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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도 한국인 수상자가 나왔는데 왜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아직까지 없냐구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결과를 중시하는 교육 탓이죠. 당장 써먹을 것,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방법, 입사하는 데 준비할 것을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이 광복 이후 지속됐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의 공간 계획과 도시 건축 정책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강병근 서울시 총괄건축가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교육 풍토에서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국대 건축학과 명예교수인 그는 2021년 제4대 서울시 총괄건축가를 맡아오다 올해 6월 연임했다. 그의 임무는 서울시의 공간 계획과 도시 건축 정책을 기획·조정·자문하는 일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와 노들 글로벌 예술섬,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 100년 미래 도시·건축 공간 종합계획 등 주요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강 총괄건축가는 “프리츠커상은 단순히 디자인의 탁월함만을 따지지 않는다”며 “시대 정신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녹여내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프리츠커상은 하얏트재단이 1979년 제정한 건축계 최고 권위의 상으로 흔히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올해는 야마모토 리켄이 수상했다. 일본 건축가의 수상은 벌써 아홉 번째다. 리켄은 판교 신도시 빌라 단지를 설계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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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기술이 아닌 예술인 이유는 인간의 감성을 담아서입니다. 기술만 따진다면 인공지능(AI)이 더 잘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기술로는 감성을 담아내지 못하죠. 공산품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뛰어난 건축가가 많지만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다”며 “경제성을 너무 앞세우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건축주와 건축가가 걸작을 만들 수 있도록 윈윈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게 공공의 역할”이라며 “서울시가 최근 도입한 창의·혁신 디자인에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경제성을 따지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경제성이 없으면 구상으로만 그치죠. 그래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설계에 대해서는 120%의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합니다. 지금까지 10여 개의 작품이 준비 중인 것으로 알아요. 수년 내 인상적인 건축물이 들어설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는 “건축은 도시의 얼굴이자 이미지”라며 “감성을 입힌 건축물이 도시 품격을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강을 끼고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의 자연유산은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며 “산과 강을 활용하고 감성을 담은 건축물이 곳곳에 들어서면 지구촌 1등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건축가들이 서울을 방문하면 ‘랜드마크가 무엇인가’라고 늘 묻죠. 대부분은 산을 꼽고 이어 한강·남산타워를 말합니다. 랜드마크가 반드시 건축물일 필요는 없습니다. 관건은 산과 강을 활용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습니다. 서울시가 5분 정원 도시를 구상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죠.”
강 총괄건축가는 ‘5분 정원도시’ 실현을 위해서는 대지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녹지와 공원을 즐기려면 접근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사유지가 가로막고 있다”며 “사유지의 경계를 허물면 용적률 상향 같은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미래 100년 구상에 담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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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미래 구상은 지난해 용역에 들어가 현재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그는 “정도전이 600여 년 전 한양 도성을 계획한 이후 처음”이라며 “100년 구상은 기존 도시계획 틀을 깬 공간 대개조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도시계획이 필지 단위라면 공간계획은 훨씬 더 확장한 개념입니다. 이를테면 광화문 일대, 강남역 일대, 용산국제업무지구 등 지구 단위로 공간계획을 짜는 것이죠.”
그는 미래 서울은 ‘다층복합수직도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걸어서 15분 거리의 육각형 셀이 공간 설계 기본 단위입니다. 3000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크기죠. 고밀도로 개발하되 나머지 공간을 녹지·공원으로 활용한다는 개념입니다. 서울 전역을 놓고 보면 190여 개의 셀이 나오는데 5~6개를 붙이면 40개 내외의 공간이 조성됩니다. 이곳에 직장과 주거 공간, 즐길 곳이 어우러진 ‘직주락’ 기능을 담는 것이죠. 쉽게 말해 50만 ㎡ 크기의 용산국제업무지구가 30~50개 있다고 보면 됩니다. 용산 지구는 건축 규제가 거의 없는 ‘화이트존(도시혁신구역)’으로 100년 뒤 서울의 축소판입니다.”
고밀도 개발이 미래 방향이지만 현재 진행형의 70층 마천루 재건축 열풍에 대해서는 “우려스럽다”고 경고했다. 그는 “과거 타워팰리스가 주목받은 것은 초고층·고급 아파트의 희소성 때문이지만 초고층 재건축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초고층일수록 건축비도 높아져요. 50층이면 1.5배, 70층이면 2.5배 건축비가 더 들지요. 압구정과 잠실·성수·여의도 등에서 3만여 가구에 이릅니다. 이를 다 흡수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70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은 현실 가치가 아니라 환상 가치를 좇는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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