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홍준표씨가 대구시장에 취임한 뒤 1년도 되지 않아 나는 대구시 공식 문서에 ‘악성민원인’이자 ‘담당 공무원을 괴롭힐 목적을 가진 이’로 표현됐다. 공직자들은 이미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할 ‘전가의 보도’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내놓은 법 개정까지 이뤄지면 정보공개청구 제도는 형해화하고 말 것이다.”
이상원 뉴스민 편집국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정보은폐 합법화 시도: 정부 정보공개법 개정안의 문제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행정안전부가 입법 추진하는 정보공개법 개정안이 정보공개 제도의 근본 원칙을 뒤집는다는 언론인과 법조인, 정보인권 전문가와 시민사회 운동가들의 우려가 나왔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국회 시민정치포럼은 이날 토론회를 열고 정부가 추진하는 정보공개법 개정안의 우려점을 짚었다. 토론회는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인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종오 진보당 의원,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의결한 뒤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부당하거나 사회통념상 과도한 요구”에 해당하는 경우 정보공개 청구를 처리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종결할 수 있도록 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부당하거나 사회통념상 과도한 요구’란 조항 대목에 주목했다. 김유승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공동대표는 그 정의가 모호한 만큼, 정부가 이 조항을 임의 해석해 행정 편의나 정치적 이유로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할 여지가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개정안이 시민의 알권리를 검열하는 데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승 공동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 당시부터 정보공개 요구에 부당하게 대응해왔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홈페이지에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 시절에도 있던 정보공개 안내를 두지 않았고, 정보공개 청구를 받자 인수위 해산일에 비공개 조치를 알렸다.
윤 대통령 취임 뒤엔 △국회의 대통령실 청사와 관저공사 관련 조달청 수의계약 자료 요구 △대통령실 ‘사적채용 의혹’ 관련 정보공개센터의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 요구 등을 비공개 처분하고, 정보공개센터와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정보공개의 역사는 민주주의 역사와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보자유법은 1966년 ‘미국의 국정농단’에 해당하는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기화로 만들어졌다. 한국에선 민주화운동의 결과물로 헌법재판소가 1989년 국민의 알권리를 헌법상 기본권이라는 판단을 내놨다.
하 공동대표는 이어 “정보공개 청구에 ‘공개’ 또는 ‘비공개’ 답변을 의무화하는 것이 기존 제도인데, 정부가 추진하는 안은 아예 답변 없이 종결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종결 처분에 소송을 해도 대법원까지 최소 6년 정도 소요되고, 그러면 정보공개 제도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며 “정부의 법개정은 실질적으로 권력 감시를 불가능하게 만들려는 시도”라고 규정했다.
이상원 뉴스민 편집국장은 대구시 시정감시를 위한 정보 공개를 청구한 뒤 ‘악성 청구인’으로 낙인 찍혔다고 토로했다. 이 국장은 대구시가 본인이 청구한 정보공개를 거부해 법원이 제동을 건 사례들을 소개했다.
이 국장은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2022년 재정 개혁을 내걸고 대구시 관사 매각을 방침으로 정했으나 정작 본인이 거주할 관사는 새로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언행불일치 행정’이란 비판이 나왔다. 이에 이 국장이 ‘관사 향후 조치계획 제출’ 문서 공개를 청구하자 대구시는 그를 ‘악성 청구인’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이에 뉴스민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법원은 지난해 12월 “사생활을 이유로 한 비공개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구시는 또 사전에 공개됐던 ‘직원동호회 지원 계획’ 문서를 비공개 처리하고 공개 청구도 거부했다가 행정심판에서 위법한 처분이란 결정을 받았다. 당시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던 대구시는 공무원 골프대회에 1200만원가량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지법은 지난 7일 뉴스민이 대구시를 상대로 제기한 ‘위법부당한 정보 비공개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시에 100만 원의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이 국장은 “이미 일선 공무원들이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악성 민원으로 간주해 비공개하는 실정인데 굳이 법개정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좌장을 맡은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정보보개 청구인을 악성민원인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것이며, 이는 그 자체로 위법이자 위헌”이라고 꼬집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국회 △SH공사 △LH공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보건복지부 △서울·부산·익산 국토관리청 수자원 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식약처 등 공공기관이 자의적으로 비공개 결정을 내린 뒤 행정소송을 거쳐 공개 판결이 나오는 사례가 누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승수 공동대표는 “한국의 정보공개법은 김영상 전 대통령 공약으로 최초 제정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정부 관료에 의한 후퇴 시도가 이뤄졌다. 그러다 기록관리와 공개에 관심이 많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온라인 정보공개제도 등이 자리잡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권이 추진하는 개악이 얼마나 문제인지를 이해하려면 이런 역사적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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