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을 특정 시장에 고착시켜 독점을 유도하는 방식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표준을 설정하거나, (다른 기업에) 강요할 수 있을 때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조 콥스(Jo Cops)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회장은 지난 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진행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표준은 기술의 보편적인 상호 운용성을 촉진하는 공통 언어”라며 이같이 말했다.
IEC는 전기·전자·통신 분야의 국제 규격·표준을 조정하는 기관이다. 1906년 설립된 IEC는 현재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통신연합(ITU)과 함께 세계 3대 표준 기구로 통한다.
광주에서 열린 ‘빅스포(BIXPO)’ 행사와 서울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주최한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콥스 회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양자역학 분야 국제 표준 동향과 기업이 나가야 할 길을 언급했다. 콥스 회장과의 인터뷰는 7일(대면)과 8일(서면)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그는 최근 국제 표준 경쟁이 기술 패권 전쟁으로 치닫는 상황에 대해 “일부 국가들이 표준 수립과 관련해 전략적인 접근을 취하게 됐고, 이로 인해 국제적으로 표준의 분열과 탈동조화 위험을 증가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도 표준을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기술적 리더십을 확립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의 목표는 시장 지배력에 영향을 미치고, 자사 기술을 홍보하고 경쟁자를 배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표준의 분열은 혁신을 저해하고 비용을 증가시킨다. 소비자 선택의 폭도 제한한다”며 “무역에서도 기술 장벽을 만들어 제품을 다른 시장으로 수출하기 어렵게 하고 비용도 더 많이 들게 한다”고 꼬집었다.
콥스 회장은 또 시장 지배력을 쥔 기업이 국제 표준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기술 체계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 “표준이 자발적이라면, 규제는 필연적”이라며 “기업이 고객을 특정 시장에 고착시켜 임의로 독점을 만들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애플을 들었다. “유럽연합(EU)은 스마트폰 및 기타 전자 기기, 아이폰을 포함하여 USB-C 충전기(IEC 표준 기반)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애플은 애초 이 변화에 저항했지만, 이제는 EU의 규정을 준수해 최신 아이폰 모델에 USB-C 충전기를 도입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AI 기술 개발 과정에서 표준의 역할에 대해선 “국제 표준은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대응하고 관련 위험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데이터 관리, 책임성, 알고리즘 편향 방지 등을 포함한 가이드라인과 모범 사례를 제공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이를 통해 여러 기관들이 AI 기술을 책임감 있게 구현하도록 돕는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역할을 위해 표준 작업에 기술자뿐만 아니라 학자나 법률가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콥스 회장은 표준 개발의 이점을 ▲글로벌 시장 접근성 확대 ▲국제 영향력 확대 ▲빠른 시장 동향 파악 ▲비용 절감과 효율성 증대 ▲기업 명성 제고 등 5가지로 요약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국제표준 작업을 주도하고, 경영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길 기대한다”며 “불확실성이 커진 경제 상황에서 표준은 기업의 수익 추구와도 맞닿는 분야”라고 했다.
내년 말 서울에서 최초로 열리는 ‘세계표준포럼’(World Standards Forum, 가칭)에 대한 관심도 당부했다. 콥스 회장은 “WSF는 국제 표준이 사회의 여러 우려를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기회”라며 “특히 포럼을 통해 책임감 있고 안전하며 신뢰할 수 있는 AI 개발을 위한 적절한 가드레일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표준은 단순히 기술만 다루지 않는다. ISO 및 ITU와 함께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와 협력하여 UN 인권이사회가 제시한 기술 표준 및 인권에 대한 지침 이행을 지원했다. 표준화 과정에서 인권 관점이 반영되는 것이 필수”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제 표준은 글로벌 합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며 여기에는 산업, 학계, 정부 및 시민 사회의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한다”며 “이번 서밋을 통해 아직 우리와 함께 일하고 있지 않은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국제적 합의 기반의 표준을 설정하고 채택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조 콥스 : 벨기에 출신으로 지난 2023년 IEC 회장에 취임했다. 회장 임기는 3년이다. 스마트홈 솔루션 엔지니어로 소니 등에서 근무했다. IEC 회장 취임 직전에는 벨기에 전기기술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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