는 데 집중해 왔고, 실제 유럽, 동남아, 일본 등 백화점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내년부터는 팝업스토어 운영에 주력해 해외에서 K패션 붐을 일으킬 계획이다.”
—경쟁사들도 K패션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명품의 대명사인 백화점이 K패션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K패션은 백화점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주력 상품군이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소득 수준 향상으로 해외 패션 비중이 높아지고, 국내 브랜드는 온라인 쇼핑으로 판로를 옮기며 상황이 달라졌다.
국내 백화점은 상품을 매입해 파는 게 아니기에 협력 업체와 상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전히 백화점의 핵심은 K패션이고, 이들이 잘 돼야 백화점도 성장할 수 있다. 패션 유통 생태계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경쟁사들도 K패션을 알리는 일에 뛰어들면서 사업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그것만으로도 성공했다고 본다.”
—향후 계획은.
“해외 바이어들을 만나 보니 의외로 K뷰티 상품에 요구가 컸다. 이에 내년부터는 K뷰티 브랜드의 수출도 지원할 방침이다. 내년 6월 라오스 비엔티안 백화점에 K뷰티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을 연다. 매장을 상시 운영하며 다양한 K뷰티 브랜드를 팝업 형식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또 내년 상반기 중 일본 도쿄 백화점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하반기에는 유럽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 운영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이퍼그라운드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한국 패션·뷰티 브랜드가 해외로 진출하는 관문이 되는 것이 목표다. 현재는 ESG 사업을 표방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백화점과도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본다. 가령 지금은 해외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지만, 나중엔 고정적인 편집 매장을 운영할 수 있다. 또 B2B 온라인 플랫폼이 활성화되면 B2C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해 볼 수 있다.
다만, 우려되는 건 신세계가 신규 사업을 위해 K패션을 이용한다는 시각이다. 입점 업체에 최대한 메리트를 줘 많은 브랜드가 플랫폼을 이용하게 해 시너지를 내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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